22.04.11 13:39최종 업데이트 22.04.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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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10년 만에 4%대로 치솟았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6.06(2020=100)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4.1% 상승했다. 물가가 4%대 상승률을 보인 것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가 전체 물가 상승률 4.1% 중 3.74% 포인트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 중 농축수산물은 0.4% 올랐고 수입소고기(27.7%), 돼지고기(9.4%)와 빵(9.0%) 등 가공식품도 6.4% 올랐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2022.4.5 ⓒ 연합뉴스

 
"어쩔 수 없이 1000원을 올렸어요. 새로운 가격표 못 보셨나 봐요. 안 오른 게 없어서... 죄송해요. 이번 주부터 가격을 올렸어요."

자주 가는 백반집. 식사가 끝나 무심코 카드를 내밀고 받은 명세서.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고 했더니 주인장이 식재료 가격이 너무 올라 밥값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몇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8000원 하던 백반이 9000원으로 올랐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하루벌이로 밥값도 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월급쟁이들은 월급 빼놓고 다 오른다고 하지만, 자영업자인 내 처지에서는 나의 수입과 물가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만 같다.

고물가 시대, 세계의 움직임

표면적인 물가인상의 주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다. 러시아의 원유와 우크라니아의 밀과 같은 곡물이 수출이 막히다 보니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을 불러와 가격이 올랐다.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고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예측이 잇따르면서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물가인상의 또 다른 요인이다. 여기에 더해 각국 정부가 경기침체를 막으려고 풀었던 막대한 돈이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당분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막으려는 금리인상과 시중의 돈을 거둬들이는 양적 긴축 정책이 경제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이다.

많은 나라에서 물가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한 달 사이 1.48% 오른 페루에서는 시민들의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져 사망자가 나오고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리스에서도 수만 명이 물가 상승에 항의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이집트는 빵값 상한제를 도입했고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남수단은 기아 위기에 직면했다. 인도와 아르헨티나도 물가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가난한 나라, 빈부 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갈등은 크고 국민의 고통은 직접적이다. 외투가 얇으면 추위에 취약하듯, 오른 물가를 감당할 돈이 없는 계층일수록 한계 상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정책에 집중한다. 독일은 7월부터 최저시급을 8.8% 올린다. 프랑스와 스페인도 최저임금을 올렸고 영국은 4월부터 23세 이상 최저시급을 6.6% 올렸다. 일본도 정부가 나서 기업에 임금인상 폭 확대를 강력히 주문하면서 중소제조업의 임금 인상폭이 21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각국 정부가 임금 인상에 나선 이유는 다양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소비 침체를 극복하고 내수를 진작하려는 이유도 있고,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인플레이션 시대 가난한 계층을 보호하려는 이유도 있다. 코로나가 끝나 경제가 회복하면 질 높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있다.

임금을 올려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고 경제 회복의 마중물을 만들겠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어느 나라도 자영업자를 위해서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응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인수위사진취재단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기업이 오히려 고용을 줄이는 결과가 와서 서로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된다."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후보자가 지난 5일 최저임금과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2023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첫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이런 발언은 두 단위 인상 불가론에 힘을 실었다. 한 후보자는 이에 앞서 최저임금을 너무 급격하게 올려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는 경제 전문가라서 발탁됐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극심한 소득불균형을 동시에 해결해야 할 시기에 이런 사고를 가진 인물이 적임자인지는 의문이다.

윤석열 당선자의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소신도 우려스럽다. 대기업과 똑같이 월급을 올리라고 하면 자영업·중소기업이 다 나빠져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니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어떤 노동을 하더라도 최소 이 정도는 줘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최저임금이다. 윤 당선자의 차등 적용 발언은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처럼 받아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저임금 노동자가 받는 수입을 더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2022년 최저시급은 9160원이다. 한 시간 일해도 밥 한 끼 해결하기 어려운데 여기서 더 낮추자는 것인가.

이러다 돈 없어 불량식품 찾는 세상 올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해서... 적게 받고 일하고 싶어도 최저임금 제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윤석열 당선자와 한덕수 총리 후보자, 여당이 될 국민의힘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고 차등 적용을 내세우는 이유다. 그러나 지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어려운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이윤이 대기업과 플랫폼 시장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이 시장과 동네 상권을 장악했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상관없이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런 현실을 고쳐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산다. 또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최저임금 갈등을 키워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지키려는 꼼수를 부리려는 것인가. 집권여당이라면, 물가와의 전쟁에 나서겠다는 당선자라면, 낡은 인식부터 바뀌는 게 급선무다.

한덕수 후보자가 4년 동안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료로 받는 돈이 18억 원을 넘는다. 어림잡아 한 달 3800만 원 이상의 돈이다. 이런 총리 후보자가 시급 9160원, 월급 191만 4440원으로 오른 최저임금 때문에 우리 경제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후안무치하다.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전에 한 달 수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고문료로 받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부터 바로 잡는 게 건강한 자본주의를 지키는 일이고, 국민 위화감을 해소하는 방편이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일부 기업인과 권력층의 천장 없는 최고임금을 제한해야 해야 할 판이다.

세계적인 위기다. 윤 당선자는 물가와 전쟁을 한다고 하지만 유가와 곡물가 등 국제적인 요인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국내 공공요금을 억누르는 방법 정도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금리인상이 눈에 뻔히 보이는 현실에서 언제까지고 은행 문턱을 낮출 테니 대출을 늘려 급한 불을 끄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민의 소득을 높여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해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자는 시종일관 비판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국민의 주머니를 채우지 않고 국민의 삶이 나아질 방법은 무엇인가? 한 시간을 일해 밥 한 끼 먹기도 어렵다면 그 수입으로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 인플레이션 위기에서 많은 나라와 정반대 해법을 만지작 거리는 윤석열 새 정부가 불안하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부정식품이라 그러면은 없는 사람들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 줘야 된다. 이거 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이러다 진짜 돈 없어 불량 식품을 찾는 세상이 올까 두려움마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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