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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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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이 아이 둘을 입양해 키운다고?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라는 책이 나왔음을 알고난 후 호기심에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거지?'

도서관에 예약 대기자가 많아 오랜 기다림 끝에 책을 빌렸다. 그리고 펼치자마자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다행히 내 궁금증은 해결되었고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좋았다.

출판편집자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온 저자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법이 개정되어 미혼이라도 입양이 가능함을 알게 된 저자는 차근차근 준비한 끝에 2010년과 2013년에 차례로 3살 터울의 여자아이 두 명을 입양해 키우게 된다. 책의 초반에서 저자는 말한다.

"수십 년간 따로 살아온 이성과 결혼해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면 특별한 일로 생각할까?"

특별할 것 없는 입양 

책에는 저자가 가진 결혼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인 측면이 상세히 나온다. 매우 공감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을 했을 때 남편에게 종속되기 쉽고 자기 자신으로 살기가 매우 어렵다.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확률도 희박할뿐더러, 사실 저자만큼이나 나도 주변에서 가족 때문에 인생을 망친 여성들을 여럿 봤다. 남성에게 착취당하고 폭행당하고 죽는 여성들의 뉴스 또한 쉼없이 보도되는 게 오늘날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입양이 결혼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존하기로 약속하는 일이고 살아보고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이혼이라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입양은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고 무를 수 없다(파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백히 무책임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지원해야할 경제적, 정서적 자원도 엄청나다. 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기쁨도 크지만 분명 결혼보다는 아이를 돌보는 게 더 '헌신'적인 일이라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론 결혼보다 입양이 압도적으로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봄 자체는 직접 낳든, 입양을 하든 둘 다 힘든 것이 마찬가지인데 혈연중심사고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로서는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입양을 엄청난 일로 생각해왔다.

나에게는 너무 대단한 일인데 어째서 저자는 입양이 결혼보다 특별할 게 없다고 말하는 걸까? 책을 읽는 내내 그 답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회복'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입양을 결정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망가뜨린 가족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나를 강하게 추동해온 내면의 동력이었다. 아이들을 통해 우리 가족은 다시 결합했다. 우리 가족은 불완전하게나마 일종의 모계사회를 구현하고 연대와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128p
 
무능하고 착취적인 아버지로 인해 어린시절 내내 고통받았던 저자는 힘들었던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형제들과 서로를 의지하며 그 시간을 견뎌낸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당하는 어머니를 보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크게 굳힌 것 같았다.

생계를 책임지면서 육아, 살림을 모두 해내야 했던 어머니는 삶이 너무 버거워 자식들에게 종종 욕설을 퍼부었고 아이들이 자라는 데 필요한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여력 또한 전혀 없었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저자는 어쩌면 어머니를 가해자의 위치에,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한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돌보는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어머니와 함께 입양한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의 정서적 회복을 지원한다(돌봄 노동에 대한 급여와 함께). 아이들을 입양하는 과정과 양육의 과정에서는 형제들의 도움도 많이 받으며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다져나간다. 저자는 돌봄의 연대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복원해낸 것이다.

나 또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았고 새엄마와는 감정적 교류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내가 뿌리내릴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소망이 무척 절실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음으로서, 저자는 '입양'이라는 방법으로 각자 절실했던 그 소망을 이룬 셈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저자가 간절히 바랐던 회복된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입양하고 키움으로서 비로소 삶의 뿌리를 내린 것 같다는 저자의 마음 또한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며 느낀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저자처럼,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어야 아이들이 잘 자랄 것이란 생각에 나 또한 동의하지 않는다. 불행한 부부를 보며 자라는 아이는 함께 불행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비혼 워킹맘인 저자가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입양한 아이 둘을 충분히 잘 키울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츤데레' 엄마의 표현 방식 

책에서 확고한 교육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이끄는 저자의 모습은 정말 배울 점이 많았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너무 익숙해서 사실 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정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큰 고민 없이 출산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사실 이 책에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 또한 오랜 시간 입양을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만 찬성한다면 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계속 주저하게 된다. 

남편은 어린 시절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의 손에 컸는데 정말 헌신적으로 남편을 키워주셨다. 나의 경우 새엄마와 별다른 감정적 교류가 없었고 새엄마와 새엄마의 친딸 관계를 보며 역시 사람은 혈연을 넘어서긴 힘들다는, 경험을 통한 편견을 뿌리깊이 가지고 있다. 사람은 역시 자기경험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만약 이것을 깨부술 수 있다면 내 사랑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이 가진 의외성도 참 좋았다. 얼마나 사랑이 많으면 혼자서 아이 둘을 입양해 키울 생각을 했을까 싶어 나는 책의 전반에 아이를 향한 엄마의 지극한 사랑과 돌봄의 기쁨이 가득 표현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을 깨고 책은 시종일관 사회과학서적 수준의 딱딱한 문체로 입양과 관련된 알찬 정보, 가족과 돌봄에 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감정을 표현한 부분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그게 저자의 성향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책에 나온 표현대로 정말 '츤데레' 엄마인 저자는 사실 꺼내기 어려운 자신의 여러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입양한 아이들과 어머니,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로 하여금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이 훗날 자신의 서사를 쌓아 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저자를 보며 나도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입양을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솔직히 말해, 입양을 해서 그 아이를 내가 낳은 아이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 지금은 도저히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계를 정하지 않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내게 분명 용기를 주었다. 저자와 두 딸이 함께하는 이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 깃들기를 기도하며 좋은 책을 써주신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 결혼도 출산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

백지선 (지은이), 또다른우주(2022)


태그:#비혼이고아이를키웁니다, #백지선, #입양, #비혼, #정상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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