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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철
 신기철
ⓒ 신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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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 극단적 폭력의 심리학>의 역자 신기철은 지난 1980년대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부터 과거청산(과거사정리)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나는 그를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직장동료로 만나 함께 일할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그는 모든 사회운동이 과거청산운동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차이라면 최근의 과거인지 아니면 조금 먼 과거인지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최근의 인권운동이 노동운동이라면 지난 인권운동은 과거청산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즉 과거청산운동을 그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노동운동이라고 본다.

지난 2010년 1기 진실위가 문을 닫은 후 그는 지금까지 12년 동안 12권 이상의 민간인 학살 관련 책을 썼고 이번에는 세계의 대량학살을 다룬 책,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 극단적 폭력의 심리학>을 번역 출간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힘과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아무도 하지 않아서다. 상황이 좋을 때 하다가 나쁠 때 중단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튼 교수 소개에 따르면, 이 말은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헤르만 괴링이 히틀러를 지지하면서 한 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다."

역자 신기철 소장과 이 책에 관해 지난 4일부터 18일까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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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부제가 "평범한 사람들이 잔학 행위에 이르는 이유를 찾아서"인데,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을(심지어 어린아이, 노인, 여성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통을 즐기는 자로 변하게 된다고 보는지?
"'평범한 사람들이 잔학 행위에 이르는 이유를 찾아서'가 부제라고 하지만 사실 이 책 전반에 걸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원인으로 군중 심리나 권위에 대한 복종, 익명성 등 사회적 원인으로부터 폭력성, 새디즘, 탈인간화, 이중 과정 등 개인적 특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을 조사, 연구해온 사람들은 가해자들의 잔학 행위를 그냥 '전쟁 상황이 불러온 미친 짓' 정도로 치부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지?'에 대한 답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구호 이상으로 나오질 않았다. 이 책은 도대체 무슨 '잔학 행위'가 벌어졌는지 알게 하고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설명했다. 가해자들이 가해자임을 알게 하고, 피해자들이 피해자임을 깨닫게 하는 책이어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저자 더튼 교수의 서술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은 일상 생활에서 평범했던 사람들, 즉 난징 대학살의 일본군, 베트남 미라이 학살의 미 특수부대원들 등 평소 살인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이 전쟁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온갖 잔혹한 행위를 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둘째 부분은 전쟁 맥락이 아닌 민간 상황에서 벌어진 미국 백인들의 흑인 린치와 감옥 폭동, 그리고 연쇄살인범들을 분석하여 비교했다. 셋째 부분은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로서 평범한 사람들이 가혹행위에 가담하게 되는 사회 규범의 변화와 여기에 가담하는 개인들의 행동 차이를 이론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전쟁과 증오의 사회규범을 평화와 화해의 사회규범으로 변화시키고 이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태도와 인성을 기르자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본다."

- 성폭행범, 연쇄 살인범, 새디스트 등이 전시에는 왜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 걸까?
"저자는 전쟁 중 성폭행이나 집단학살 행위가 만연되는 것은 처벌받지 않는 특성과 전투 상황의 익명성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폭력적 성향이 전투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극대화 되어 나타나게 된다는 인류학적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도덕적인 전쟁이란 없다는 주장인데, 사실 한국전쟁에는 예외도 있다.

- 어떻게 개인적 차원에서 공격적이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거나 드물었던 사람들이 (독일 나치정권이나 6.25처럼) 사회적 차원의 갈등이 시작되자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게 될까?
"'증오는 나의 힘'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치 구호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치의 경우 유대인 증오가 가장 유명하고 큰 피해를 나은 사례이지만 한국사회는 과연 그들보다 나은가 반성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이 '증오'의 정치학을 수도 없이 겪어왔고 최근까지도 겪고 있다."

-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심리학 전공자였기에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 것이 있었다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ence), 반대과정이론(opponent process theory) 등 낯익은 용어가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군중심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의 문제를 당시 독재정권의 피해와 결합시켜 연구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던 시대를 겪었다. 지금도 심리학이 사회 참여라는 의제에 적절히 답하고 있는지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사회의 분석틀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기준이 되고 있다."

-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광주학살)을 보면 군대에 의한 민간인학살에 있어서 민간인 살해 명령을 받은 후 군인들은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단적인 분노 상태로 빠르게 변화한다. (참고) 이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군인들의 분노가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야기한 것일까? 아니면 상관의 살해 명령을 실행한 결과 하급자 군인이 나타낸 반응이 분노일까? 
"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초기 계엄군이 공수부대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부대들은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던 부대로 내전을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광주로 내려갈 때부터 실탄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언제든지 총을 쏠 준비가 되어 있는 특수부대였고, 시위대에게 극도의 분노감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잘 해야 수백 명의 시위대를 상대할 줄 알았는데 수만 명의 시위대를 만났으니 공포감도 극대화된 상황을 만났던 것이다. 이때 실탄이 배포가 된다. 더튼 교수가 인용하고 있는 'Perfect Storm', 즉 극단적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더튼 교수식 표현대로라면 누적된 분노와 공포, 여기에 가해진 살해 명령이 수백 명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본다."

-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전쟁이나 전투 중 전혀 거리낌 없이 학살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저자는 누구나 학살자가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단언하지 않았던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반드시 있기 때문인데, 그래도 상당수는 학살자가 되고 말았다. 한국전쟁이나 광주민주항쟁이나 군 측 자료를 보면 언제나 빨치산 또는 시위대의 공격이 먼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합리화되니 학살을 자행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역사를 통하여 아직도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종種이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매년 늘어났으나 공동체로서 전체 인간 사회에 동정심을 가지는 능력은 늘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비관적인 인간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면서도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개인 차원의 실천 과제, 사회 차원의 실천 과제가 있을 텐데,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개인의 행동에 달려있게 된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통찰력 있는 개인들의 실천이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 역자 신기철은 (재)금정굴인권평화재단 연구소장.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위에서 일했다. 저서로 <전쟁의 그늘>(2020),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2020),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2018), <전쟁범죄>(2015), <국민은 적이 아니다>(2014), <진실, 국가 범죄를 말하다>(2011) 등이 있다.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 극단적 폭력의 심리학 - 평범한 사람들이 잔학 행위에 이르는 이유를 찾아

도널드 G. 더튼 (지은이), 신기철 (옮긴이), 인권평화연구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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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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