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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받아쓰기와 맞춤법을 통해 언어와 문자를 배우듯이 영어권에서 스펠링은 올바른 철자법을 뜻한다. 스펠은 마력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유형의 대상 뿐아니라 형체가 없는 관념에도 이름을 붙여야만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 

즉, 모든 것에 이름표를 달아야만 마법처럼 인류의 의식체계에 들어온다. 아담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말이다.

15세기에 대항해 시대가 펼쳐지면서 유럽인들은 지구상에서 발견한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박물학 시대가 꽃을 피우면서 여러 분류학자들이 왕성하게 활약을 했다. 

그러나 종의 수가 폭증하여 같은 생물을 놓고도 서로 부르는 이름이 달라 혼동을 겪었다. 구분이 필요했기에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가 이명법으로 학명을 표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학명은 속명과 종소명의 결합이며 전자는 비슷한 특징을 가진 무리를 뜻하고 후자는 이름표다. 

발음하기도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으며 소수 전문가 아니면 알아듣지 못하는 학명이지만, 여기에도 사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학명은 맨 처음 표본을 수집한 사람이 명칭을 정하며 대체로 그 종의 특징이나 습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짓는다.

하지만 명명자들은 때때로 경쟁자를 조롱하는 호칭을 붙이거나 과학 발전에 공헌한 인물을 기리려는 목적으로 명찰을 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의 이름을 사용할 때도 있고 독재자나 폭군의 이름표를 쓰기도 한다.

서구 분류학계는 심심치 않게 학명을 경매로 팔고는 한다. 독일은 BIOPAT(생물다양성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 신종에 대한 명명권을 공식적으로 판매하고, 그 수익을 생물다양성을 위한 연구에 사용하고 있다. 1999년에 여러 연구 기관이 참여하여 출범하였으며 지금까지 공익을 목적으로 낙찰된 학명은 대략 150여 종을 넘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원자들은 최소 2600유로(한화 350만 원)를 기부했다고 한다.

스티븐 허드(Stephen Heard)가 쓴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볼리비아에서 새롭게 발견된 원숭이의 학명은 칼리케부스 아우레이팔라티이(Callicebus aureipalatii)라고 명명되었다. 뜻을 풀어 보면 황금궁전닷컴이다. 신종 영장류를 발견한 과학자가 명명권을 경매에 부쳤고 이에 해당 카지노가 65만 달러(우리 돈 약 78억 원)에 낙찰 받았다.
 
볼리비아의 마디디 국립공원에 사는 잔나비.
▲ 마디디 티티 원숭이. 볼리비아의 마디디 국립공원에 사는 잔나비.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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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매금은 마디디(Madidi) 국립공원의 보전 활동을 위해 쓰이도록 지정되었다. 도박장은 이름을 널리 알려서 좋았고 지역 주민은 공원 관리자로 고용되어 서로에게 윈윈 게임이 되었다. 

지금까지 학명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은 찰스 다윈으로서 350종을 훌쩍 넘는다. 그 뒤를 이어 약 10명의 인물들이 근소한 차이로 경쟁하고 있다. 다윈의 절친이자 식물학자인 조지프 후커와 종의 기원을 공동으로 발표한 앨프리드 월리스, 다윈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과학의 대중화에 공헌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 에콰도르에서 키나나무를 반출하여 인도에서 대량생산해 말라리아를 치료함과 동시에 제국주의의 선봉에 섰던 리처드 스프루스(Richard Spruce) 등등.

목숨을 담보로 변태를 그리다

15세기 박물학의 출발에서부터 20세기 제국주의 시대까지, 해외 원정과 무역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표본이 유럽으로 들어온다. 당시 독일에는 삽화가이자 생물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의 그림책은 과학계와 상류사회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마리아는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는 경제적 배경, 시대적 요구가 어우러져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그녀가 그린 도마뱀과 붓꽃, 나방을 비롯한 여러 곤충에 메리안의 이름을 기린 학명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이는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이해한 소수의 인물이었다.
 
먹이식물과 곤충, 애벌레를 한 화면에 담은 화보.
▲ 메리안의 그림 중 한 점. 먹이식물과 곤충, 애벌레를 한 화면에 담은 화보.
ⓒ Maria Sibylla 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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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식물과 곤충이 함께 하는 그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메리안의 곤충 생활사에 대한 접근 방식은 이후 150년이 지난 뒤 찰스 다윈에 이르러서야 보편성을 얻게 된다.

과학과 예술을 절묘하게 융합한 메리안은 당대의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네덜란드 식민지인 수리남으로 향한다. 당시에 상류사회 여인이 홀홀단신으로 자비를 들여서 수리남으로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마리아는 수리남에서 약 2년간 머무르면서 곤충과 식물을 채집하고 생태가 녹아있는 예술작품을 그렸으나, 말라리에 감염되어 본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건강을 회복한 메리안은 자신의 최고 걸작인 <수리남 곤충의 변태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를 출판하여 명성을 드날린다. 그녀의 책은 우리나라에서 <곤충 ·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화보집이면서 생태도감이기도 하고 수리남의 풍속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이는 40페니히 독일 우표와 500마르크 지폐에도 등장한다.

마리아의 세심하고 진보적인 발상은 후대의 여러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분류학자들은 그녀를 기려 여러 식물에 메리아나속(Mariania) 이름을 명명했다. 곤충 세상에서는 파나마의 아름다운 나비 한 종이 메리안(Catasticta sibyllae)의 이름을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명, #마디디 국립공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BIOPAT, #수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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