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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을 통해 인간사의 다양한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속명과 종소명으로 이루어진 라틴어 학명에는 인간의 감정과 판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는 집단을 말하고 후자는 명찰을 뜻한다. 

가령 인류는 호모(Homo) 속(Genus)에 들어가며 여기에 사피엔스와 에렉투스,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피엔스는 오늘날 전 지구상을 뒤덮고 우주로 진출하려는 우리를 말한다. 현대인의 오랜 친척이었던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렌시스는 화석에서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명법을 고안하여 분류학에 큰 공헌을 한 칼 린네는, 식물을 분류하면서 노골적으로 여성의 생식기를 묘사했다. 프로이센의 식물학자 요한 지게스벡(Johann Georg Siegesbeck)은 기독교도의 관점에서, 린네의 묘사가 "혐오스러운 음란물(Loathsome Harlotry)"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린네는 '하찮은 잡초'라는 뜻을 가진 지게스베키아(Sigesbeckia) 속을 명명하고, 신종 국화과 식물에 지게스벡(Sigesbeckia orientalis)의 이름을 붙였다. 게다가 이 씨앗을 요한에게 보내며 '몹시 희귀한 식물(Cuculus ingratus)'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학명을 해석하면 '은혜를 모르는 기생 뻐꾸기'라는 뜻이다. 처음에 린네의 호의라 생각하고 종자를 키워낸 요한은, 볼품 없이 작은 꽃을 피는 것을 보고 그의 본심을 깨달았다. 한 때 친구 사이였던 둘은 평생의 원수가 되어 상호간의 연구를 방해했다. 이로부터 서너해가 지난 1759년에 린네의 모든 출판물과 복사본은 남김없이 불태워진다.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단 린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라이벌 관계의 여러 학자들이 모욕스런 학명을 지으며 서로를 공격한다. 때로는 정치적인 신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부적절한 정치인을 숭배하거나 비웃는다. 

학명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슬로베니아에서 채집한 신종 딱정벌레의 명함(Anophthalmus Hitleri)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을 죽인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기리는 이름이 들어가 있다. 종명 끝에 들어간 'i'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의미다. 여성 명사를 쓰는 경우에는 'ae'를 붙이고 장소를 표기할 때는 'ensis'가 들어간다.

히틀러리는 1937년 오스트리아 곤충학자인 오스카 샤이벨(Oskar Scheibel)이 명명했다. 그는 신종을 발표한 논문에서 "아돌프 히틀러 수상을 경배하며 이 이름을 바친다"고 적었다. 
 
오스트리아 곤충학자 오스카 샤이벨이 명명했다.
▲ 히틀러의 이름을 붙인 먼지벌레. 오스트리아 곤충학자 오스카 샤이벨이 명명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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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리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녹아들어 있다. 대공황의 여파로 세계 경제는 불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극우보수가 득세하게 된다. 혐오가 널리 퍼지며 비난의 대상을 찾아 증오를 퍼붓는 일이 늘어난다. 힘든 세상을 끝장 내 줄 누군가를 염원한다. 결국 반유대주의가 게르만족을 집어 삼키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이탈리아는 무솔리니를 택하여 전쟁에 동참했고 일본은 천황을 등에 업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천만의 한족들이 굶어죽어나가자 문화혁명을 일으켜 역사와 경제를 수십년이나 퇴보시켰다. 소비엔트 연방의 붕괴 이면에는 경제침체가 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 현재 푸틴의 독재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러시아인들이 큰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2008년 서브 프라임 위기로 집을 잃은 수많은 미국인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며, 2022년 부동산 정책 실패로 우리나라는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는 이미 15세기 박물학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역사학자가 말하는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들은 분류학과 함께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한다. 연재 24화에서 스페인 약탈자 에르난 코르테즈로 인하여 미국 독립과 커피 문화가 융성했음을 알아봤다.

코르테즈로 인하여 아즈텍 문명이 멸망하고 난 뒤 약 10년이 지나고, 이번에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노략질하여 파멸시킨다. 후대의 분류학자는 신종 딱정벌레의 이름에 코르테즈(Agathidium cortezi)의 명함을 주었고, 에콰도르에서 발견된 털날개나방의 한 종에게는 피사로(Hellinsia pizarroi)의 이름이 달렸다. 

논란의 대상이자 호불호가 명백하게 갈리는 학명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현재 몇몇의 신종 딱정벌레에는 조지 W. 부시(Agathidium bushi)와 딕 체니(Agathidium cheneyi), 도널드 럼즈펠드(Agathidium rumsfeldi)의 이름이 붙여져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리 스타일을 닮아서 붙여진 학명.
▲ 트럼프의 이름이 들어간 나방.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리 스타일을 닮아서 붙여진 학명.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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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 벽두에는 BBC와 TIME에 보도되어 전 세계의 이목을 끈 나방이 있다. 캐나나 오타와의 연구원 바즈릭 나자리(Vazrick Nazari)는 신종 나방에게 트럼프(Neopalpa Donaldtrumpi) 전 대통령의 명찰을 붙였다.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 북부까지 서식하는 나방으로서 머리에 자라난 노랑색 털이 트럼프의 머리 스타일을 닮았기에 지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옮기자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종이 살고 있는 취약한 서식지 보호에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돌프 히틀러, #도널드 트럼프, #히로히토 천황, #마오쩌둥, #무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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