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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생선국수. <백종원의 3대천왕>, <맛있는 녀석들>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명한 지역 대표 먹거리다.
 충북 옥천 생선국수. <백종원의 3대천왕>, <맛있는 녀석들>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명한 지역 대표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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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천, 서화천, 금구천... 금강 줄기와 맞닿은 충북 옥천 지역주민들에게 '강'은 이전부터 친숙한 존재였다. 학교 소풍 때도,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자유롭게 다닐 때도 강은 두 팔 벌려 이들을 맞이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강에 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면, 마음은 더더욱 들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강으로 향했다.

"아낙네들은 바구니 들고 달래 냉이 캐러 들판으로 나간다. 겨우내 움츠리던 남자들은 투망 하나 들고 한 다리 밑이나 장위보로 출동한다. 숙달된 솜씨로 낙하산 펼치듯 투망을 하늘에 던진다. 봄볕에 기지개 켜던 물고기들이 방탄소년단 춤을 추듯 펄떡거린다.

투망질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슬기를 잡고 가까운 마늘밭에서 풋마늘 몇 뿌리 뽑아온다. 즉석에서 양은 솥을 걸고 마른 나뭇가지로 불을 피운다. 막 잡은 물고기를 넣고 푹푹 삶는다. 대충 커다란 가시만 건져내고 고추장과 된장을 풀고 국수를 삶는다. 바로 자연산 청산 생선국수가 완성된다.

물오른 버들가지 꺾어 젓가락을 만든다.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한 그릇씩 먹어 치운다. 여기에는 커다란 대접에 청산 막걸리 한잔이 빠질 수가 없다. 강변에서 먹는 막걸리는 금방 볶아낸 커피처럼 달달하고 개운하다." - <옥천신문> 기고글 '청산의 봄' 중 발췌


청성에서 태어나 한때 청산면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신한서(67, 옥천읍 죽향리)씨의 옛 추억이다. 그는 과거 강변에서 민물고기를 잡던 일을 '천렵', 이때 갓 잡은 민물고기에 각종 양념을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을 '천렵국'이라 불렀다 회상한다. 이 기억은 신한서씨뿐만 아니라 오늘날 청산·청성 주민, 그리고 강과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남아 있다.

생선국수의 전신, 천렵국

"생선국수요, 옛날에는 '천렵국'이라고 불렀어요.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강가에 천렵가면 끓여 먹던 음식이죠. 지금처럼 비린내를 제거하거나 발라내는 과정 없이 그대로 푹 고아서 먹었어요. 추억이 담긴 음식이죠." 

어머니 서금화(95)씨 뒤를 이어 2대째 생선국수 전문식당 '선광집' 을 운영하는 이미경(57)씨다. 선광집은 1962년, 가게 문을 연 이후 올해로 60년을 맞이한 향토식당이다. 이미경씨는 과거 깨끗했던 보청천 풍경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장위보'라고 지금은 콘크리트 보가 세워진 곳인데, 거기에서 천렵을 많이 했죠. 1980년도 큰 홍수가 있기 전에는 거기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고, 물놀이하기 좋았던 곳이에요. 저도 아버지랑 천렵 다녔던 일이 생각나네요."

역시 오랜 시간 생선국수 전문식당을 운영해 온 청양식당 김희순(71)씨와 뿌리식당 고명준(64)씨에게도 천렵과 천렵국에 대한 추억은 여전하다.
 
"장마 지나고 나면 강에 (민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나 몰라.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그렇게 고기 잡아서 각자 입맛에 맞게 천렵국 끓여 먹은 거죠." (청양식당 김희순씨)
 "장마 지나고 나면 강에 (민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나 몰라.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그렇게 고기 잡아서 각자 입맛에 맞게 천렵국 끓여 먹은 거죠." (청양식당 김희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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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지나고 나면 강에 (민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나 몰라.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그렇게 고기 잡아서 각자 입맛에 맞게 천렵국 끓여 먹은 거죠." (청양식당 김희순씨)

"친구들하고 천렵 많이 나갔어요. 통통이(경운기)에 솥단지, 고추장, 된장 싣고 나가서 천렵국 끓여 먹었죠. 저는 주로 메기, 빠가(빠가사리) 넣어서 했어요. 객지에 있다가도 봄이 되면 특히 생각나는 음식이에요." (뿌리식당 고명준씨)

"마늘쫑 나오기 시작할 무렵 천렵갔죠. 그때는 근처 밭에 난 고추, 파도 그냥 뽑아다 넣어서 먹었는데 주민들도 이해해줬어요(웃음). 초등학생이라도 다 나름대로 끓여 먹을 줄 알았어요. 지금 같으면 비리다고 할지 몰라도 그때는 최고의 맛이었어요." (청산면 주민 장재구씨)

이제는 생소한 문화가 된 천렵과 천렵국은 이들에게 유년 시절 추억과도 같다. 그 때문인지 청산면 인정리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전까지 마을 차원에서 생선국수를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봄맞이 행사처럼 남아 있기도 했다. 투명하던 옛날의 보청천은 희미한 기억이 됐고 유년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도 어느새 머리가 희어졌지만, '천렵국'만은 변함없이 청산의 대표 음식, '생선국수'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선국수, 청산의 자부심

간단히 끓여 먹던 천렵국을 '생선국수'라는 별미로 발전시킨 것은 선광집 서금화씨.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오랫동안 끓이고, 가시가 들어가지 않도록 찬찬히 걸러내고, 지금처럼 얇은 소면이 아닌 칼국수처럼 굵은 면을 넣어보는 등 맛을 연구했다.

가정집에서 시작한 식당이 주민들에게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1962년, 현재 선광집 자리에 처음 생선국수 전문식당이 생겼다. 이후 생선국수가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타면서 전문식당이 7~8개로 늘어나, 2018년 청산 생선국수 음식거리도 만들어졌다. 생선국수는 이제 청산의 자부심이자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청산국수축제 풍경
 청산국수축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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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생선국수 백중씨름대회
 청산 생선국수 백중씨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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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지역 대표 향토음식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2017년부터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까지 청산에서는 4월이면 '생선국수 축제'가 열렸다. 청산 백중씨름대회, 농악경연대회, 농촌문화체험 등 각종 행사도 축제와 함께 활발해져 음식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청산 생선국수 축제는 첫 회부터 1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모아 3회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한 지역축제 사례이자, 청산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돼 만든 행사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청산 생선국수축제의 선구자 역할을 한 청산면민협의회 이갑기(66) 전 회장, 장재구(52) 전 사무국장, 고영수(56) 전 체육부장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본래 청산 백중씨름대회에서 시작된 축제지요. 백중씨름대회는 이미 20회 넘도록 청산에서 여름마다 했던 행사인데, 개최 시기를 달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해가 갈수록 여름이 너무 더워진 탓이었죠.

준비하는 이들도, 출전하는 선수들도 여름은 고생스럽고 참여도가 떨어지다 보니 그보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에 하자는 의견이 나온 거예요. 여기에서 기왕이면 청산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는 이야기로 확장됐고, 청산 향토음식 생선국수를 홍보하는 것으로 입을 모았죠." (장재구 전 사무국장)

그렇게 생선국수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전재수 전 면장과 청산면민협의회는 축제의 밑그림을 그리고 청산 주민들과 함께 세부내용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1만 명이 넘던 청산면 인구가 이제는 3천 명 이하로 줄어드는 등 활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청산면민들이었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힘을 합해 축제를 준비했다.

"이장단협의회, 새마을협의회, 부녀회와 각종 봉사단체에 속한 청산 주민은 물론 출향인까지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 부족한 것이었어요. 주민들의 찬조금이 없었더라면 임원진이 빚을 내서 감당했어야 할 상황이었죠. 축제 한번 개최하려면 예산이 1억 가까이 들어가는데, 당시 군에서 백중씨름대회 3천만 원 지원해주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이갑기 전 회장)

청산 주민들은 자금 마련 외에도 각종 역할을 맡아 행사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각종 프로그램 진행부터 행사장 주변 교통정리, 식권 배부, 안전 관리와 같이 세세한 역할까지. 주민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축제였다. 청산면민협의회는 이후 축제에 사용된 재정을 청산면 각 가정에 우편 배송,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얻기도 했다.

행사가 진행된 이틀간 청산은 들썩들썩했다. 보청천 옆 둑방 벚꽃길 아래로는 트랙터 기차가 지나고, 씨름판과 함께 청산생선국수 가요제, 풍물패 길놀이, 여기에 한쪽에서는 미꾸라지 잡기 등 각종 체험행사가 한창이었다. 밤이 돼도 불꽃놀이, 풍등, 수등이 하늘과 강을 환하게 수놓았다. 옛날 북적북적했던 청산면이 다시 찾아온 것만 같았다.

2017년 첫 축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후로 옥천군도 예산 등을 적극 지원해 청산 생선국수 축제는 그 규모가 점차 커졌다. 충청북도 향토음식거리 조성사업으로 2018년 청산 생선국수 음식거리가 조성됐고, 2회 때에는 국궁 행사, 3회 씨름대회 때에는 천하장사에게 500만 원 상당의 송아지가 추가로 주어지기도 했다. 축제를 계기로 청산면이 외지인에게 생선국수의 본 고장으로 각인되면서 이전보다 유동인구와 생선국수 식당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축제 성공의 비결
   
생선국수축제 풍경
 생선국수축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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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국수축제 풍경
 청산국수축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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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청산 생선국수 축제 성공 비결로 하나로 뭉친 주민, 오래도록 이어져 온 청산 고유의 문화, 행정 지원을 꼽는다. 세 가지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중요하다.

"축제가 잘 된 건 청산 주민이 하나로 뭉친 덕분이에요. 준비하는 동안 회의도 많이 했죠. 한창 바빴던 때에는 청산면민협의회 임원들은 매일 모일 정도였죠. 다들 얼마나 활발하게 의견을 내셨는지 모릅니다. 회의 중 서로 부딪히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그 역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었어요. 덕분에 더 관계가 돈독해지고 축제도 풍성해졌습니다. 기존 임원진이 임기를 다하고 흩어질 때, 아쉽다며 자발적으로 '천년지기 모임'을 만들었을 만큼요(웃음)." (장재구 전 사무국장)

"생선국수, 백중씨름처럼 청산에 이어져 온 전통 요소가 없었다면 축제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특히 생선국수는 남다르죠. 청산 주민이라면 누구나 천렵하며 즐거웠던 어릴 적 추억을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있거든요. 그 추억이 있으니 외지인에게도 청산 문화를 더 알리고 싶었을 거예요." (고영수 전 체육부장)

"전재수 면장을 비롯해 면 직원들과 행정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겁니다. 전재수 전 면장님이 좋은 의견도 많이 주셨고, 면 직원분들이 밤늦게까지 고생하면서 행사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줬고요. 주민들이 놓치는 부분을 세세하게 보충하면서 축제 준비에 힘을 쏟아주셨습니다." (이갑기 전 회장)

당시 축제를 함께 기획하고 추진해나간 전재수 전 면장은 이에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주민들이 하나 되어 만든 축제예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고민했고, 적은 액수라도 행사에 써 달라며 내놓으셨죠.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했기에 축제가 그만큼 잘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고영수, 이갑기, 장재구씨
 왼쪽부터 고영수, 이갑기, 장재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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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멈춘 축제

4월, 벚꽃이 만개하듯 피어난 청산 생선국수 축제이지만 2019년 3회를 마지막으로 멈춰 있는 상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축제 개최가 쉽지 않기 때문. 계속됐더라면 올해로 벌써 6회째를 맞이했을 행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아쉬운 마음은 감출 수 없다.

"6회까지 잘 진행됐더라면 지금쯤 행사가 지역에 완전히 자리 잡았을 텐데요. 해를 거듭하면서 축제가 더 좋아지는 게 느껴졌던 터라 더 아쉽네요. 축제 준비가 힘들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기도 했고요."

당시 청산면민협의회 막내로서 축제에 참여했다는 장재구 전 사무국장은 "축제를 준비하며 고향에 대한 애착, 선배들과 주민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졌다"라면서 "이런 행사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닌 만큼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마음의 변화는 그에게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여한 청산 주민 모두에게 있었을 테다. 청산 생선국수 축제를 통해 향토음식처럼 지역을 상징할 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 그를 잘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게 된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세 사람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원조? 백종원? 옥천 생선국수 입맛따라 골라보세요 http://omn.kr/1ygd6

월간 옥이네 통권 58호 (2022년 4월호)
글 한수진 사진 한수진, 월간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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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생선국수 가게들 모습
 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생선국수 가게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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