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2 15:23최종 업데이트 22.05.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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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서민에 주어지는 재난지원금에 고통의 순위를 매겨 차등지듭하는 것이 지나치게 인색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 보겠다. 선별에 선별을 더하는 자린고비 지원금은 안된다.
 
윤석열 정부의 1호 공약이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50조 손실보상 방안 변경을 두고 곧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이 낸 비난 논평이 아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대신 코로나 피해가 집중된 계층에게 선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자 당시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이 고통의 순위를 매기는 자린고비 지원금은 안된다며 발표한 논평이다.

지난 4월 28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당선 즉시 소상공인 1곳당 600만 원을 일괄 지급해 총 50조 원 규모로 보상하겠다던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을 손실을 비례한 피해지원금으로 변경해 발표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551만 곳의 손실 규모를 추계한 후 차등지급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과학적 추계 기반의 온전한 손실보상을 위한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2022.4.28 ⓒ 공동취재사진

 
2년 전 김은혜 대변인의 표현 대로라면 안철수 위원장의 말은 고통의 순위를 매기는 과정을 통해 "소고기를 사 먹을"(28일 안 위원장은 "형편 괜찮으신 분은 돈을 받으면 소고기를 사서 먹었다"라고 말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덜 주거나 안 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급 시기와 세부적인 지원 액수도 알려주지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의 대선 기간 '취임 즉시'와 '600만 원 지급'의 명시적 약속을 생각한다면 공약 파기라고도 볼 수 있다.  

총선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 또
 
"현 정부가 제시한 200~300만 원으로 뭘 하냐며 총 천만 원 일괄지급+손실보상 해주겠다던 당선인님. 소상공인들 표의 힘으로 당선되셨으면서 막상 당선되고 나니 방역지원금 600만 원 일괄지급 하겠다던 1호 공약부터 취임도 전에 파기하시는 분을 국민들이 무슨 신뢰와 믿음으로 나라 운영을 맡깁니까?"
-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누리집 '국민이 당선인에 바란다'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누리집 '국민이 당선인에 바란다'에는 공약 파기를 비판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룬다. "제발 쫌 삽시다"라는 읍소형, "지난(번에 받은) 지원금으로 소고기 국거리 반 근 샀어요. 이제 소고기 안 먹을 게요. 공약대로 방역지원금 주세요" 등의 뼈있는 농담형, "표 구걸을 위한 정책으로 오해 받기 전 약속 대로 추가 600만 원 지급 지키라"라는 항의형 등이 다수를 이룬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 반응도 다르지 않다.


"검찰 출신이라 정직할 줄 알았더니 다른 정치인과 똑같아요."

식사하러 들른 식당의 주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종로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와 지원에 나선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2020.4.6 ⓒ 이희훈

 
국민의힘이 코로나 지원 대책에서 우왕좌왕하고 약속한 말을 번복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4월 5일 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전 국민에게 일주일 안에 50만 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보다 앞선 3월 29일 선거 총괄을 맡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을 '직접·즉시·지속적'으로 재난 상황이 끝날 때까지 보전해줘야 한다"라며 100조 원의 재원을 확보할 것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패하고 6일 만인 4월 21일 미래통합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미사용) 예산을 전용해서 100조 정도를 마련하고, 그중 국민 1인당 50만 원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게 총선 당시 얘기"라며 나라 빚까지 내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지난 2021년 7월 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 여러 현안에 합의했다. 합의 직후 국민의힘 수석부대변인은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고 지급 시기는 방역 상황을 봐서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고 기자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100분 만에 번복되었다. 현금 살포는 포퓰리즘이라는 국민의힘 강경파의 반발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는 선별지급, 선별지원이 당론이라며 속보 경쟁에 따른 오보였다고 언론과 대변인에게 책임을 넘겼다.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국정이 장난인가? 국정과 민생을 손바닥 뒤집듯 농락하는 야당을 개탄한다"라고 성토하기도 했다(관련기사: '100분 대표' 이준석, 대변인 탓했지만 사면초가 http://omn.kr/1uff1).

국민의힘 코로나 지원 대책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선거 때면 50조, 100조를 마련하겠다, 일주일 안에 전 국민 50만 원 지급하겠다, 당선하면 취임 즉시 600만 원 지급하겠다고 약속한다. 선거가 끝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말을 바꾼다. 지난 총선도, 이번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다.

베팅하듯 민주당보다 더 큰 지원안을 발표하는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지원을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거나 나라 곳간 거덜내기라고 깎아내린다.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은 국민과의 계약

의심도 했지만 윤 당선자의 '취임 즉시 600만 원'이라는 확신에 찬 약속에 이번에는 다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안철수 위원장의 발표에 대해 인수위 측은 손실보상은 지난 2년간 전체 손실을 추계한 것이며 현 정부보다 훨씬 더 두텁고 넓게 지원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민 소통을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공약이 국방부와 외교부 청사 이전으로 변질된 것만큼이나 혼란스러울 뿐 이해도 믿음도 가지 않는다. 실외 마스크 해제 발표에 과학적 결정인지 의심한다고 한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피해보상 규모도 지원 시기도 밝히지 않는 지원 대책에 대해 과학적 추계에 근거했다고 한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건 인수위만 아는 과학적 추계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그간 보여준 지원 정책에 대한 태도다. 국민의힘은 코로나 지원에 진정성보다는 당리당략으로 접근했다. 이번 소상공인·자영업자 50조 손실보상 방안 변경 발표로 또 한 번의 불신을 더 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9일 오후 충북 음성군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충북혁신도시 및 국립소방병원 건립 관련 브리핑을 받기 위해 참석해 있다. 2022.4.29 ⓒ 인수위사진취재단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고 반대로 하겠다는 약속만으로도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문재인 정부와의 상대 평가보다는 오롯이 윤석열 정부의 능력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시간이다. 더 이상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 보상은 손 벌리기가 아니라 국가의 코로나 방역 정책 때문에 입은 손실을 보상해 달라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은 국민과의 계약이다. 계약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공약을 번복하고 출범하는 새 정부를 축하해 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 전 국민 지지율이 최저라는 윤석열 당선자. 남 탓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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