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980년 5.18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으로 근무했던 김충립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
 지난 1980년 5.18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으로 근무했던 김충립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김충립 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원회) 전문위원은 특별하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을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소속으로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보안반장으로 파견나가 있던 그가 10년이 넘도록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5.18 당시 '신군부의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쓰리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 등 신군부 핵심인사들과 갈등하다 강제로 예편당한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김충립 위원은 지난 2012년부터 '박근혜-전두환 프로젝트'와 함께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2013년 10월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과 고명승 전 제3야전군사령관 등 5공 인사들과 5.18 관련 4개 단체(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윤동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구속부상자회) 측 인사들이 참여하는 '5.18 화해를 위한 정책세미나'를 열 예정이었다. 5.18기념재단 측을 설득해 어렵게 합의해낸 세미나였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반대하고, 정호영 전 사령관이 세미나가 열리기 직전에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취소됐다.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던 김충립 위원은 그로부터 2년 반 뒤인 2016년 4월 27일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연희동 자택에서 전두환씨와 광주의 화해를 위한 모임을 주선했다. 정호용 전 사령관, 고명승 전 사령관과 함께 전두환 씨는 물론이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가까웠던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도 참석한 자리였다. 전두환씨가 광주와의 화해에 동의하며 '화해 요청 기원문'을 작성해 내놓았고, 본인이 "돌을 맞더라도 광주에 사과하러 가자"고 말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씨를 보좌하던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모임 직후 "전두환 대통령의 사과와 화해는 없었다"라면서 4.27 모임의 성과를 전면 부인했다(2016년 5월). 이어 민정기 전 비서관의 주도로 '북한군 개입설' 등 지만원씨의 주장이 그대로 반영된 <전두환 회고록>(3권짜리, 2017년 4월)이 출간됐다.

이에 5.18단체들과 고 조비오 신부 유족이 각각 출판·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사자명예훼손 소송을 냈고, 전두환씨는 재판이 진행되던 중에 사망했다(2021년 11월 23일). 이로써 전두환씨의 '5.18 사과'도, '전두환-광주의 화해'도 물거품이 됐다. 

전두환의 '화해 요청 기원문' "광주 시민들-계엄군 모두 희생자..." 
 
지난 2016년 4월 27일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을 만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지고 나온 메모.
 지난 2016년 4월 27일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을 만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지고 나온 메모.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10년이 넘도록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추진해온 김충립 전문위원은 지난 4일 5.18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에 대한 사과없이 죽음으로써 스스로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라며 "광주에서 희생된 분들이나 광주 시민들에게 한을 남겨놓았고, 그 한은 자손대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충립 위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발포를 포함한 잘못에 대해 총체적인 사과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라며 "그 기록만으로도 광주 희생자들이나 광주 시민들이 위로를 받아야 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에 대해 총체적인 사과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근거와 관련해 김충립 위원은 4.27 모임 때 전달받은 전두환씨의 '화해 요청 기원문'을 제시했다. '화해 요청 기원문'은 모임 전날(4월 26일) 전두환씨가 자필로 쓴 것이다. 전운덕 대종사에게 쓴 '화해 요청 기원문'을 배우자 이순자씨가 A4 두 장으로 타이핑했고, 이씨가 이것을 모임이 있던 날 김충립 위원에게 전달했다. '화해 요청 기원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전운덕 종사스님께서는 97년도에도 본인의 사면 복원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해주셨고, 이번에도 또 수고를 하고 계시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감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광주사태가 난 후 3개월 만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유로 학살자라는 누명을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그 누명을 벗었습니다. 저는 당시 보안사령관 겸 안기부장직에 있으면서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에게 지휘조언을 해줄 수 있었지만 작전에는 관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나는 한때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모두 왕생극락하기를 기원해왔습니다. 나는 늘 광주사태 때 희생된 시민뿐 아니라 사태를 진압하러 광주에 출동했다 희생된 계엄군 모두가 희생자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디 광주사태 36주년을 맞은 이때에 이북에서 원자탄을 만들어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때에 전 종사님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서로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고 국가발전을 위해 힘을 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두환씨 자필이 아니고, 5.18 진압작전 개입설도 부인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지만, 광주와 화해하려는 그의 뜻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화해 요청 기원문'의 타이핑 원본은 4.27모임 당시 기록자로 참여한 월간 <신동아>에서 보관하고 있다.

'사과문' 시연하자 "좋다, 돌을 맞더라고 광주에 사과하러 가자"
 
지난 2016년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과 만났다.
 지난 2016년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등과 만났다.
ⓒ 월간 <신동아> 제공

관련사진보기

 
김충립 위원은 "그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포함한 총체적인 책임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요청서를 제출했고, 저에게 '어떻게 사과하면 되느냐?'고 요청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모임에서 한 말을 종합해서 '사과문'의 연습을 시연했다"라고 전했다. 당시 김 위원이 전두환씨의 요청으로 시연했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문 요지는 이렇다.   

'본인은 5.18 당시 중요직(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에 있던 자이고, 5.18이 끝난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대통령이 된 자로서, 5.18 당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광주 시민들에게 총체적인 유감의 뜻을 표한다.'

김충립 위원은 "제가 그렇게 사과문을 대신 시연했더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좋다, 좋아, 돌을 맞더라도 김충립을 앞세워 광주에 사과하러 가자'고 했다"라고 전했다. 특히 전두환씨가 "돌을 맞더라도 광주에 사과하러 가자"라고 했다는 대목과 관련해서는 "그 육성이 녹화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충립 위원은 "이날 모임 대화를 녹화한 것을 현재 월간 <신동아>에서 가지고 있다"라며 "이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과 광주에 대해 사과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충립 위원은 "5공과 5.18의 화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것보다 더 중요하게 사과의 의지를 밝힌 적이 없다"라며 "저는 '전두환은 광주에 사과하지 않았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니다'라고 하기 위해 월간 <신동아>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받아서 위원회 조사자료로도 쓰고, 5.18기념관에 역사적 증빙자료로 제출할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 18일 월간 <신동아>에 공문을 보내 4.27모임 당시 대화 녹화, 전두환씨의 '화해 요청 기원문' 타이핑 원본의 제출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공문에서 "5.18민주화운동 핵심관계자의 사과와 관련된 진실을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라며 "이 자료들이 여러 면에서 본 위원회의 조사업무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자료 제출 요청의 배경을 설명했다.

"민정기·허화평·장세동이 5.18 사과 막았다고 생각"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와 유가족들이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2021.11.27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와 유가족들이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2021.11.27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전두환씨가 5.18에 대해 '총체적 책임'을 인정하고 광주에 사과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사망하기 전까지 그러한 사과가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두환씨가 '화해 요청 기원문'을 제출하고, "돌을 맞더라도 광주에 사과하러 가자"라고 말했다는 2016년 4월 27일부터 그가 사망한 2021년 11월 23일까지 5.18에 대해 사과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김충립 위원은 '개인 생각'임을 전제로 전두환씨의 '5.18 사과'를 막은 측근들로 민정기 전 비서관과 허화평 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장세동 전 특전사 작전참모(이후 제3공수특수여단장 역임)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민정기 전 비서관의 배후가 허화평이고, 그(허화평)의 배후가 장세동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충립 위원은 "그 측근들은 12.12(1979년, 신군부 반란), 5.17(1980년, 비상계엄 확대), 5.18(1980년)로 이어지는 역사는 자기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음모한 사건이 아니고, 오직 국가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들이 구국적 차원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5.18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측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없었던 일로 폐기하고 사과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예를 존중한다면서 지금까지 이러한 헛된 주장을 반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끝내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만든 측근들에 대해 대단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불우하게 함은 물론이고 온 국민에 대한 예우도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독선만을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김충립 위원은 "2016년에 사과했더라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동서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위해 (5.18 문제를) 매듭짓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줬을 것이다"라며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주장에 부응하다 보니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결론났다"라고 꼬집었다.

"누가 권유할 게 아니라 전두환 유족들이 결단해야"
 
지난 2016년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월간 <신동아> 기자 등과 만났다.
 지난 2016년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운덕 천태종 대종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월간 <신동아> 기자 등과 만났다.
ⓒ 월간 <신동아> 제공

관련사진보기

 
전두환씨가 살아생전에 5.18 사과를 하지 못한 채 사망했지만 여전히 '전두환-광주 화해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이 김충립 위원의 생각이다. 김 위원은 "4.27 모임에서 본인이 화해를 원한다는 요청서를 줬고, 본인 스스로 '광주에 사과하러 가자'고 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유족이 직접 밝히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김충립 위원은 "금년 5.18 전에 아무런 이유 없이 전두환 전 대통령 유족(이순자씨와 자녀들)이 4.27모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했던 사과를 그대로 재현하고, 광주는 이를 받아들여 화해의 매듭을 지어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라며 "누가 권유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전두환 유족들)이 풀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특히 "측근들은 5.18에 대해 영원히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충립 위원은 "이렇게 5.18 화해에 대한 유종의 미를 거둔 뒤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분묘를 쓰고 자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어렵게 만든 측근들의 말을 듣지 말고 유족들이 결단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충립 위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이 하는 것을 보라"라며 "노재헌은 사과하러 광주에 두 번이나 갔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를 국가장도 시켜주고 묘도 쓰지 않았냐?"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역사의 죄인이 됐으니 유족들이 결단해라"라고 거듭 유족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관련기사] 
[인터뷰①] "최태민 루머에 침묵으로 동조" 박근혜와 전두환이 틀어진 8가지 이유 http://omn.kr/k32h
[인터뷰②] 그는 왜 '전두환-광주 화해 프로젝트를 추진했나? http://omn.kr/k3nw
[인터뷰③] "전두환, 발포 명령 안 했지만 책임질 생각 있어" http://omn.kr/k3nv
[인터뷰④] "전두환 회고록 없어, 이순자가 '5.18 사과' 더 적극적" http://omn.kr/k3nu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에게 섭섭해 한 진짜 이유는? http://omn.kr/3ars
"장세동은 5·18 수일 전에 왜 광주에 내려갔을까?" http://bit.ly/99vsxi
"5·18 '북한-미국 개입설'은 사실무근" http://bit.ly/dsudg4

태그:#김충립, #전두환, #5.18 사과, #노재헌,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댓글4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