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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용근씨의 글입니다[편집자말]
빵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빵을 먹기로 했다. 오늘 회사에서 부장이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가.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럴 때일수록 달콤하고 향기로운 빵이 필요하다. 빵만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조급함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빵집으로 간다. 미리 앱으로 포장 주문까지 했다. 매장에 도착만 하면 빠르게 낚아채서 입으로 빵을 넣을 수 있다. 새가 지저귄다. 나는 뛰고 있다. 컥 문을 열어 젖힌다. 그리고 당황했다.
 
'딱, 딱, 딱, 딱, 딱...'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문을 여니 직원이 안 보이고 뭉툭한 칼질 소리만 난다. 나처럼 포장 주문을 해서 빵을 가져가려는 사람들, 매장에서 빵을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어림잡아도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계산하려면 20분은 넘게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직원이 지금 계산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지옥 같은 상황인가.
 
"아, 계산 안 해요? 뭐 하는 거예요?"
"엄마 배고파. 엄마아아앙~ 엉엉."


빵집에서 일어난 전쟁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지금 보고 있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 떠나기도 하고 직원을 향해 표현하기도 어려운 욕을 뱉기도 한다.

나도 배고픔과 예민함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의 짜증은 곧 나의 짜증이기도 했다. 도대체 뭐 하길래... 직원은 어디 있나 궁금했다. 화가 났다. 찌푸린 미간의 힘을 이용해 목을 올려 무슨 일인지 찾아봤다. 그러다 매장 내 유일한 직원이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계산대 뒤 주방에서 그가 하는 행동을 발견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대를 처참히 무너뜨린 말
 
대기줄 맨 앞에서 그의 칼질을 유난히 맹렬하게 쳐다보는 손님이 있었다.
 대기줄 맨 앞에서 그의 칼질을 유난히 맹렬하게 쳐다보는 손님이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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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게트를 자르고 있다. 그것도 여러 개를. 대략 10개 정도로 보였다. 얇은 손목으로 바게트를 매섭게 잘라본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는 단단한 바게트와의 결투에서 패배하고 있다. 그의 칼솜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기줄 맨 앞에서 그의 칼질을 유난히 맹렬하게 쳐다보는 손님이 있었다.

팔짱 낀 그녀가 저 바게트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날숨 하나하나에 '고른 두께로 좀 썰어봐라' 등의 말을 잊지 않는 성실함을 보였다. 그녀는 그의 주인인 것처럼 말했다. 이 긴장 어린 공포의 상황을 만든 것은 그녀지만, 우습게도 다수의 원망 어린 눈빛과 분노한 욕지거리들은 혼자서 맹렬히 싸우고 있는 직원의 등에 내리꽂혔다.

얼마 후 드디어 바게트와의 결투에서 그가 살아 돌아왔을 때, 새로운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아니,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습이다. 바게트의 주인인 그녀가 계산할 때 '고생했어요'를 말할 것이라는 내 기대는, '이따위로 쓰레기 같이 일할 거면 그만둬라'는 그녀의 말에 처참히 무너졌다.

내 예상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직원을 향한 그녀의 진한 가스라이팅 이후 돌림노래 같은 손님들의 분노가 계산대 위에 서리기 시작했다. 그 분노는 작게는 한숨으로, 크게는 문장으로 표출됐다. 어떤 남자는 조언을 빙자해 '그렇게 일하면 안 된다'면서 해당 직원을 한 번 더 무너뜨렸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바게트를 써는 그의 등줄기를 20분 동안 바라보며 그의 등이 땀에 절어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등줄기가 얼마나 서늘했을까. 드디어 그의 얼굴을 문득 보았다. 그는 얼굴로도 눈으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그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

제 이름은 새X가 아닙니다
     
"이런 X같은 알바새X! 사장 나오라고 해!"

그는 치킨 껍질 튀김 부위가 바삭하지 않다고 내게 30분째 욕을 퍼붓는 중이다. 대학교 학생회관 치킨집 코너에서 일하는 직원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다. 술기운으로 얼큰히 취한 것을 보니 더 이상 합리적인 대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밤이 늦은 학생회관인데 기댈만한 구세주 사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큰 매장을 아르바이트생 2명이 지키고 있다. 오늘 내가 치킨을 정말 바삭하지 않게 튀겼나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등록금을 벌어야지. 일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다.

"다른 날은 맛있게 드셨는데... 똑같이 튀겼습니다, 손님."
"이 새X가."


'제 이름은 이 새X가 아니라 김용근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때, 이미 그가 던진 그릇에 있던 양념 소스가 내 얼굴에 흠뻑 묻었다. 순간 소스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게 얼마 짜리인데. 그도 오늘 어디서 힘들었겠지. 눈꺼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낸다. 내 감정도 닦아낸다. 내 기분도 닦아낸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리로 돌아가셔서..."
"이 새X. 사장 나오라고 해."


새콤한 치킨 무 국물이 다시 날라 왔다. 이번엔 날렵한 민첩함으로 그릇을 피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벽에 튀겨 다시 날아온 국물을 피할 순 없었다. 참아야지. 참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참는 일은 5500원 시급(2015년)에 포함돼 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그렇게 가르쳤다. 참아야지, 잘 참아야 한다. 올해 최저시급에 맞춰서 돈을 주는 알바는 다시 구하기 어렵다. 참아보자.

하지만 내 빨간 얼굴을 식당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학교 친구들을 발견하고야 말았을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잘 동여매고 있던 어떤 것들이 단숨에 범람하고 말았다. 얼굴이 뜨끈해짐을 느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앞치마 매듭을 풀고 가죽 장화를 벗었다. 닭을 손질하는 싱크대로 가서 물을 틀고 얼굴을 씻었다. 손에 붙은 튀김 쪼가리도 털어낸다. 그리고 도망치듯 거리로 나왔다. 내 일상이며 알바이자 노동이며 일자리였고 심지어 나의 꿈이 되기까지도 했던 그곳을 그렇게 도망쳤다.

다음날 직원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1년을 넘게 일한 곳이었지만, 내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 곳이었지만, 더 이상 용기가 나질 않았다. 버틸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술에 취해 욕을 하던 그 손님의 얼굴이 가끔 생각난다. 또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세상이 붉게 보이면 어떻게 할까, 그런 걱정도 이따금 한다. 살면서 내가 소스를 쥔 사람이 되면 소스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소스는 원래 달콤한 것이다. 소스는 먹을 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달콤한 것을 준 사람에게 화를 낸 기억이 없다. 나에게 소스를 던진 그는 기억상실증 환자임이 틀림없다.

그와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음을
 
나는 깊이 고민을 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입으로 몇 마디를 겨우 빼냈다.
 나는 깊이 고민을 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입으로 몇 마디를 겨우 빼냈다.
ⓒ 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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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주문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그는 목 깊은 동굴 안에서 힘겹게 목소리를 빼내고 있다. 몸뚱아리에서 힘을 겨우 빼내어 나에게 빵이 담긴 포장 주머니를 건넸다. 나는 깊이 고민을 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입으로 몇 마디를 겨우 빼냈다.

"무리하게 부탁한 그 손님 잘못이에요. 너무 위축되지 말아요."

조금 전까지 짜증 냈으면서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것이 참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의 처지에 있었음을 까먹고 있었기 때문일까. 옛 생각과 함께 배고픔도 저 멀리 가버렸다. 그가 소진한 감정과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뿐이다. 요새 알바자리 구하기도 어렵다는데, 그가 나처럼 도망치진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망친 나는 아직 그때 머물러 있다. 역시 조용히 있지 괜히 말했다 싶어서 떠나야겠다. 오지랖이다.

"감사합니다."

내 마음이 그에게 닿았을까. 다행이다. 그가 얼마나 오늘을 힘들게 기억할지 애처롭다.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너무 자신을 옥죄지 않았으면.

예전의 기억을 너무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감정을 살핀다는 것이 어려운 시대이지만, 우린 모두 대개 비슷한 경험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나 다른 이의 감정이 소중한 것처럼 내 감정이 소중한 때가 있었다. 마치 손에 잡힐 듯 내 감정이 쓰라렸던 기억을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 기억이 함께 살아갈 힘이 되고 모두의 감정을 보살필 인내를 만든다.

내 감정이 소중했던 그때의 기억으로 다른 이의 감정도 어루만지는 내가 되길. 그런 우리가 되길.

태그:#감정노동, #분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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