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5 11:48최종 업데이트 22.05.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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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KBS뉴스에 보도된 이수찬씨 사연. ⓒ KBS

 
"기자님, 수찬씨가 검정고시 만점자가 돼서 표창을 받아요. 근데 이거... 청주에 있는 방송국에 알릴 수 있을까요? 여러 곳에 보도되면 좋을 거 같아서요."

이달 초 받은 전화 한 통. 보도 요청 관련 전화는 흔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충북 청주권 방송국에 알려달라는, 평소라면 거의 없는 종류의 요청이기도 했거니와 요청을 하는 이와 받는 이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맥락'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은 이야기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사는 수찬씨는 근이영양증 장애를 갖고 있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점차 약해지는 질환으로 걷기나 달리기는 물론 수저 들기 같은 동작도 어려워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게 된다. 수찬씨는 이 병으로 초등학생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그런 수찬씨가 검정고시에서 만점을 받았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연달아. 2020년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서, 2021년에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올해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것이다. 근이영양증으로 스스로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머니와 활동보조사의 도움을 받으며 매일 학업에 정진한 결과다. 무척 기쁘고 값진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소식일수록 '납작'하게 다뤄진다. 중증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이루어낸 '감동 스토리'로만 보도된다. 왜 그리 힘들게 장애를 극복해야 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배경이나 맥락은 삭제된 채.

수찬씨 소식을 청주권 방송국에 알려달라고 요청한 이나, 그런 요청을 받은 이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럼에도 '비장애인의 일상에 장애인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보도를 요청하게 하고, 그런 요청을 받아들이게 한다. '장애 가시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수찬씨 소식을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는 분명 이런 절박함이 있다.

이를 모르지 않기에 조금은 무겁고 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에 연락했다. 청주권 언론사엔 아는 이가 많지 않아 연락처를 탈탈 털어 전화를 돌렸다. 평소 자주 교류가 있던 사이들은 아니지만 좋은 소식을 함께 나눈다는 즐거움이 분명 함께했다.

하지만 전화를 할수록 실망도 커졌는데, "그래서 보도자료는 나오나요?" 같은 다소 시큰둥한 질문을 꽤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보도자료를 보고 장애 정도나 상황을 고려해 보도 가치가 있는지 판단 후 시간이 되면 취재를 가겠다'는 것과 다르게 들리지 않았으므로.

언론사는 바쁘다. 다뤄야 할 의제도 많고 사건도 많을 테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름 정도 알고 얼굴 몇 번 본 게 다인 이가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와 하는 부탁이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터. 그래도 실망이 컸던 건 사실이다.

동시에 이 실망은 '가까이 있는' 지역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했다. 만약 수찬씨 상황을 지켜보거나 건너건너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반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최 알지 못하는 이의 이야기이니 '일단 내가 그 자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는지 확인부터 하겠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태도다. 그러니 웬만한 언론사들이 보도자료를 먼저 요구하는 것도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웬만한' 언론이 놓치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이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는 모두 어디로 흘러갔을까.

수찬씨는 왜 검정고시를 봤나
 

5월 11일 CJB 청주방송에 보도된 이수찬씨 사연. ⓒ CJB청주방송

 
그나마 다행이랄지. 걱정과 서운함, 실망, 체념 같은 감정이 뒤섞인 것이 무색하게 수찬씨 소식은 꽤 많은 언론을 탔다. 중증 장애를 극복하고 검정고시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은 수찬씨의 표창 수상 장면과 함께 TV, 신문, 인터넷 포털에 오르내렸다.

다만 그 이야기는, 역시나 우리가 우려했던 대로 납작했다. 그가 왜 초등학교도 졸업할 수 없었는지, 왜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검정고시에 도전하게 됐는지, 지난 삼십여 년간 그의 삶은 어땠는지, 옥천에서 청주까지 시험장을 오가기 위해 어떤 고초를 치러야 했는지 등은 생략됐다.

수찬씨의 이야기를 이렇게 다루고 그치는 데는 분명 우리 언론의 장애 인식이 그리 높지 않다는 배경이 있다. 그러나 지역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이유는 그 하나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이수찬'이라는 사람이 가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알았다면 일련의 보도는 이렇게 평이하지 않았을 테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룰 뿐인데, 왜 그가 살아온 삶의 굴곡과 흐름을 알아야 하냐고. 한 사건을 기록하고 보도하는 언론이 왜 그런 것까지 인지하고 이해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이런 말이야말로 언론의 진짜 역할을 망각한 것일지 모른다. 어떤 사건이 가진 맥락과 배경을 싹둑 자른 채, 눈에 보이는 단 하나의 현상·현장만 다루는 건 언론이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수많은 관공서 보도자료와 SNS가 대신하고 있다.

수찬씨가 외출하려면 휠체어는 물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호흡기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에 옥천에서 청주까지 이동하려면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장콜)를 이용해야 하는데, 개별 지자체가 따로 장콜을 운영하다 보니 시군 간 혹은 시도 간 이동이 쉽지 않다. 비장애인이라면 왕복 2시간이면 다녀올 곳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6시간 넘게 허비해야 하는 이유다.

이뿐인가. 애초 수찬씨가 근이영양증 발병 후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던 것도, 우리 교육이 여전히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럼에도 수찬씨의 검정고시 만점 소식을 전한 웬만한 언론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지역 언론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장애인 참정권 등의 측면과 관련해 이수찬씨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보도해온 <옥천신문>. 사진은 이수찬씨 보도 관련 옥천신문 기사 리스트. ⓒ 옥천신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옥천 주민들은 수찬씨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풀뿌리 언론으로 익히 알려진 지역 주간지 <옥천신문> 덕이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박탈당한 교육권과 이동권은 물론 참정권까지, 지역사회는 '가까이서 호흡하는' 지역 언론을 통해 수찬씨 그리고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부당함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수찬씨는 2020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거소 투표가 아닌 현장 투표를 진행했는데, 이를 통해 장애인 참정권 문제는 옥천 지역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됐다. 나아가 옥천군 선관위의 '장애인 등 거동불편 선거인 참정권 실현' 협약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누군가의 어려움 혹은 사건이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발생했는지를 아우르고 톺아보며 대안을 함께 찾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지역사회의 민도는 조금 더 높아지고 한 걸음 나아간다.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도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수찬씨를 단순히 검정고시 만점을 받은 중증 장애인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이렇게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장까지 고단한 길을 나서야 했던 이유, 정책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지를 고민하는 것. 옥천에서 이것이 가능한 것은, 지역 언론이 지역에서 함께 살고 함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기 때문이다.

광역 단위로 '큰' 소식만 다루는 언론이 아니라 나와 같은 공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언론, 그래서 내가 잊고 잃은 사람, 이야기, 풍경, 가치를 담아내는 지역 언론. 충실히 지역을 살아내는 언론을 곳곳에서 더 많이 만나고 싶다. 누군가는 보잘 것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사실은 나와 이웃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기록하고 전하는, 그런 언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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