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6 06:36최종 업데이트 22.05.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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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기술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웹캠을 통해 감시하기도 하고 키보드 입력을 체크하는 키로깅(keylogging) 기술도 사용된다. 기업 인트라넷을 통해 메일, 메신저, 웹서핑 활동 등을 모니터링 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기술 발전은 노동 감시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은 얼굴인식 카메라로 운전 노동자를 감시하고 물류센터 노동자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손목밴드를 개발하고 있다.


노동자 몸에 생체 칩을 이식하는 기술 도입이 증가하자 미국 인디애나 주 등에서는 이를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 모두는 머지않아 닥칠 한국 노동자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싶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고용주의 기본 욕구다. 사람이 직접 감독하던 것에서 기계에 의한 것으로 모니터링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기술 발전으로 더욱 은밀하고 전면적인 감시가 가능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모든 종류의 모니터링이 부당한 노동 감시인 것은 아니다. 업무 수행을 위한 정보처리, 기업 자산의 보호, 영업 비밀의 유출 방지, 때로는 노동자의 안전 등 다양한 이유로 사업장 및 업무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감시가 수반될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더욱 은밀하고 전면적인 노동감시가 가능해지고 있다. 지난 12일 부산에서 열린 ‘디지털 노동감시에 따른 노동인권 침해 방지 방안 마련 토론회' ⓒ 임병도

 
정당한 모니터링인가? 노동 감시인가?

반면 노동자는 비록 일정한 대가를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회사 내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노동 감시는 노동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여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노동 통제를 강화하고 인사 상 불이익을 안겨줄 수도 있다. 나아가 노동조합 결성이나 단체행동 등 노동자의 기본권 행사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정당화할 수 있는 노동자 모니터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둘러싸고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긴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 범위를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다.

2012년 MBC는 트로이컷이라는 보안 프로그램을 직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설치했다. 이 프로그램은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는 자료들을 중앙 서버에 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MBC는 이 사실을 직원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고 동의서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MBC 간부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전·현직 노동조합 집행부의 파일을 열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조합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개인정보 침해행위,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 침해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회사는 사내 보안을 위해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의 기능은 보안을 위해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또한 그 기능과 운영의 세부사항을 노동자에게 사전에 고지할 필요가 있다.

보안, 시설안전 등의 목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CCTV는 여전히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감시수단이기도 하다. 2020년에 직장갑질119는 CCTV 감시와 부당지시가 직장 내 괴롭힘 사례로 다수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한 회사는 직원들의 보안과 안전을 명분으로 직원의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하고 "CCTV로 보니까 화장실 갈 거 다 가고 인터넷 하고 그러더라. 똑바로 일해라"고 지시했다. 다른 회사는 점심시간에 쉬는 직원을 CCTV로 모니터링하면서 "쳐 자빠져 잔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에 보안앱 설치 요구

2014년 KT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로 업무지원단이라는 부서를 만들고 CCTV 등으로 이들을 집중 감시해서 논란이 됐다. KT는 "시설안전과 보안, 사고예방을 목적으로 CCTV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다른 부서가 있는 곳의 CCTV는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의 시설물을 폭넓게 비춘 반면 업무지원단 사무실 앞 CCTV는 직원들이 오가는 출입문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2015년에는 업무지원단 소속 노동자들에게 무선서비스 품질 측정 앱을 개인 스마트폰에 설치하도록 해서 문제가 됐다. 이 앱은 개인 휴대폰의 카메라, 현재 위치, 통화, 연락처, 캘린더 일정, 저장소, 문자메시지, 계정정보 등 12개 항목에 접근 권한을 요구했다. 한 노동자가 앱 설치를 거부하자 회사는 징계처분을 했고 결국 법정에까지 가게 됐다.

법원은 징계 무효를 선고했다. 법원은 해당 앱이 "노동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사용자의 업무지시 필요성보다 크다"고 봤다. 또한 "회사에서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없음을 노동자에게 입증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업무용 폰을 지급하는 등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없는 다른 대안이 존재했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CCTV는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감시수단이며 부당한 감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설비다. ⓒ 셔터스톡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에게 보안을 명분으로 MDM이라는 모바일관리 앱을 설치하도록 했다가 논란이 돼 철회한 바 있다. 2014년 포스코, 2020년 현대자동차 등 민간 기업에서도 MDM을 둘러싸고 노동 감시 논란이 여러 차례 발생한 적이 있다. MDM은 원격으로 모바일 기기의 카메라, 마이크, 네트워크 등을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사용해야 하고, 그 세부 내용을 노동자에게 제대로 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동 감시로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

협의 없고 제대로 알리지 않아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모니터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모니터링 기술을 활용해야 하고, 노동자의 프라이버시를 덜 침해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또한 해당 기술이나 설비를 통해 어떤 개인정보가 수집·처리되는지 정보주체인 노동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것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적법 요건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요건을 어기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재)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으로 수행한 '디지털 노동감시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자기술의 활용 현황이나 개인정보 처리방침이 노동자에게 제대로 고지되지 않고 있다. 고지 없이 감시설비를 설치하는 비율이 20~30% 정도, 설치 후에 고지를 하는 비율이 15~25% 정도로 전반적으로 감시설비 설치에 대한 사전고지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감시설비를 도입할 때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대표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협의하는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근로자 개인정보 처리방침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겠다'가 42.4%로 가장 많았고 '존재하지 않는다'가 18.1%로 나타났다.
 

직장에서 디지털 전자기술 설치 또는 운영 관련 고지 및 안내 여부 ⓒ 진보네트워크센터, (재)공공상생연대기금

 

세부규정 없고 처벌조항도 없어

기업에서는 왜 근로자참여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까. 협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세부규정이 없고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참여법에는 노사협의회 협의사항의 하나로서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 설비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근로기준법은 개인정보 및 감시설비에 대해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노동 감시가 직장 내 괴롭힘이나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고용노동부가 개입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 감시의 규율에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할 수는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처리를 규율하는 일반법이고, 노동 감시 설비를 통해서도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수집·처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자와 정보주체 사이의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할 뿐 고용주와 노동자라는 특수한 근로관계에 적용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감독을 맡고 있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금까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소비자의 개인정보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따라서 노동자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관심과 전문성이 떨어진다. 다행히 2022년 핵심 추진과제의 하나로 '디지털 노동 감시 개선'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노동 감시 실태를 파악하고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의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모니터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노동자의 프라이버시를 덜 침해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 셔터스톡

 
개인정보보호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노동 감시와 관련한 규범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노동자 개인정보의 수집·처리와 감시설비의 설치를 근로조건의 하나로 규정해야 한다. 그러면 감시설비 도입이 노사협상 대상이 되고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감독 권한도 명확해진다.

사업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감시설비를 설치한다면 노동자의 관점을 고려하기 힘들며 운영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감시설비를 도입할 때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대표와 합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감시설비 설치에 대해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받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노사 간 권력 관계가 동등하지 않아 자유로운 동의가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에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대표와 집단적인 협상을 하도록 한다면 감시설비의 기능, 활용 범위, 감시설비를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의 처리 방식 등 세부적인 논의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CCTV를 설치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고용주의 사업상 정당한 이익을 보장하면서도 노동자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CCTV의 성능, CCTV가 비추는 범위, 영상정보 활용목적의 제한(예컨대 징계목적 활용 금지 등), 보관 기간 등을 협의할 수 있다.

노조도 소극 대응

유럽연합 국가들 역시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할 뿐만 아니라 노동법 등을 통해 노사협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고용법은 회사가 노동자 대표와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독일 직장협의회법은 직장협의회가 노동자 모니터링 장비의 사용에 반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충분한 고지나 협의 없이 회사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노동 감시 설비를 도입해왔다. 업무 효율성 향상, 보안 및 영업비밀 보호, 자원 관리 등의 목적만 중요시할 뿐 이런 설비를 통해 노동자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수집되고 노동자가 감시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왔다.

노동조합 역시 이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다. 이에 따라 노동 감시에 대한 대응은 항상 다른 중요 의제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업장에 도입되고 있는 각종 전자장치들이 감시설비로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그 도입과 운영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투명성 보장이나 노동조합과의 합의 의무화 등을 법제화하면 개별 사업장에서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오병일 /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 오병일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오병일은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정보인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간 인터넷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망중립성 등 정보인권 옹호를 위한 활동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빅테크 규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url.kr/jikh9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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