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한몸에 받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상영 분위기는 말 그대로 뜨거웠다. 제75회 칸영화제가 후반으로 접어든 26일 오후 7시(현지 시각 기준) 시작한 프리미어 상영 중 박수갈채가 나온 것은 물론이고, 기립박수 또한 타 경쟁부문 상영작에 비해 다소 긴 10분가량 이어졌다.
 
이러한 반응은 사실 상영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고, <기생충>의 주역인 송강호, 그리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나 <이태원 클라쓰>로 이미 국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지은(아이유), 이주영 등이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배우진이 도착한 당일 니스 공항은 물론이고, 영화가 상영된 뤼미에르 대극장 주변은 이들 배우의 사진을 든 팬들 행렬도 만날 수 있었다.

또다른 대안 가족의 탄생인가
 
영화는 일종의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인 베이비박스를 소재로 여전히 국내에서 낯선 입양 및 보육원 문제를 다뤘다. 동시에 감독 특유의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감지할 수 있 있었다. 특히나 일본 명장과 한국의 배우진, 한국 자본이 협력한 결과물이라 관심도 또한 높았다.
 
가족의 해체 문제와 그로 인한 유사가족, 일종의 대안가족의 형태로 자신의 작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장은 그대로다. 미혼모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소영(이지은)과 그의 아이를 팔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게 되는 브로커 일당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 그리고 이들의 범죄 행위를 추적하는 두 형사(배두나, 이주영)의 이야기가 교차로 등장하는 구성이다.
 
아이를 팔아넘겨야 하는 상현과 동수 일행은 일종의 거짓말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으려는 여성청소년계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이주영)는 마치 정의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영화는 묘한 비틀기를 시도하며 브로커 일행의 선한 행동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한다.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 CJ ENM

 
윤리적 관점에선 작은 범법 행위라도 용서할 수 없겠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에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를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아이를 버린 행동 자체를 비난하는 동수를 향해 소영이 "아이를 낳아 버리는 것과 낳기 전에 죽이는 것 중 어떤 게 죄가 더 무거울까"라며 쏘아붙이는 대사는 어쩌면 <브로커>의 뼈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요하며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이 문제에 분노한 창작자라면 미혼모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마련이겠지만, 관객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원하는 건 그와 다르다.

날 선 비판 보단 때로는 부드러운 설득, 혹은 무언의 공감이 큰 힘을 발휘할 때도 있는 법. 틈틈이 등장하는 상현과 동수의 과거 사연으로 어쩌면 괴이해 보일 수 있는 이 유사가족의 연대감 내지는 유대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시작은 돈을 노린 범죄였지만, 결국 소영의 아이 우성에게 걸맞은 좋은 부모 찾기 프로젝트로 변모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백미다. 감독 입장에서도 이런 시도는 나름 과감한 선택이었던 걸로 보인다.
 
밀도 높았던 취재 과정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 CJ ENM

 
꽤 오래전부터 한국 배우와 협업을 원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6년 전부터 준비해왔음을 밝힌 바 있다. 상영 전날인 26일 한국 기자단과 티타임 자리에서 감독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곳을 비롯해, 아이와 엄마가 함께 사는 쉼터, 실제로 인신매매 및 판매 알선 브로커를 수사한 형사, 아이를 입양한 부모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등 여러 각도에서 취재했다"라며 "처음 제목은 '요람'이었고, 이후부턴 '베이비 박스 브로커'라는 제목을 오랫동안 가지고 갔다. 그만큼 세 측면의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고를 칸영화제 관객들도 느낀 걸까. 영화 상영 중 특정 장면에서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일이 있었다. 유사가족의 막내 해진(임응수)이 재치 있게 거래 실패를 놀리는 장면에서였다. 상영 직전 감독과 배우가 입장할 때, 영화의 리더필름(제작사와 배급사 등의 로고가 뜨는 장면), 그리고 상영이 끝난 후 의례 나오는 박수와 다른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칸영화제에 초청된 여러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이같은 상영 중 박수가 나온 사례는 2016년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던 <부산행>이 있었다. 따지면 6년 만인 셈이다.
 
이를 인지한 듯 기립박수 세레모니에서도 주최 측은 감독에게 최대한 마이크를 늦게 넘기면서 충분히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마이크를 전달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티에리 프리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길게 박수를 유도하는 등) 서스펜스를 잘 만들어 식은땀이 막 났다"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영화를 찍느라 힘들었는데, 영화를 여러분과 함께 정상적으로 나눌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우들 또한 감정적으로 복받치는 모습이었다. 특히 배우로서 칸영화제 참석이 처음인 이지은은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상영 직후 해외 평단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유려한 편집과 <버닝> <기생충>을 경험한 홍경표 촬영 감독의 영상은 절망으로부터 구원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라며 "월드시네마의 걸출한 휴머니스트(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언제나 기대한 결과를 내놓는다"라고 평했다. <데드라인> 또한 "캐릭터들이 잘 살아있다"라는 취지의 리뷰를 내놓았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별점 5개 만점을 줬던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 평론가는 "베이비박스라는 한국적 현상에서 영감받은 기분 좋은 로드 무비지만, 범죄 드라마를 다소 천박하게 그렸다"라며 별점 2개를 줬다.
 
한편 이날 시사엔 배우 뱅상 랭동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그가 조용히 영화를 음미할 수 있는 시사가 아닌 관객들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프리미어 상영에 왔다는 건 그만큼 심사위원들의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다.
 
<브로커>는 31일 국내에서 언론 시사회를 가진 후 6월 8일 개봉한다.  
브로커 칸영화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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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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