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4 14:17최종 업데이트 22.06.0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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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밸브도 잠겨 있고 담뱃불도 꺼졌다. 거실 스위치도 내려져 있고... 박종언은 신발을 신으려다 돌아섰다. 실내는 어둑하다. 재떨이도 화장실 등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박종언은 문을 나서 열쇠를 걸었다. 딸깍 딱깍 열 번을 돌렸다. 틀림없이 잠겼고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층계참까지 내려가다 몸을 돌려 다시 올라갔다. 재차 문고리를 만져보았다. 제대로 잠겨 있다. 내려가다 돌아서고 내려가다 돌아섰다. 핸드폰에선 7시 30분의 알람이 울린다.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출근길, 이제는 가야 한다. 박종언은 '떠나자' 맘 속으로 외치며 계단을 끝까지 내려 갔다.
 

마인드 포스트의 편집장 박종언 그는 죽음보다 깊은 글을 쓰려 한다. ⓒ 민병래

 
2019년인가 어느 여름날 아침 집을 나서려는데 박종언은 뭔가 불안해 발을 뗄 수 없었다. 선풍기는 꺼져 있고 세탁기도 멈춰 있고 다 확인했는데 그는 맴맴 돌 뿐이었다. "이제는 나가자"를 천 번쯤 외쳤으리라. 가까스로 집 밖을 나서 지하철을 탔는데 자기도 모르게 다음 정거장에서 집 방향으로 가는 전철로 바꿔 타고 말았다.

병원에서는 '확인강박증'이라고 했다. 박종언은 2010년 서울대 정신병원에서 조현병 확진을 받고 망상증을 조절하는 '클로자핀'을 오랫동안 먹었다. 그 약이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망상증도 힘겨운데 강박증하고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최근 2, 3년 열쇠를 걸어잠그면 보통 100번 정도 손잡이를 돌렸다. 확인 또 확인, 피가 말랐다. 손잡이는 아예 달창날 지경이었다. 오늘 아침은 그래도 양반이다. 10분 만에 벗어났으니... 박종언은 마포에 있는 직장, 정신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신문사 '마인드포스트'를 향해 잰걸음을 옮겼다. 

브라질로 떠난 유학에서 만난 고난

1971년생 박종언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 90학번으로 들어가 브라질 문학을 공부하고, 1997년 상파울루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고난을 만났다. 1998년경이었나, 우연히 펼친 잡지에서 한 주교의 후배 사제가 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사연을 접했다.

이 주교는 브라질의 불평등을 규탄하고 경작자에게 토지를 돌려주라고 외치던 인물이었다. 성당에 있던 나무에는 "다음은 네(주교) 차례다"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고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그 주교는 교황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읽으며 박종언은 돌연 브라질이 무서워졌다.

상파울루의 바람이 매서웠다. 멀리 아마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음 송곳을 품고 있는 듯했다. 상위 1%가 토지의 80% 이상을 가진 나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마약조직에 의해서 하루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영혼을 느끼고 브라질 문학의 정수에 빠지려 왔는데 사람들이 매일 총 맞아 죽는 현실을 만날 줄이야!

박종언은 싸락눈 내리던 모교의 풍경, 고향 울진 바다의 파도 소리를 떠올리며 4년을 버텼다. 2001년 귀국할 때, 그의 낯빛은 중늙은이였다. 고향으로 돌아가선 방안에 틀어박혔다. 두 달 세 달이 넘어가자 어머니는 먼 나라 갔다 오더니 무엔가 씌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엉뚱하게 조상을 떠나보내는 '천도재'를 올렸다. 

박종언은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다. 서울 누나 집에 머무르며 소규모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월급이 제때 안 나왔다. 여기저기 옮겨봐도 마찬가지, 아예 월급이 없고 광고 팔아서 먹고살라는 데도 있었다. 불안한 하루하루, 걱정하는 누나와 갈등이 깊어졌다. 그때 박종언의 머리 한 귀퉁이가 출렁거렸다. 마음속의 불안감, 무력감에 불씨가 붙은 듯 꿈틀댔다. 브라질에서 4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불길에 휩싸였다.

박종언은 길을 가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갔다. '왜 날 쳐다봐?',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거 아니야?' 하며 시비를 걸었다. 길을 걷는 게 두려웠다. 오늘은 또 누구와 다툼을 벌일지, 어느 날 박종언은 이웃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는 '왜 나를 감시하냐'고 따졌다. 얼굴을 처음 본 이웃은 문을 닫으려 했고 박종언은 몸을 디밀었다.

병원에서는 심한 스트레스를 겪어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으며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박종언은 의사의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나 집에서 나왔다. 신문사는 그만두었고 잠잘 곳은 없는 처지, 고왔던 그의 손이 거칠어졌다.

박종언은 리어카를 하나 장만해 폐지를 주웠다. 사과 장사도 일 년 정도 했고, 엿장수도 했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울진바다에서 배를 타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천에서 덕적도를 오가는 꽃게배에 올랐다. 백팔십 센티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박종언은 초보였지만 쓸 만했다. 휴일 없이 한 달 내내 폭풍주의보가 있는 날만 빼고 일했다. 새벽 세 시부터.

그렇게 해서 첫 월급날 120만 원을 받았다. 그날 동료들과 인천부둣가를 걸었다. 누군가 그랬다 광부와 선원은 땅 위를 걸을 때가 행복하다고. 그의 발은 경쾌했고 그의 손은 술집 문을 열어젖혔다. 누나가 고생고생해 그를 찾았을 때 박종언의 방에는 빈 술병이 2층 높이로 쌓여 있었다.

"우리를 빼고 우리를 논하지 말라"

박종언은 조현병 진단을 받은 지 10년 만인 2010년, 누나와 형의 도움으로 서울대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그는 5개월 동안 망상증상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았다.

박종언이 서울대 병원을 나와 간 곳이 '공동생활가정',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내고 정신장애인 7~8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공시설이다. 시설장과 보호사가 있고 두세 명이 한 방을 같이 썼다. 한 곳에는 3년까지 머물 수 있는데 박종언은 구로구와 도봉구에서 각 3년씩 지냈다.

도봉구에서 지내던 시절, 보호사는 박종언에게 '정신장애인문학회'를 알려주며 여기에 나가볼 것을 권했다. 박종언은 제안을 반겼다. 문학회에 나가 10명의 글쓰기 동지를 만났다. 개중에는 망상과 환청으로 종잡을 수 없는 언어를 쓰고 자신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명을 맡았다는 기분에 종종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회장을 맡아 문학회를 이끌며 함께 글을 쓰고 합평을 주도했다.

박종언은 2014년 장애인 문학상에 응모해, 한센병을 앓은 한하운시인에게 바치는 시 '위로'로 운문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정신장애의 아픔을 그린 소설 '한줌의 슬픔'으로 상금 300만 원의 금상을 받았다. 정신장애인 남편과 아내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의 작품이었다.

이런 박종언을 정신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던 교수 한 명이 눈여겨 봤다. 그는 박종언에게 정신장애인이거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사람이 기자인 당사자 신문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당시 '에이블뉴스'나 '비마이너' 같은 장애인 전반을 다루는 매체는 있지만 정신장애인 문제에 집중하는 미디어는 없었다. 그는 동의했다. 제안된 지 3년 만인 2018년 6월, "우리를 빼고 우리를 논하지 말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마인드포스트'는 출범했다. 
 

마인드포스트 사회적 협동조합 창립 기념식 앞 줄 왼쪽부터 다섯번째가 박종언이다. ⓒ 박종언 제공

 
어렵사리 돛을 올렸지만 '사회적 협동조합' 형식의 신문사 출자금 모금이 신통치 않았다. 사무실을 마련하고 기자 2, 3명의 월급을 줘야 하는 데 턱도 없었다. 목돈을 대 준 세무사가 있었지만 박종언이 편집장으로 받은 월급이 고작 30만 원(몇 달 뒤 50만 원이 되었지만)이었다. 다른 기자 2명은 기고자 형식으로 일을 했다.

그래도 박종언은 기뻤다. 고정 수입을 가져본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형님이 보증금을 대준 임대주택 덕에 주거비는 많이 들지 않았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돈과 누나의 도움으로 모자란 생활비는 해결되었다.

마인드포스트의 편집장을 하면서 박종언은 무엇보다 정신장애인을 범죄자로 보는 편견과 싸웠다. 사건 사고 기사에서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기자에게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정치인의 신중하지 못한 정신병 언급에 대해서도 적극 항의했다.

마포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설립 추진

박종언은 또 정신장애인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제도에 맞섰다. 많은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병원을 무서워한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고 '강제입원' 조항이 생김에 따라 가족의 요청을 받은 '사설응급단'이 정신장애인을 병원으로 끌고 가는 일이 많았다. 입원하면서 손발이 묶이고 치료명목의 일명 코끼리 주사를 맞고 의식을 잃는데 이 경험은 정신장애인에게 큰 충격이며 깊은 상처로 남는다.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조항은 2017년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도 여전히 보호자나 경찰, 행정부서의 장에 의해 '강제입원'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박종언은 정신장애인이 아프고 힘들 때 정신병원으로 갈지, 집에서 보호를 받을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응급입원 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강제입원은 안 된다고 꾸준히 글을 썼다. 그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묶인 적이 있었기에 이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마인드 포스트의 편집장 박종언 그는 죽음보다 깊은 글을 쓰려한다. ⓒ 민병래

   
마인드포스트가 어려운 가운데 자리를 잡아가면서 박종언은 '마포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그는 '마인드포스트' 협동조합을 주체로 이 사업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가 정신장애인을 온전히 돌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족이 사고를 치지 않게끔 장애인을 관리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가족은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 어떻게 돌봐야 할지를 모르고 가족 자신이 심한 우울감을 겪는 경우가 많다.

발달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가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정신장애인의 돌봄을 '국가책임제'로 해야 당사자도 가족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

박종언이 서울시에 제안한 '센터'는 '국가책임제'로 나아가기까지 그 공백을 메꿔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센터'를 세워 서울 서북권(마포, 서대문, 용산, 은평, 종로, 중구)에 사는 정신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장애인 서로가 상담하고 응원하는 서비스를 시행하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2021년 서울시 '정신질환자 자립생활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연간 5억 2천만원의 예산을 2021년 8월부터 2023년 말까지 지원받게 되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자립생활센터'가 탄생한 것이다. 이 사업을 주도한 박종언은 센터장이 되었고 덕분에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월급을 받게 되었다. 현재 센터에는 12명이 운영지원, 자립지원, 권익옹호팀으로 나눠 일하며 정신장애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박종언은 마인드포스트와 센터에서 정신장애인을 위해 일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꼈다. 망상증이나 강박증도 많이 완화되었다. 강박증은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는데 기쁘게 일하고 성과를 내면서 확연히 좋아졌다. 집을 나서려면 30분에서 1시간 걸렸던 시간이 요즘에는 오늘 아침처럼 10분 안팎으로 줄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박종언은 출근하면 9시부터 6시까지 센터장으로서 6시 이후는 편집장으로서 일하느라 매일 별을 보고 퇴근한다. 덕분에 알코올 중독도 다스려졌다. 공동생활가정을 나오면서 하루 페트병 두 개의 맥주를 마셔야 잠들었던 박종언은 두 개의 사업 덕에 술 먹을 시간이 빠듯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인드포스트의 편집장 역할을 후배에게 물려주면 박종언은 자기만의 글, "죽음보다 깊은 글"을 쓰려 한다. 장애인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다시 타올랐던 글쓰기 열정을 되살릴 작정이다.

박종언이 브라질 문학을 공부하며 접했던 브라질의 대표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바로 이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못다한 이야기>

① '마인드 포스트'나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홈페이지 http://www.mindpost.or.kr/에서 만날 수 있다. 2021년 '마인드포스트' 협동조합은 제41회 서울시 복지상 시상에서 장애인 인권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② 박종언이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건사고 기사와 싸우는 일은 그의 기본적인 일과다. 가령 2018년 4월 28일자 동아일보는 '화 못참아 부모 목 조르고 칼부림'이라는 제하의 정신질환자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의 뉘앙스는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2>에서도 정신병원에서 일탈한 정신장애인이 도심에서 흉기를 들고 시민을 위협하고 경찰이 이 정신장애인을 주먹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신장애단체들은 이 구성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더욱 널리 퍼트린다며 <범죄도시2> 제작진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③ 이 글의 전체 분량은 A4, 6매에 이르는데 여기선 지면 관계상 4매로 줄여서 게재했다. 이 글의 전문은 본 기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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