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스틸 이미지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스틸 이미지 ⓒ 유니버설 픽쳐스

 
콜린 트레보로 감독의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 개봉한 1일, 고민없이 영화관을 향했다. 오랜 '쥬라기 공원 마니아'로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이 영화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부터 시작된 쥬라기 시리즈, 그리고 2015년에 시작된 <쥬라기 월드>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내 유년기의 모든 것이었다. 존 윌리암스가 작곡한 쥬라기 공원 테마곡은 어떤 애창곡보다 먼저 나에게 새겨진, 노스탤지어의 결정체다.  초등학교 때에는, 나모 웹 에디터라는 프로그램을 두들기며 쥬라기 공원 팬 사이트를 만들었다. <쥬라기 공원 3>(2001)을 잇는 속편을 만들겠다며, 조악한 소설도 썼다. 쥬라기 공원의 주인공 앨런 그랜트 박사(샘 닐 분)은 나의 첫 번째 아이돌이었다. 쥬라기 공원의 태생적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트리케라톱스를 보자마자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공룡'이라며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사랑했다. 그 후 장래 희망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생물학자'라고 대답하곤 했다.

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한다. 거대하고, 신비하며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공룡의 팬이었고, 더 나아가 마이클 크라이튼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세계관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보다, 과학에 근거한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이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더 많은 설득력을 제시했다. '언젠가 공룡을 실제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쥬라기 공원 투어'라는 전시회에 다녀온 후 쓴 후기에서도, 나는 '유전 공학이 조금 더 발달해서 공룡을 복원시켰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동심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쉬움 남긴 시리즈의 최종판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스틸 이미지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스틸 이미지 ⓒ 유니버설 픽쳐스

 
시리즈에 대한 팬심을 배제하고 보자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아쉬운 속편이다. 스파이물의 형식을 빌린 중반부는 지루했고, 자연 섭리에 대한 장광설 또한 새롭지 않았다. 긴 대사보다 <쥬라기 공원>에서 이안 말콤 박사가 남긴 명대사인 'Life finds a way(생명은 길을 찾는다)' 한 줄이 더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시리즈에 돌아온 악역 루이스 도지슨(캠벨 스콧 분)은 일론 머스크를 연상시키는 CEO로 연출되었지만, 그 뿐이었다. '지상 최대의 블록버스터'라는 슬로건이 낯간지럽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2018)의 결말 이후, 공룡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 도심의 마천루에 익룡이 둥지를 틀게 된 세상이지만, 정작 '공룡과 인간이 조우했을 때의 혼돈'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다양한 공룡이 등장하지만, 시리즈의 주역 공룡인 '렉시'와 '블루' 등의 비중도 현저히 낮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육식 동물'로 소개된 기가노토사우루스는 인도미누스 렉스만큼의 공포도, 티라노사우루스의 위압감도 만들지 못했다. 콜린 트레보로는 복제 인간인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서먼 분), 그리고 바이오신 사가 탄생시킨 유전자 조작 메뚜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메뚜기가 아니라 공룡이다. 

'쥬라기 공원판 엔드 게임'이라는 주연 배우 크리스 프랫의 말처럼, 영화는 철저히 전작의 레거시와 오마주에 기대고 있다. 물론 <쥬라기 월드> 시리즈 자체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쥬라기 월드>는 <쥬라기 공원> 1편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했고,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를 닮아 있었다. 이안 말콤이 불을 휘두르며 공룡을 유인하는 장면은, 영락없는 1편의 오마쥬다. 이외에도 시리즈의 족적을 열심히 좇아온 사람들이라면 감동할만한 장면들이 많이 있다. 영화는 오랜 팬들을 위해, 철저하게 과거 지향적이다. 돌려서 다시 말하자면, 이제 끝낼 때가 된 것이다.

돌아온 박사님들, 추억 앞에서 '무장 해제'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스틸 이미지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스틸 이미지 ⓒ 유니버설 픽쳐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쥬라기 공원판 엔드 게임이 되지 못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서른 살 관객도 '공룡 박사' 지망생 시절의 나로 되돌려 놓는 데에는 성공했다. 오웬 그래디(크리스 프랫 분)가 파라사우롤로푸스를 몰아가는 설원의 풍경, 몰타에서 오웬과 아르키랍토르와 벌이는 '본 시리즈' 풍 액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숲속에서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를 위협하는 테리지노사우루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섬을 벗어나 다양한 배경을 활보하는 공룡의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사실 이 작품이 그 어느때보다 팬들의 기대를 모은 것은 공룡보다는 사람에 있었다. '쥬라기 공원'의 주역인 앨런 그랜트 박사(샘 닐 분), 앨리 새틀러(로라 던 분),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 분)이 모두 복귀하기 때문이었다. 추억 속의 '박사님'들은 그대로였다. 샘 닐과 제프 골드브럼, 로라 던이 같은 앵글에 등장하는 순간, 올드 팬들은 무장 해제 상태가 된다. 서사의 완성도나 주제 의식, 핍진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배우들의 얼굴에서 수십 년의 세월이 묻어났지만, 나의 첫번째 히어로들은 건재했다. 그랜트 박사는 여전히 유타주에서 화석을 발굴하고 있었다. 공룡을 보는 순간 미소를 감추지 못 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식물학자 엘리 새틀러는 현명하고 따뜻했다. 가죽 재킷을 입은 이안 말콤은 여전히 록스타스러운 수학자였다. 그랜트 박사의 뒷모습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는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만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꺼이 이 상술의 고객이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추억의 힘이 이만큼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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