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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종소리> 시인회 오홍심 대표가 모처럼 고국을 방문했다. 이 소식을 듣고 8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옆 한 주점에서 경향 각지의 몇 문인들이 모여 조촐한 오 대표 고국방문 환영회를 겸한 자그마한 시 발표회를 가졌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홍일선 시인은 일선 필체로 흰 천에 '<종소리>는 끊임없이 울려간다'라는 <종소리 > 89호에 실린 오 대표의 시를 먹물 듬뿍 적신 붓으로 써와서 주점 벽에 걸었다. 그러자 동두천에서 온 정용국 시인이 이 작품을 낭독했다.
 
<종소리>는 끊임없이 울려간다
 
오홍심
 
2000년 정월에 창간된
시지 <종소리>
이제 벌써
스물 두 해를 맞이한다
 
창간 다음해 가을. 내 영예롭게도
시지 <종소리>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첫 작품은
'어머니의 묘 앞에서'였다
 
우에노 공원
잔디밭에 앉아
축하모임을 해 주신 그날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시인회의 첫 대표인
고 정화수 시인을 비롯한
일곱 명의 이름난 시인들의
따뜻한 사랑과 지도를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날로부터 벌써 스무 해
선배시인들의 뜻을 이어
시지 <종소리>를
한 번도 빠짐없이 펴내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1,477편의 시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
계속 후배시인들의
귀중한 보물이 됨을 확신하노니
 
시지 <종소리>는 쉼 없이 계속 울린다
우리의 말과 글과 민족을 지켜내며
통일의 그날을 향해
끊임없이 울려 나가리라!
 
치미저고리 차림의 재일동포 여학생들이 도쿄거리를 누비고 있다.
 치미저고리 차림의 재일동포 여학생들이 도쿄거리를 누비고 있다.
ⓒ 눈빛 아카이브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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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저고리
 
이날 참석한 강원도 묵호 태생의 박금란 시인은 재일동포 원로시인 고 정화수 선생의 대표작 '치마저고리'를 낭독했다
 
치마저고리
- 정화수

청자, 백자인가 일본거리에
색깔도 연한 치마저고리들
비둘기처럼 나란히 속삭이며 다니네

서리 같은 칼날들이 노리건만
의젓한 그 모습
조선의 딸들이 틀림없구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제는
바꾸어 입으라고 말리는데도
갈기갈기 찢길지언정
민족의 넋 벗을 수는 없다는 게지

우리 학교 다니면서 움트고 자란
그 넋을 지녀온 귀염둥이들
날개처럼 입고 다닌 교복이 아니냐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게지
백옥 같은 치마저고리
먹물을 덮어쓰고
통바지에 몸이 매여 끌려온 수난

다치지도 말아다오
잊지도 말아다오
오늘의 괴한이 누구의 후예인가를
무엇 때문에 칼부림하는가를

살벌을 늠름히 헤치고 다니는
조선의 딸들아 기특도 하구나
나는 걸음 멈춰
뜨거운 눈길을 한참 보낸다
 
<종소리> 오홍심 대표 환영회(왼쪽부터 정용국, 박금란, 오홍심, 박도, 홍일선)
 <종소리> 오홍심 대표 환영회(왼쪽부터 정용국, 박금란, 오홍심, 박도, 홍일선)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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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오홍심 대표는 제주도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서당 훈장이었던 아버지 오두흡 선생의 따님으로, 1941년 일본 효고현(兵庫縣)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뒤, 센보꾸조선초급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이후 40여 년 교원으로 지냈다.
 
나는 시지 <종소리> 50호 기념식 때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갔었다. 이날 오 대표는 나에게 100호 기념식 때도 꼭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다시 받았다. 하지만 피차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서로 건강에 유념하면서 그날 반갑게 다시 만나자는 덕담을 나누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태그:#<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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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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