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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책을 만들어보지 않은 세 사람이 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이상하게도 마음이 어수선한 주말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울린 소현씨(우리끼리는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이 글에서는 호칭 생략) 전화. 안 그래도 또랑또랑한 그의 목소리가 하늘을 날 듯하다. 

"됐다니?"
"우리 책이 뽑혔어요! 우수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게 됐어요!"


서, 설마? 선생님이 캡처해서 보낸 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에서 주최한 2022 우수출판제작지원 사업 선정 결과 공고, 100권 중에 79번 째로 우리의 책 <전지적 그림책 시점>이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5개 분야 총 2244편 중에 우리 책이 뽑힌 거였다. 이혜선, 장소현, 이정희, 세 사람이 쓴 글이 이제 정말 세상에 '책'이 되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전지적 그림책 시점
 전지적 그림책 시점
ⓒ 유럽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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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도전

지난 2월, 많이 지친 이 두 사람에게 내가 나서 이 제작 지원 사업 응모를 제안했다. '우리도 책을 만들어 보자' 야심차게 의기투합한 지 어언 3년여가 지났다. 글을 쓰고, 퇴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1년여를 보내고 막상 '작품'이 완성됐지만 막막했다.

다들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약을 해왔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르치고 글을 쓸 줄만 알았지, 글로 '책'을 만드는 일에는 문외한이었다. 돈만 있으면 책이 된다는 세상, 하지만 우리는 그 '돈'이 없었다. 그리고 1년여의 지난한 노력을 거쳐 만든 우리의 결과물을 그렇다고 허투루 '취급'하고 싶지도 않았다.

'맨 땅에 헤딩'하듯 우선 각자 주변에 아는 '출판 관계자분'들께 문의를 해보기로 했다. 

"논문이야?"

문의한 출판사에서 어떤 분은 이런 '답변'을 주셨다고 한다. 하나의 그림책, 그 그림책을 보는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시선을 글로 푼 우리의 책이 상업적 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사람의 눈에는 논문처럼 딱딱하게 보였던 걸까. 

나 역시도 작년에 내 글을 이 제작 지원 사업에 응모해 주신 선배님께 보여드렸는데 난색을 표하셨다. 아마도 "논문이야?"라고 하셨던 그 출판사 대표분과 같은 심정이 아니셨을까? 

그림책 독자 시장이 커져가는 중이었다. 더는 그림책이 '아이들'만을 위한 책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양한 상징과 해석의 여지를 품은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그만큼 하나의 그림책에 접근하는 방향은 풍성했다.

그래서 그림책을 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글로 푼 우리의 '책'이 우리는 매우 '신선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출판 시장'에서 우리의 책은 '상품성'에 의문부호가 매겨졌다. 

"정희 선생님은 막 몰아부치시잖아요."

선생님들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처럼 책을 쓰는 시간 동안 조금 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글을 써서 돈 몇 푼이라도 벌었다는 이유로 매 주 선생님들에게 글을 써오라 독려하고, 다시 고치라 다그치며 여기까지 왔다. 그 '몰아부친' 당사자인 나로서는 무겁게 우리가 쓴 글들에 대한 책임감이 얹혀졌다. 

궁여지책으로 요즘 인기 있다는 '브런치북'에 응모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나는 이미 개인적으로 써왔던 글로 '브런치북' 응모를 한 상태라, 내 브런치로는 응모를 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소현 선생님은 한참 수업 등으로 바쁠 때라 연락조차 쉽지 않았다. 

"혜선 쌤, 선생님이 브런치북 응모를 하면 어떨까?"
"선생님, 저 병원이예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브런치북 응모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혜선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셨단다. 위중증은 아니지만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에, 물리치료 등으로 여유가 없으시다고 하셨다. 그래도, 혜선씨 밖에 브런치 북 응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해보시라 독려(?)했다. 

물리 치료를 받는 틈틈이, 병실에서 주변 환자들 눈치를 보며 혜선씨는 브런치 등록에서부터 응모까지 그 모든 과정을 해냈다. 그래도 이미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선배'라고 훈수를 둬보기도 했지만, 선생님이나 나나 '컴맹' 수준에서 버벅거리며 겨우겨우 브런치북 응모를 마쳤다. 

첫 술에 배부르랴, 교통사고 환자인 혜선씨를 닥달해서 시도한 브런치북은 '고배'를 마셨다. 시한을 맞추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브런치북이라는 틀에 글을 얹는 과정에서 우리 글의 '특색'을 살려내지 못한 거 같다는 때늦은 반성이 들었다.
 
한국 출판문화 진흥원 우수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공고
 한국 출판문화 진흥원 우수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공고
ⓒ 한국 출판 문화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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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겠어? 그랬는데...

그래서, 다시 한번 모였다. 우리는 '원고' 상태에 불과했던 글을 '책'의 형태에 맞춰 재편집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 중에 그래도 가장 젊고, 그래서 컴퓨터를 다루는데 능숙한 소현씨가 원고들을 정리해 책과 같은 구성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구성을 바꾸니 '논문'처럼 딱딱해 보이던 글이 한결 짜임새 있게 보였다. 

"되겠어?"

모두가 뒤늦게 고백하셨다. 내가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에 우수출판제작지원 사업이 있으니 응모하자 했을 때 든 생각이란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세 사람이 오랜 시간 애써서 달려왔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혜선씨가 나서서 기꺼이 출판 등록을 하고 각종 서류가 필요한 그 '번거로운' 작업을 진행해 주었다. 거의 마감 당일에 겨우 맞춰서 응모를 한 우리, 하지만 쟁쟁한 출판물들이 응모한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설마 될까 싶었다.

그래서일까, 한두 달이 지나 선생님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물어봤을 때도 5월쯤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말은 했지만 5월이 돼서도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현씨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지인이 출판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페북에 자랑을 하는 걸 보고 나서야, '아~ 우리도 응모를 했었지' 하고 찾아보았다니. 다들 저마다 바쁜 처지라, 만나지는 못하고 핸드폰을 붙잡고 소리 높여 축하를 했다.

'설마 우리가 되겠어?' 하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 했었가, '우리가 될지도 모르잖아 하기도 했었다'며, 호기로운 후일담에 서로에게 감사하는 덕담을 얹었다. 조만간 만나 축하를 나누자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딱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 '당첨'의 흥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runch.co.kr/@5252-jh 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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