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0 14:35최종 업데이트 22.06.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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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장기간 국회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문이 굳게 닫혀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달 말 열린 한 학술대회 기획세션 주제는 '시대 진단과 사회정책의 대도약'이었다. 네 명의 연구자들이 복지, 노동, 부동산, 그리고 젠더문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과정 내내 공론장을 달궜던,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들이었다.

내공 깊은 발표자들은 짧은 시간에 각 분야의 현 상황을 명료하게 진단하고 과제와 대안을 제시했다. 진보적 관점에 선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동의할 만한 진단과 주장들이었다.


그런데 지정 토론자 한 사람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발표자들의 발표에는 그런 과제들이 어떤 정치세력에 의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나에 대한 고민이 충분해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발표자들이 "성문 밖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할 노동과 복지 어젠다들을 정확히 열거했지만, 정작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정치세력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해 보이지 않으며, 최대 1700만 명에나 이르는 비정규직들의 이해관계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대표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정책보다 그것을 실현할 정치가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기득권 집단이 다수파가 된 상황"

토론자는 현 상황을 "기득권 집단이 다수파가 된 상황"으로 정의했다. 다차원적인 불평등 구조에서 기득권을 점한 집단, 즉 비정규직과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과 (비영세) 자영업자, 면세받는 저소득계층이 아니라 납세하는 중·고소득계층, 주택소유자와 주식투자자라는 자산소유 계층, 50~60대, 남성이 다수파가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이들이 단순히 수적인 다수가 아니라 정치적 다수파가 되었다는 점이다. 정치적 다수파는 통계표 상의 특정 기준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정치적 다수파는 '구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시장 지위, 소득, 자산, 젠더 등이 만들어내는 다중격차의 모든 차원에서 기득권층에 속하는 사람은 소수다.

문제는 이 중 어느 하나의 차원에서만 가진 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든 차원에서 가진 자' 집단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들의 정책·정치적 주장들에 동조하게 됐다는 점이다. 보수 정치세력이 지난 대선에서 여러 기득권자들을 결집하는 욕망의 플랫폼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을 선망하는 소수자들까지 견인해 '정치적 다수파'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 대선 양대 정당 후보의 작은 득표율 차이는 이 다수파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욕망을 동력으로 만들어지는 이 기득권 연합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대문자 혁명(Revolution)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사회의 거대한 변화 가능성을 믿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욕망을 자기화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기 쉽다. 그리고 엉뚱하게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민주당은 대선 때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치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지난 1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모습 ⓒ 더불어민주당

 
이런 보수 기득권 연합의 구심력과 '을 간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에서 파편화돼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연대를 조직해낼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위의 여러 차원에서 한두 가지는 가졌을지 모르나 대부분은 가지지 못 한 사람들을 정치적 다수파로 구성해 낼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상생하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결집시켜야 한다.

그런 정당(들)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오늘 사회정책의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 앞에 놓인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촛불 이후 어느 때보다 유리한 정치지형 속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정당이 되는 데 너무나 많은 한계가 있음을 거듭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해왔던 민주당이 여전히 170석이라는 의회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금, 진보개혁의 정치연합 구성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팬덤정치 넘어 희망 되살리는 길

그것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혁이다. 그리 하여 한국 사회의 가장 후진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는 정치를 혁신해야 한다. 이 길이 사회경제적 약자들과 시민사회 내 다양한 정체성의 목소리를 의회에서 대표되도록 하고, 전환기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정책들을 만들어낼 정치연합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혐오의 정치, 증오에 기반한 팬덤정치를 넘어서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은 또 민주당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촛불 아래 모였던 전 국민의 70%가 의회 안에서 제대로 대표될 때, 다양한 정당들이 의회에 존재하면서 정책적 연대의 파트너로 남아 반촛불 세력을 제어할 수 있을 때, 민주당 자신의 장기적 정치 입지도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하루 빨리 지난 대선 막바지 국면의 절박한 심정으로 돌아가, 그 때 스스로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치교체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지금 민주당에 이를 요구하고 압박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김영순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김영순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김영순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관심영역은 한국과 유럽의 복지국가와 복지정치, 젠더와 복지국가, 복지태도 등입니다. 한국사회정책학회장을 역임했고, 주요 저서로는 <복지국가의 위기와 재편>, <코끼리 쉽게 옮기기>,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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