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어떻긴요, 팍팍하죠. 최근 유가 상승으로 기름값 부담이 하루에 1500원에서 2000원 정도 더 늘었어요. 그래도 난 소형 스쿠터고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배달 건이 많지 않아 이 정도인 거고, 큰 배기량의 스쿠터로 나보다 배달 건이 많은 기사들은 하루에 5000원 이상 더 부담한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잖아요? 밥값도 올라서 현재 경비 부담이 상당해요. 그렇지 않아도 배달 외식업 비수기에 코로나 방역 해제로 배달 건이 줄어 심란하던 차에 물가도 올라 정말 근심거리입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주 출신으로 이런저런 사연으로 가게 정리 후 그동안 익숙했던 오토바이를 이용해 수년 전부터 배달대행업의 기사로 종사하고 있었다.

서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고물가 

"내 나이가 60이 넘었어요. 이 나이에 어디 재취업이 쉽나요? 그나마 최근 유통 시장이 커지면서 퀵서비스나 배달대행 같은 직종의 수요가 늘어 오토바이만 다룰 줄 알면 나 같이 돈 없는 중장년 퇴직자들도 주변 눈칫밥 먹지 않고 그럭저럭 가족 생계유지가 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핸드폰에 올라오는 콜(배달 요청)을 한 건이라도 놓칠까봐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끔 끼니도 걸러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생계에 위협을 받거든요. 그러니 점점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이팔청춘도 아닌 노쇠한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정말 고통스럽네요. 고단한 것이 서민의 삶이라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남아 있던 아주 작은 여유마저 빼앗긴 느낌이에요."

A씨의 하소연이 아니더라도 요즘의 물가 상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소위 부유층이라 지칭되는 이들 말고는 거의 없을 듯하다.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대다수 가정을 크게 짓누르고 있고 끝을 모르는 유가 상승은 A씨처럼 유가가 경비에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하는 관련 업종 종사자들에게 상당한 압박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저 같은 경우는 운행 비용이 한 30% 오른 듯합니다. 차가 '다마스 LPG'인데 퀵서비스 종사 중 차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차를 타요.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거든요. 다마스 크기가 경차 수준이지만 짐은 싣기는 좋고 LPG라 운행 비용도 싸거든요. 그런데 LPG 가스비가 800원에서 1100원으로 올랐어요. 거의 30%가 인상된 거죠.

제 개인으로만 보면 가스비로만 한 달에 10여만 원 이상 추가되었더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겨우 10여만 원'이라고 하겠지만, 우리처럼 이런저런 비용 아끼고 줄여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겨우'가 아니죠."
 
음식배달 오토바이
 음식배달 오토바이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퀵서비스업계 사정을 전한 B씨는 A씨처럼 전직 자영업자였고 가게를 처분한 후 퀵서비스업에 뛰어든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도 오토바이로 퀵서비스를 했었지만, 수년 전부터 오토바이 퀵서비스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 오토바이 대신 자동차로 바꿨다고 했다.

"코로나19 재난 직전부터 오토바이용 '퀵서비스' 요청이 줄더라고요. 그러다 코로나19 재난 중에는 급격히 나빠졌고요. 제 사견이지만 퀵서비스가 오토바이만 탈 줄 알면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보니 퀵서비스 업종에 사람들이 많이 뛰어든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 오토바이에서 차량으로 바꿨어요. 차량용 퀵서비스가 오토바이보다는 경쟁이 덜 치열하고 짐도 많이 실을 수 있어 괜찮다 싶어 바꾼 건데, 한동안 매출이 좋더니 요즘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다른 사람들도 차량으로 갈아탄 건지..., 이런 상황에서 요즘 물가 폭등까지 겹쳐서 정말 걱정이네요."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물가와 더불어 서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원래 전세 대출이 있었어요. 더 넓고 좋은 집을 위해 대출을 받은 게 아니라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냥 집값과 전셋값이 그렇게 올랐으니 어쩌겠어요? 쫓겨나지 않으려고 오른 (전세금)만큼 대출을 받았죠. 그런데 이번에 부모님이 이자라도 줄이라며 도와줘서 대출금을 갚았어요.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죄송하면서도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늘어난 대출 이자까지 부담했으면 정말 힘들뻔 했거든요."

그는 이어 자신의 아내도 최근 반도체 공장에 취업하여 본격적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선택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B씨 부부는 아이 셋을 둔 다둥이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전에 꽤 매출 좋은 가게의 사장이었다. 그런 그가 잘나가던 가게를 처분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아이들 때문이었다. 적어도 아내만큼 가게가 아닌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판단하여 가게를 정리하고 자신은 적어도 주말에는 쉴 수 있는 퀵서비스 기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로 인해 그에게 '외벌이'라는 선택지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 속에는 가족에 대해 미안함이 가득했다.

"경력이 단절된 주부가 동네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재취업이 어디 쉽나요? 취업 가능한 곳이 굉장히 제한적이죠. 이번에 취업한 공장의 근무 조건이 3교대에요. 3교대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어느 날은 새벽에 출근해야 하고 어느 날은 철야를 해야 하잖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 일이 자유업이라 제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둘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챙길 수 있어 버틸 수 있는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까지 공장에 나갈 필요는 없었는데..."

평가절하된 소득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A씨와 B씨는 그 속내야 어떠하든 존중받는 '사장'이라는 직함을 과감히 포기하고 특수고용직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3D' 업종이다. 즉 육체노동은 기본이고 어떤 보호막도 없는 길거리에서 모든 불편한 환경(날씨, 교통 등)을 오롯이 홀로 맞서야 하는 고되고 고독한 직업이다.

그러함에도 이들이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비록 일은 힘들지만 나만 부지런하면 적어도 가족들은 궁핍한 환경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 그들은 성실했고 그 결과,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가장으로서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풍경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이다. 현재 이들은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노력, 그리고 그의 결과(소득)가 물가 폭등 속에서 허무하게 평가절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들은 우리나라 경제가 고물가, 고금리에 더해 경기까지 위축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상황으론 자칫 IMF를 넘어서 대공황으로 갈지 모른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서민들은 목이 빠지게 정부의 대책만 바라보고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안이라는 것은 법인세 인하와 종부세 인하 등 부자 감세에, 더 나아가 서민의 삶에 직결되는 공공요금 인상이었다. 가뜩이나 상대적 소득감소로 박탈감을 느끼는 서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현 정부의 정책에 이들은 허탈함을 넘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듯한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관련기사]
- 확 뛴 물가에 신음하는 대학생들... '달걀' 한 알 못 사먹습니다 http://omn.kr/1zim9

태그:#고물가, #고유가, #서민, #특수고용직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세상 이야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