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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특히 한반도 역사에 있어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비극의 달이라는 인상 또한 짙다. 전쟁 당시 경남 함양지역에서는 빨치산·인민군 그리고 군사·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고 그 상흔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국보훈의 달은 국가를 위한 희생정신은 물론 국가에 의해 희생된 이들과 그들을 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절망도 함께 기억해야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주간함양은 호국 보훈의달과 한국전쟁 72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시기 함양지역과 관련된 기록들을 3편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 고장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의 이야기를 통해 나라 사랑 정신을 새롭게 인식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해당 내용들은 모두 함양문화원이 기획, 제작하고 경남문화원연합회를 통해 2017년 발행된 자료 '함양 지리산의 빨치산 이야기'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편집자주


냉전의 대리전이라 불릴 만큼 정제되지 않은 이념의 폭력이 소용돌이쳤던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대부분 민간인들은 양쪽의 억압과 살육에도 그 참상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전투와 학살이 벌어졌던 참혹한 전쟁 속에도 사람 살린 양심은 있었다. 함양에도 인류 역사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남긴 그런 인물들이 있다. 이번 회차에서는 전쟁이라는 비극의 현장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온 함양의 숨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조명하고자 한다.  
 
휴천면에 위치한 박복원 송덕비
 휴천면에 위치한 박복원 송덕비
ⓒ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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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면민 학살 막은 '박복원'

1951년 2월 육군 제11사단 9연대가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을 시작한 날로부터 휴천면의 상황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9연대는 빨치산의 보급로와 숙식을 차단하기 위해 게릴라 주위의 모든 산림을 비롯한 산간마을을 모조리 불살랐다. 이로 인해 엄천지구 오지 마을인 3개리(송전, 문정, 운서) 주민 200여 가구 600여명이 소, 돼지, 개, 염소 등을 몰고 살림도 버린 채 일가친척이나 친지 그리고 인접 마을과 도시 등으로 떠나야 했다. 즉, 재산을 빼앗기고 생명마저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에서 군경들은 글자도 모르는 순박하고 선량한 주민들을 공비 등으로 몰아 마음대로 살생을 자행했다. 공비 또한 가축과 의류, 식량까지 약탈해가면서 주민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9연대장은 휴천면과 유림면 그리고 산청군 금서면, 거창군 신원면 등 4개 면민들의 대부분이 공비들에 협력했다고 추정하면서 이른바 통비분자 명단을 제출받아 학살을 저질렀다.

그때 각 면에 할당된 명단은 휴천면 1000명, 유림면 300명, 산청군 금서면 500명, 거창군 신원면 800명 등이었다. 이때 휴천면민들은 다행히 대량 학살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른 면단위 명단에 적힌 주민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휴천면민 대부분이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휴천면 국민회 지부장이었던 박복원의 노력 때문이다. 박복원이 활동했던 단체인 국민회와 관련한 다양한 정치적 시각이 존재하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은 배제하고 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중점으로 박복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당시 박복원은 통비분자 명단 제출과 관련된 연대장의 말을 듣고 면민 대량 학살을 우려해 최시문 휴천지서장, 정종옥 휴천면장과 함께 이를 막을 방법을 강구했다.

마침 자신의 행랑채에 머물고 있던 연대장을 찾아가 "백성들을 빨갱이로 만들 수 있는 것도 군경들이요. 아무 죄 없는 주민들을 죽일 수 있는 것도 군경들로서, 주민들을 무차별 죽일 수 없으니 죄 없는 면민들을 대신하여 차라리 내가 죽겠다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죄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 있으니 나를 죽여주시오"라며 지속적으로 간곡히 설득했다.

그러자 9연대장은 작전사령관 사단장에게 이 사실을 무전으로 보고했고 "무고한 면민이 희생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 사단장의 답변으로 휴천면 점촌마을 60여 명을 제외한 면민은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았다.

이 사건 외에도 박복원은 억울하게 공산분자로 몰린 휴천면민들의 석방을 위해 수시로 군수와 경찰서장에게 간청하고 회유하기도 하면서 주민을 죽음에서 구해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보도연맹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휴천면은 보도연맹 가입자가 그와 같이 희생되지 않은 것도 자수하도록 권하고 당국의 선처를 적극 진언한 박복원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당시 김복덕 함양경찰서 사찰계 형사의 증언도 있다.

전쟁 이후에도 박복원은 지역 개발사업에도 힘을 쏟았고 어려운 이웃들의 크고 작은 일들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00년 면민들은 뜻을 모아 애향애민의 뜻을 기리고 면민들의 귀감이 되고자 휴천면 공설 운동장 입구에 박복원 선생 송덕비를 세웠다.
 
서하 대황마을
 서하 대황마을
ⓒ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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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오의 아름다운 이야기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유엔군의 주력부대가 한강을 넘어 9월26일 서울을 탈환하면서 반격을 가하자 함양에 있던 인민군들은 다음날인 27일 완전히 퇴각했다. 함양군 일대를 점령한 인민군들은 점령 기간 동안 지역 경찰·군인·공무원 등 우익계 인사와 가족 등을 소위 반동분자로 간주해 함양을 비롯해 진주, 거제, 고성 등지에서 색출해 진주형무소에 수감했다.
   
27일 퇴각 과정에서 진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우익인사 등을 모두 트럭에 싣고 이동했는데 트럭이 서하면 대황재를 넘지 못하자 트럭에 내려 걸어서 이동시키던 중 수감자들을 집단 학살했다. 서하면 일대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는데 1950년 9월 28일까지 서하면 운곡리 도톡골에서 약 90명이 학살됐고 27~28일 이틀간 서하면 대황재 부근 일대에서는 약 500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긴박하고 비참했던 당시 서하면의 상황 속에도 한 인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바로 윤신오라는 인물의 이야기인데 그의 아들이자 전쟁 당시 9세였던 윤석태씨가 2017년 진술한 내용의 기록을 바탕으로 전하고자 한다.

1950년 9월 25일 오후 10시경 서하면 대황재 일대에서는 후퇴하던 인민군에게 수백 명이 총살당했는데 그 다음날인 26일 총살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부상자들이 윤신오의 집에 들어왔다. 인민군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부터 수많은 포로들을 북으로 끌고 가다가 도저히 더 이상 걸어서 갈 수가 없어 대황재에서 쏘아 죽이기 시작했는데 그중 탈출에 성공한 4명이 윤신오의 집 작은방에 숨은 것이다.

이 부상자들은 윤신오가 길에서 보고 직접 집으로 데리고 왔다. 당시 마을 사람 대부분은 부상자들을 데리고 있다가 빨치산들에게 함께 몰살당할 것을 우려해 아무도 데리고 가려 하지 않았는데 윤신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후 중상자 한 명이 고통으로 신음을 크게 내다 숨을 거두었는데 이때 집 앞을 지나던 빨치산이 그 소리를 들었고 결국 큰 방에 있던 윤신오를 잡아갔다. 윤신오는 보름쯤 지난 후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는데 북쪽으로 한참 끌려가다 어두운 밤이 되자 인민군과 포로가 모두 깊이 잠든 사이에 빠져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윤신오가 마을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아군이 진을 치고 있을 때였다.

이후 거제와 진주를 비롯한 경남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대황재를 각자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때 윤신오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찾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윤신오는 매일같이 시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밤낮없이 동고동락하면서 대황재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러한 헌신을 전해들은 당시 경찰국장이 윤신오에게 경찰관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본인은 극구 사양하고 대신 대황재 총살로 부친을 잃은 봉전마을에 거주하는 진병화라는 인물을 추천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도 윤신오의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한 용기와 노력 그리고 그동안의 헌신을 인정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참혹했던 전쟁 당시 만들어진 윤신오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서하면의 작은 희망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김경민)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국전쟁, #함양, #보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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