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8 07:30최종 업데이트 21.10.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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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방송된 < PD수첩 > '변희수, 그녀에 대한 오해' 편의 한 장면 ⓒ MBC

 
"성전환 이전 성전환증 유병자는 일반인에 비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바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전환 이후에도 높은 수준의 우울증을 겪거나 낮은 삶의 질을 호소하게 된다."

지난 6월, 고 변희수 하사 복직 소송이 한창 진행될 때였다. 이 내용은 육군참모총장의 소송대리인이었던 군법무관이 재판 과정에서 펼친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군법무관은 통상적으로 트랜스젠더들이 성확정수술을 한 뒤에도 우울증을 겪기 때문에 변 하사도 장차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추정, 강제로 전역시킨 것이 타당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는 원래 사회 부적응자'고, 그렇기에 '군대에서 쫓아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낙인을 찍은 셈이다.

군법무관은 주장의 근거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성전환자에 대한 장기 추적조사 결과를 기재한 스웨덴에서의 코호트 연구'라는 스웨덴 연구 자료를 제시했다. 인용한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성전환수술이 성별불일치감을 완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전환자들로부터 발견되는 높은 수준의 발병률과 사망률을 완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음을 반증

그러나 군법무관은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은 애써 무시한 모양이다. 원래 연구보고서는 성확정수술이 성별불일치감을 완화하기는 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이 온존하는 한 수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쓰였다. 시스젠더에 비해 사망률이 높은 이유도 사회적 차별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때문에 국가가 트랜스젠더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그런데 군법무관은 앞뒤 맥락을 다 자르고 마치 트랜스젠더가 타고난 사회 부적응자라도 되는 양 주장하는 근거 자료로 끌어다 쓴 것이다. 군법무관은 차별 문제를 해결하자는 연구자료를 가져다 차별의 낙인을 찍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의 삶을 괴롭게 만들며 변희수를 벼랑 끝으로 내몬 장본인이다.

맥락 다 자르고 제시한 군법무관의 인용문 

다행히 법원은 이런 주장들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2021년 10월 7일, 대전지방법원(행정2부, 재판장 오영표)은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방부와 육군은 항소의 뜻을 밝혔으나, 법무부의 항소 포기 지휘로 10월 26일 자로 전역 처분 취소가 확정되었다. 국가가 당사자인 소송은 법무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은 이 사건 소송을 유가족이 이어나가는 일이 타당하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육군은 재판이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변희수 하사가 죽었기 때문에 소송이 즉시 종료되어야 한다는 말을 줄기차게 반복했다. 그럼에도 법원이 소송 수계를 인정한 까닭은 이러했다.
 
성전환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이 사건 처분과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 확인은 적법성 확보와 그에 대한 사법 통제, 국민의 권리구제 확대 등의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변희수 하사는 강제로 전역 당하던 날, 카메라 앞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습니다. 비록 미약한 한 개인이겠으나, 이 변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판결문을 읽다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변희수의 말대로 되었구나' 싶다가 이내 먹먹했다. 변희수가 말한 '훌륭한 선례'는 트랜스젠더도 아무 탈 없이 군인으로 잘 복무할 수 있다는 걸 직접 삶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변희수의 삶이 아닌, 건조한 활자로 마주한 '훌륭한 선례'가 아플 뿐이다.

8월쯤이었을까. 네 번의 변론이 모두 다 끝났을 때였다. 변 하사가 우리 곁에 남아 있었다면, 그래서 직접 재판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면 그 안에서 받았을 상처를 헤아려 본 날이 있었다. 당사자가 앞에 앉아 있었다면 군법무관들이 늘어놓는 차별과 혐오의 덧칠이 좀 덜했었을까? 그래도 가혹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군법무관들뿐이었겠는가. 온 세상이 던진 비수 같은 말을 견디게 해 미안하고, 아팠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토론해보자던 국방장관

10월 19일 육군참모총장 재임 시에 직접 변희수를 쫓아냈던 서욱 국방부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육군은 법적으로 남군이었다고 했고, 1심은 이미 여성이 돼 있었다는 생각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상급심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 ⓒ 공동취재사진


과연 서욱 장관이 변 하사를 앞에 두고도 당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토론해보자고 할 수 있었을까? 하마터면 우리 군이 법정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이름으로 'MTF 트랜스젠더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논박하는 광경을 목도 할 뻔했다. 세상을 떠난 변희수의 성별이 무엇인지 국민 세금을 써서 논쟁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국가와 정부에도 격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여전히 마지못해 항소를 포기한 모양새다. 국가기관이 법을 어겨 사람을 죽여 놓고도 뻔뻔하기 짝이 없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전역 처분 결재권자였던 서욱 국방부장관이 고인과 유족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해야 할 일인데, 사죄는 고사하고 유감 표명 한 마디가 없다.

변희수 하사 1심 판결문의 말미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는) 궁극적으로는 군의 특수성 및 병력 운용, 국방 및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성소수자의 기본적 인권, 국민적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 차원에서 입법적,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
 
한 치의 반성도 없는 국방부에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와 관련한 정책적 판단을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치열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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