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7 12:44최종 업데이트 21.05.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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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무대 보병학교의 빈 초소에서 휴일에 만난 남녀 소위가 화제다. 이들은 순찰 중인 부사관에게 발견되었다. 젊은 장교들의 교제가 금지될 까닭이 없으니 휴일에 쓰지 않는 폐쇄 초소에서 만난 것 자체도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대개의 여론도 그렇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고 출생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국력 신장을 위해 젊은 남녀 장교의 만남을 장려해야 할 일이 아니냐는 뚱딴지같은 주장까지 소개한다.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연애는 국가가 통제할 일도, 장려할 일도 아니다. 애초에 이런 일이 이슈가 되는 것부터 이상하다.


그런데 딱 4년 전 군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때에도 각기 다른 부대 소속의 젊은 간부들이 일과 외 시간에 사적 공간에서 교제를 한 것이 이슈가 되었다. 당시의 여론은 지금과는 180도로 달랐다. 군 기강을 무너뜨리는 괴물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지금과 그때의 일이 다른 점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때 이슈가 된 사람들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다.

사라져야 할 법

2017년 10월 27일, 포천에 있는 육군 모 사단 군사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고석에는 두 사람의 젊은 군인 간부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A는 B를 추행했다는 죄목으로, B는 A를 추행했다는 죄목으로 그곳에 있었다. 보통 우리나라 법에서 추행은 성추행을 의미하는데 상호 추행을 해서 함께 재판을 받는다니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군대에만 존재하는 법,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다.
 
군인 등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군형법 제92조의6(추행)
 
얼핏 보면 특정 성관계 체위를 처벌하는 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녀 간에도 항문성교를 할 수 있으니 법조문에 충실히 따르자면 군인 부부가 항문성교를 하는 것은 징역형에 해당하는 위법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이 법이 개정되기 전의 법조문 내용을 보면 취지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계간(鷄姦)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구 군형법 제92조의5(추행), 2013년 개정 전
 
'계간'의 사전적 의미는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으로 남성 동성 간의 성관계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2013년 애매한 개정으로 법의 취지와 목적이 불분명해지긴 했으나 군형법 제92조의6은 오래도록 군대에서 남성 동성애자 처벌법으로 기능해왔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상호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남성 군인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다. 

혹자는 이 법이 없어지면 병영 내에서 선임이 후임을 성추행해도 권력관계 때문에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 우려한다. 합의된 동성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으면 후임이 선임 눈치를 보느라 강제로 성추행을 당해놓고도 합의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법은 더더욱 사라져야 할 법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쌍방을 다 처벌하는 법이다. 오히려 이 법이 존재함으로 인해 선임이 후임을 성추행해놓고 '서로 좋아서 했다'고 우길까 봐 후임들은 쉽게 신고하지 못한다. 게다가 세상 어느 사람이 선임이 무서워서 징역형을 사는 죄를 거짓 자백하겠는가. 사리에 맞지 않는 우려다.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 즉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은 이미 군형법 제92조부터 제92조의5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열거되어있다. 굳이 동성 간에 합의한 성관계를 억지로 처벌하지 않아도 군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충분히 법으로 다스릴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다 보니 앞서 군사법원에서 본 이상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서로 서로 범죄를 저지르고 함께 법정에 앉아 같은 사건으로 형사 재판을 받는다. 죄 지은 사람은 있는데 피해자가 없다. 이들은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으로 색출된 남성 동성애자 군인이었다. 죄목은 각자의 영외 개인 숙소나 숙박시설에서 퇴근 후 또는 휴가 때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성소수자들이 군복을 입고 감옥에 갇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7.7.5 ⓒ 연합뉴스

  
다짜고짜 '게이냐?'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7년 4월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육군이 성소수자 군인, 특히 간부를 조직적으로 색출하여 자백 강요, 함정 수사 등 불법 수사 기법을 동원해 다른 남성 군인과 성관계 한 사실을 캐낸 뒤 군형법 제92조의6을 적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수사의 규모와 주체, 군 수사기관 전반의 조직적 움직임 등으로 미루어 독실한 보수 개신교도였던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입김이 수사 전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었다.

육군 헌병(현 군사경찰) 중앙수사단 사이버수사팀은 팀장이었던 홍아무개 준위를 필두로 전국 방방곡곡의 성소수자 군인을 찾아가 이들의 핸드폰을 반강제로 빼앗은 뒤 디지털포렌식으로 다른 성소수자 군인들을 찾아내서 다시 찾아가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부대에 알리겠다는 협박도 했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게이인지 아닌지 묻고 맞으면 핸드폰을 가져다 포렌식을 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남성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데이팅 어플에 잠입해 동성애자 군인인 척 위장한 뒤 군인으로 추정되는 이용자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제의하는 등 함정수사까지 벌였다. 함정수사는 명백한 불법이다. 이렇게 색출되어 군검찰로 송치된 인원이 무려 23명이었다. 개중에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구속된 사람도 있었다.

육군 고등검찰부는 '동성 간 성관계가 1회이면 기소유예, 2회 이상이면 기소'라는 이상한 기소 방침을 일선 부대에 내려보냈다. 입건 된 23명 중 동성 간 성관계가 2회 이상 확인 되어 기소된 사람은 9명이었다.

서두에 소개한 2017년 10월 27일의 재판은 이 중 두 사람을 대상으로 열린 것이었다. 그 날 재판에는 수사를 이끌었던 홍 준위가 다른 수사관 2명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했다. 쟁점은 불법 수사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였다. 군사법원은 이후 판결문에서 헌병 수사 기록을 위법수집증거로 보아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그 날 재판에 나타난 홍 준위는 불법수사를 저지른 수사관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장을 빼입고 대기실을 나와 증인석으로 향하던 그는 빳빳한 자세로 피고인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피고석에 있던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시선을 피했다. 그 자리는 홍 준위가 피고를 대상으로 한 불법 행위를 신문하는 자리였는데, 홍 준위는 떳떳했고 피고들은 괴로워했다.

범죄자의 주홍글씨를 뒤집어쓰고 재판장의 한마디에 인생의 향배가 정해지는 처지, 성소수자 군인 두 명은 피고인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누구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없는데 그저 피고석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똑바로 고개도 들지 못하던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갑자기 부대로 쳐들어와 다짜고짜 '게이냐?'라고 물으며 핸드폰을 빼앗아 사생활을 추궁 당하던 모욕적인 기억이 이들의 존엄을 뭉개고 있었다.

이 군인들의 인생, 누가 보상할 건가

그리고 4년이 지났다. 기소된 9명 중 5명은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4명은 대법원에, 1명은 고등법원에 사건이 무기한으로 계류 중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을 이어갈 수 없어 항소를 포기했다.

대법원에 계류중인 4명은 1, 2심에서 1명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나머지 3명은 선고유예를 받았다. 고등법원에 계류중인 1명은 재판 중 전역해 1심 선고를 민간에서 받았는데 1심 판사는 합의한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를 판결했다.

이렇듯 1, 2심 재판이 끝난 것이 2018년인데 대법원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사건에 관계된 사람 중 11명이 2017년부터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은 위헌이라며 군형법 제92조의6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고, 2017년과 2020년 각각 인천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음에도 감감무소식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4년 가까이 소송을 이어가며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인 4명은 현역 군인 간부다. 현역 군인은 징역형을 선고 받으면 파면이다. 집행유예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어처구니없이 색출 당해 재판을 받는 것도 억울한데, 법원이 할 일을 하지 않아 4년 가까이 인사 등 갖가지 불이익을 보며 피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젊은 군인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 면면이 군형법 제92조의6의 본질이다. 사람의 존재를 처벌하는 이 법이 멀쩡한 사람의 일상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망가뜨린다.

4년째 새해가 되면 재판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 군인들에게 씁쓸한 인사를 건넨다. "올해는 꼭 잘 해결될 거예요."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4년이나 흘러버렸다. 오늘도 법원 사건 진행을 검색해봤다. 여전히 사건은 '심리중'이다. 심리란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과 또 씁쓸한 인사를 나눴다. 오가는 안부에 깊은 아픔이 묻어있었다. 자기 어깨에 짐을 한가득 지고 살면서, 남의 짐을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이 더 깊게 아프다. 법정에 서거나, 느닷없이 쫓겨나는 존재. 우리 군은 왜 이리도 성소수자에게 가혹한가.

똑같은 군인끼리인데 누군가의 교제는 장려되어야 하고, 누군가의 교제는 감옥에 갈 일이라면 이는 엄연한 차별이다. 19대 국회에서는 진선미 의원이, 20대 국회에서는 김종대 의원이 이 악법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21대 국회에서는 얼마 전 용혜인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 법전에서 성소수자를 형법으로 처벌하는 후진적인 법률은 이제 없어질 때가 되었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국회가 함께 새겨들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형남 기자는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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