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7 07:24최종 업데이트 21.03.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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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변희수 하사의 전역심사위원회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변 하사는 본인이 계속 복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리가. 남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못 할 짓이지만, 굳이 꼭 열어야 하는 것도 아닌 전역심사위원회를 억지로 여는 마당에 허망한 기대에 매달리는 모습이 마음 아파 요목조목 설명을 해줬다. 그래도 군이 자기를 버리진 않을 거란 실낱같은 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전역심사가 진행된 1월 22일 당일까지 그랬다.

그땐 왜 그렇게 그가 군을 믿는지 잘 몰랐다. 그저 겪어온 세상이 군밖에 없어서, 20대 초반의 청년이 아직 세상 돌아가는 험한 물정에 닿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가망 없는 기대가 어려운 순간을 더 힘들게 할 터인데, 왜 더 아픈 길을 찾아가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났다. 장례식장에 우두커니 서서 영정 속에 웃고 있는 변희수를 보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군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의 한 편에 그렇게 싫다는데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아등바등 버텨온 변 하사가 딱하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질문은 다시 도돌이표를 그려 '변희수는 왜 그렇게 군을 믿었을까?'에 닿았다.
 

성전환 수술 뒤 강제 전역 조치된 변희수 전 육군 하사의 사망 소식에 시민들이 고인을 애도하며 ‘변희수 하사님의 용기와 꿈을 기억하며 국방부 변하사의 명예회복 조치’, ‘잊지 않겠습니다 하사님 세상을 비춰주신 그 용기를 본받고 싶습니다’ 등의 추모 글을 남겼다. ⓒ 유성호

 
여단장에 군단장까지 응원
 
여단장님 뵙고 나왔어요. 규정 안에서 여단에서 조치해줄 수 있는 건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하사님이 준비만 되신다고 하면 수술 후의 여러 조치에 대해 미리 함께 논의하실 의향이 있다고 하셨어요. 여단 인사실무자와 하사님과 하사님이 믿을 수 있는 분(인권변호사)과 함께 의논해보자고 했어요. 예를 들면 숙소나 여군휴게실 사용 등등.
 
2019년 8월 변 하사에게 소속 부대 양성평등상담관이 남겼던 메시지다.
 
잘못 들었습니다?!
여단장님께서 직접... 요? 헐...
 
변 하사의 답장에는 놀라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한 달 전인 2019년 7월 이미 변 하사는 대대장에게 본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보고했고 호의적인 반응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장성급 지휘관인 여단장이 자신을 이해해주었다는 사실이 마냥 놀라웠던 모양이다. 그뿐인가. 이해를 넘어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복무 환경에 대해 논의해 보자고 하니 놀라움을 넘어 신기한 감정도 들었을 것이다.


놀란 것은 변 하사만이 아니었다. 변 하사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던 군인권센터 활동가들도 적잖이 놀랐다. 사실 활동가들은 변 하사의 커밍아웃에 우려가 많았다. 군이 아직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 성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현역 부적합 심의에 회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그 와중에 부대 지휘관들이 연이어 지지와 공감을 표해줬다는 소식은 오히려 활동가들이 군에 너무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몇 달 뒤 여단장은 수술을 위해 국외여행을 떠난 변 하사에게 이런 메시지도 남겼다.
 
지금 쯤 수술 시작했겠구나. 수술 잘 마치길 바라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수술하고 회복되면 그때 다시 한번 연락주라. 너를 위해 기도할게.
수술 잘 되었다고 대대장에게 보고 받았다. 다행이고, 축하한다. 빨리 건강 회복하고 귀국 무사히 잘 하길 바란다.
 
출국을 며칠 앞둔 때에는 군단장도 변 하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변 하사! 편지 보내주어 고맙고 수고가 많다. 군단장은 누구나 자란 환경과 여건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변 하사를 존중하고 있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변 하사를 많이 생각해 주고 있는 여단장과도 잘 상의하곤 해서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건강하기 바란다! 파이팅하게!
 
지나간 시간을 복기하다 보니 이 과정을 직접 겪었던 변 하사의 심경을 다시 헤아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하는 활동가가 보기엔 그저 변 하사가 복이 많아 훌륭한 지휘관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었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이상의 뭉클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결국 변 하사에게 군에 대한 신뢰를 쌓아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이었다.

변 하사는 처음부터 커밍아웃과 성기 재건 수술(성전환 수술)을 계획하고 입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군인의 길을 꿈꿔왔던 변 하사는 학창 시절부터 자타 공인 '밀덕'(밀리터리 오덕후의 약자. 군 마니아를 뜻한다)이었다. 그렇게 소위 '덕업 일치'를 이룬 변 하사는 부사관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017년 하사로 임관했다. 임관 후에는 전차 조종수로 근무하며 탱크를 몰았다.

그렇게 군인으로 성장해가던 시간의 한 편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성정체성을 부정하고 살 순 없는 노릇인데, 그렇다고 군 복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니 진퇴양난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군은 트랜스젠더의 존재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트랜스젠더 군인'이란 성립하기 어려운 명제였다. 분명 존재하는데 성립할 수 없는 명제를 두고 자기 부정과 선택을 강요받았던 2년 남짓의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을지는 감히 헤아리기도 어렵다.

하지만 긴 고민의 끝에서 변 하사는 어느 하나만 선택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이면서 동시에 군인으로 사는 길을 찾아가고자 했다. 그건 변 하사가 남다르게 비범한 사람이라서, 이 시대의 선구자라서 어느 순간 내린 역사적 결단 같은 것이 아니다. 변희수의 길은 변희수가 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변희수의 용기 뒤에는 오랜 고민 속에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던 커밍아웃과 예상하지 못했던 전우들의 지지와 응원의 장면이 겹겹이 쌓여 있다.

우리 군은 마치 변희수라는 트랜스젠더가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군을 헤집어놓은 것처럼 묘사한다. 틀렸다. 변 하사는 상관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2019년 7월부터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별 탈 없이 잘 복무했다. 어떠한 명시적인 배제도, 차별도, 혐오도 없었다. 자기 모습 그대로 군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상관에게 수술 의사를 피력한 것도, 그래서 허가를 받고 수술을 하러 해외에 다녀온 것도, 다녀와서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해 복귀를 준비했던 것도, 다 그런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변 하사는 끝까지 군이 자신을 쫓아내지 않으리라 신뢰했던 것이다.

돌변

그러나 그렇게 만든 신뢰를 배신한 것도 결국 군이었다. 느닷없이 육군본부가 변 하사를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하더니 국군수도병원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진행된 적법한 수술을 '고의적인 신체 훼손'로 몰아가고 수술의 결과를 '장애'라 이름 짓는 억지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육군의 주장대로라면 군병원 주치의는 자해를 사주한 셈이고, 수술을 한 병원은 환자에게 돈을 받고 일부러 장애를 촉발한 셈이니 다 형사입건 감이다. 어불성설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군은 이 말도 안 되는 억지로, 한 사람이 오래도록 어렵게 쌓아온 신뢰를 짓뭉갰다.

하지만 전역의 순간에도 변 하사는 신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강제전역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을 때였다.

"저를 포함하여 군이 트랜스젠더의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랑하는 군은 계속하여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진보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저를 포함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습니다."

쫓겨난 마당에 누가 누굴 위해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변 하사는 군에 이해를 건넸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우리 군이 이러한 이해에 전혀 조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트랜스젠더의 입대와 복무, 복무 중 수술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도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군에서 변희수와 같은 트랜스젠더 군인들이 가시화 되기 시작한 것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상호 간에 성소수자인지 묻지도 말하지도 않되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전역시키던 미군의 정책)가 폐지된 2011년 이후의 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와 달랐다.

2016년 미 국방부는 미국의 군사·안보 싱크탱크로 유명한 랜드연구소로부터 '트랜스젠더 군인의 공개적인 복무 허용에 대한 의의 평가(Assessing the implications of allowing transgender personnel to serve openly)'란 연구보고서를 받는다. 연구소는 미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연구를 수행했는데, 트랜스젠더의 복무를 허용하는 일을 두고 군의 준비상태, 해외사례, 비용문제 등을 놓고 현실성을 검토했다. 그 결과 미국은 2016년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전면적으로 허용한다.

그러나 우리 군은 2019년 7월 변 하사가 트랜스젠더임을 상관에게 처음 보고한 이래로 1년 6개월이 넘도록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에 대해 연구는커녕 내부검토 조차 하지 않았다.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에도, 2021년에도 한국국방연구원에 관련하여 주어진 연구과제는 0건이다. 국방부에 검토 자료를 문의해도 그런 자료는 없다고 한다.

그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트랜스젠더가 군에 있으면 여군이 불편해한다든가, 기강과 단결이 흐트러진다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을 열거할 뿐이다. 적어도 고민하고 따져보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냥 덮어놓고 싫다는 것이다. 야전의 군인들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트랜스젠더와 함께 복무하는 법을 배우고, 고민하고 있는데 국방부와 군만 저 뒤에 서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믿음을 현실로

다행히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제385회 국회(임시회) 제1차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에게 미국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을 주문했고, 국방부 장관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한 바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변 하사와 동료들이 소중히 쌓은 신뢰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그의 신뢰를 세상 물정 몰라 빚은 치기로 만들고 싶지 않다. 변 하사가 처음으로 언론 앞에 서서 남겼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수술을 하고 계속 복무를 하겠느냐, 부대 재배치를 원하느냐는 군단장님의 질문에 저는 최전방에 남아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다는 답을 하였습니다. 저의 성별 정체성을 떠나 제가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제 남은 이들이 변희수의 믿음을 현실로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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