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2 20:08최종 업데이트 22.07.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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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추모 메시지. ⓒ 트위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된 다음 날,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추모의 메시지를 썼다. 미국 시각으로 8일 밤이고 한국 시각으로 9일 오전인 이때, 그는 트위터에 "아베 총리는 민주주의의 챔피언이자, 여성이 뒤처지면 그 어떤 경제나 사회 혹은 국가도 최대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 사람이었다"고 썼다. 이어 "나는 일본과 세계의 손실인 그의 암살에 충격을 받고 비탄에 빠져 있다"고 맺었다.

아베 신조는 보수 정치인이 아니라 극우 정치인이었다. 아돌프 히틀러 사례에서 증명됐듯이, 일반적으로 극우 정치하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신장되지 않는다. 극우 정치인들은 소수자에 대한 극단적 혐오 정서를 부추겨 일반 대중을 만족시키려 할 뿐, 대중의 권익과 복리를 우선적으로 배려하지는 않는다.


일본인 월급이 30년째 오르지 않고 있다는 보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2006년 처음 총리가 된 아베는 대중의 삶에 획기적 변화를 주지 못했다. 임금인상이 장기간 억제되는 현상은 국가와 대기업이 대중을 억누르는 나라에서 쉽게 나타난다. 이런 나라의 총리를 민주주의의 '챔피언'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그에 더해 힐러리는 아베 신조를 여성 권익의 옹호자로도 평가했다. 아베 신조가 자기 나라에 의해 자행한 반여성 범죄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은 사실을 무시한 평가다. 아베 신조의 나라가 고 김복동 할머니나 이용수 할머니 같은 여성들에게 역대 최악의 국가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감안하지 않은 발언이다.

아베 신조는 무려 9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일본이 저지른 최악의 여성 범죄를 해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한국을 상대로 '해결책을 갖고 오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적반하장인 사람을 상대로 그런 호평을 했으니 '위안부 문제를 생각해보라', '누군가의 죽음을 진실을 왜곡하는 구실로 삼지 말라' 등등의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베의 여성정책에 대한 힐러리의 칭송은 가히 '습관적'이다. 아베가 총리였던 2015년은 한국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 위안부합의가 체결된 해다. 이 문제로 한일 양국뿐 아니라 오바마 미 행정부의 신경까지 날카로웠던 그 시기에도 힐러리는 아베의 여성정책을 칭송했다.

그해 2월 28일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도 그 점이 나타난다. 이 글은 "여성이 빛나는 사회의 실현을 향해 일본 정부는 현재 갖가지 대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며 이를 위해 '국제여성회의(World Assembly for Women) 도쿄 2015'를 열 계획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번 국제여성회의와 관련해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받은 비디오 메시지에도 '아베 총리의 여성 활동 촉진에 관한 이니셔티브'에 대한 칭찬이 나타나는 등 국내외로부터 다양한 격려의 발언들이 답지했습니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북한·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 체제 구축을 위해 위안부 합의 체결을 종용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가 퇴임 직후에 있었던 이런 일을 몰랐을 리 없다. 장관 퇴임 뒤 2016년 대선을 준비했으므로 국제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힐러리는 자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신경을 쓰던 그 시기에 '아베는 여성 활동 촉진을 선도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칭송했다.

힐러리와 아베의 유착
 

2016년 9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만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힐러리는 여성 권익과 관련해 아베를 자주 칭송했다. 일례로, 2014년 9월 25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수상, 힐러리씨와 대담...여성 활약에 관해 의견교환'에 따르면, 힐러리는 "스스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며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아베를 평가했다.

그런데 힐러리는 위안부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국무장관 시절에 이 문제에 대한 사이다 발언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도 있었다. 힐러리 장관이 미국 공문서에서 위안부 대신 성노예라는 표현을 쓸 것을 지시했다는 미국 <넬슨 리포트>의 2012년 7월 9일 자 보도도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도 그런 발언을 했다. 워싱턴 시각 2012년 3월 9일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과의 회담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 강요의 희생자들입니다"라는 발언을 해서 김성환 장관을 놀라게 했다. 언론들은 "클린턴 장관이 위안부 문제의 핵심을 너무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놀랐다"는 김성환 장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미국은 한일 양국에 대해 중립자적 자세를 취하는 듯하면서도 대개의 경우에는 일본 쪽에 더 많이 기울곤 한다. 그런 미국 외교를 총괄하는 국무장관이 '일본군 성노예', '강제매춘 희생자'라는 표현을 써가며 일본을 자극했다. 역대 국무장관과 비교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국무장관 시절에 이 정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가도 위안부 문제를 잊지 못한다. 그런데 힐러리는 장관 퇴임 얼마 뒤부터 '위안부 문제의 적'인 아베 신조를 칭송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아베의 여성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힐러리와 아베 간에는 상당한 유착 관계가 있었다. 힐러리가 아베의 약점인 여성 인권 문제를 두둔해준 것 이상으로 아베도 힐러리에게 정치적 도움을 제공했다. 이 점은 아베가 트럼프를 제치고 힐러리의 대선 운동을 적극 지원한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아베는 현직 총리 신분을 무릅쓰고 힐러리를 도왔다. 2016년 대선이 막바지에 다다랐던 그해 9월 19일, 힐러리가 낙선하면 대미 외교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데도 이것에 개의치 않고 뉴욕에서 힐러리를 만났다. 21일 발행된 <니혼게이자이신문> 중국어판 '힐러리와 아베 회담의 진짜 목적'은 "만약 막판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보복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힐러리-아베 회동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 기사는 회동의 개최 배경을 두고, 경합지역인 오하이오주의 일본 기업들이 힐러리에게 표를 던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거 직전에 힐러리가 일본 총리를 만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일본 기업과 직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거라는 분석이었다.

이러한 유착 관계는 힐러리가 이번 아베 추모 메시지에서 여성 권익 문제를 언급한 이유를 짐작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를 익히 알고 있고 아베의 약점도 알고 있는 힐러리가 그 문제를 언급한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협조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전략적 이해관계
 

2010년 5월 21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전에 무심코 대했던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그 뒤로는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힐러리처럼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였다, 강제매춘 희생자였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그 뒤 웬만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공적 인물을 대할 때도 그 사람의 위안부관을 유심히 살펴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2012년에 한국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 발언을 했던 힐러리가 얼마 안 가 아베 신조를 높이 칭송했다. 아베 신조의 최대 약점이 위안부 문제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아베 신조를 여성 권익의 옹호자로 치켜세웠다.

힐러리가 아베 신조를 칭송한 것은 국무장관을 그만둔 직후였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굳이 자기 소신을 위반하면서까지 남을 칭송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는 점은 2012년 발언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낳을 만하다. 이런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점은 2012년 12월 26일 이전의 미일관계가 불편했던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미 국무장관들은 주로 일본 자민당 정권을 상대했다. 자민당의 공손한 태도로 인해 미 국무장관들은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기 쉬웠다. 그런데 힐러리는 달랐다. 그가 국무장관을 지낸 2009년부터 2013년은 일본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민주당 집권기였다.

그가 장관이 되던 2009년에 민주당 정권인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등장하고, 2010년에도 같은 당인 간 나오토 내각이 들어서고, 2011년에도 같은 당인 노다 요시히코 내각이 들어섰다. 자민당 정권인 제2기 아베 내각이 들어선 것은 힐러리가 퇴임하기 얼마 전인 2012년 12월 26일이었다. 힐러리가 상대한 일본은 '자민당의 일본'이 아니라 '민주당의 일본'이었다.

유관순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꽃을 바치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과 일본의 대미 의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총선 공약은 후텐마 미군 비행장을 오키나와 외부 혹은 일본 외부로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9개월 만인 2010년 6월에 퇴진한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

후임자인 간 나오토 총리도 하토야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는 힐러리 재임 시에 미일 긴장도를 높이는 원인이 됐다. 그래서 간 총리의 후임자인 노다 요시히코가 미일관계 복원을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는 점은 2011년 10월 21일 자 <미국의 소리> 한국어판 '일본 노다 정부, 대미관계 복원 위해 부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힐러리 장관 시절 일본 민주당 정부의 자주노선 때문에 미일관계가 불편했다는 점은 이 시기에 그가 위안부 강제 연행을 강력히 비판한 배경 중 하나를 짐작게 만든다. 한일관계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듯하면서도 일본 쪽에 기우는 일이 많았던 역대 국무장관들의 모습을 힐러리에서 찾기 어려웠던 이유를 그로부터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힐러리의 위안부 발언이 진심에서 우러나오기보다는 전략적 이해관계에서 나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그의 발언이 진심과 거리가 멀다는 점은 제2기 아베 정권 출범 뒤에 힐러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베의 여성정책을 적극 옹호한 데서도 느낄 수 있다. 이번에 나온 힐러리의 추모 메시지도 그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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