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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종결권 도입? 누군가는 조력존엄사 '당한다'

임상의사의 입장에서 본 조력존엄사법

22.07.12 19:53최종 업데이트 22.07.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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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국회에서 말기 환자가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력 존엄사법'이 발의되었습니다. 마땅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환영 의견과 열악한 돌봄 시스템 속에서 취약계층이 조력존엄사로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엇갈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관한 여러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지난달 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다. ⓒ pixabay

 
지난 6월 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다. 내용을 보면 ① 말기환자가 ②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호소하며 ③ 본인이 직접 요청하는 경우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여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시키려는 것이 취지라고 한다.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이라면, 개정안은 여기에 '조력존엄사'라는 정의를 신설하고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두어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면 심사를 하고 결정되면 의사에게 조력존엄사를 요청하는 것이다. 조력존엄사를 도운 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의 적용을 배제하겠다고 한다.

존엄사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었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연명의료결정법'이 이미 임종과정이 시작되어 혈압, 맥박, 호흡이 유지되지 않는 환자에게 생명연장을 위한 침습적인 처지나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가 사망선언을 하는 것이라면, 개정되는 '조력존엄사'는 아무리 말기 질환 환자라고는 하지만 현재는 의식이 명료하고 생체징후가 안정적인 사람에게 '먹으면 죽는 약'을 처방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게 하는 처방이 무엇인지 개정안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고 '이행을 돕는 방법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만 되어있다.
 
생체징후가 안정적인 사람을 어떻게 단 한번의 처방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처방은 배운 적이 없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존엄사 관련 자료에 항상 언급되는 미국 오레곤 주의 존엄사법(Oregon's Death with Dignity Act)은 의사에게 경구약을 처방받아 환자가 소지하고 있다가 원할 때 복용하는 것인데, 그 약은 수면 진정제의 일종인 바비튜레이트(barbiturate) 계열의 세코바르비탈(secobarbital) 혹은 펜토바르비탈(pentobarbital) 치사량이라고 한다.

존엄사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었지만 실상은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 PAS)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이다. 의사조력자살 혹은 안락사(euthanasia)가 합법적, 관습적으로 널리 시행되고 있는 일부 유럽국가들에서도 바비튜레이트 계열의 약과 근이완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 발의된 조력존엄사법도 정확하게는 '의사조력자살법'이다.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안에 넣어 연명의료결정의 연장선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은 것 같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연명의료 거부와 의사조력자살은 전혀 같지 않다.

연명의료결정은 이미 사망의 과정이 시작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에 대해 사망시점만을 늦추는 무의미한 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지켜 보는 것이라면 '의사조력자살', 소위 조력존엄사는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사람에게 죽음에 이르는 약을 처방하는 것으로, 전혀 다른 행위이며 어차피 치사량의 약을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면 굳이 의사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력존엄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
 
하나 더 우려되는 점은 현재와 같은 의료체계와 돌봄의 구조에서는 조력존엄사 신청에 '내몰리는' 사람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통증, 질병의 고통을 종료시키기 위해 시행되는 것이 원래 취지이나 현실에서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낀다.

예를 들면 말기 암에 걸렸으나 치료비가 없을 때, 일상생활이 힘들지만 돌봐주는 사람이 없을 때,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가족내 갈등이 생길 때, 요양원에 보내져 하찮은 존재로 취급을 당할 때 등이다. 현재의 민간의료 중심의 의료시스템에서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과 돌봄과 간병을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상황에서는 소위 조력존엄사로 내몰리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공병원을 늘리고 공공의료를 확충해 나가는 가운데 호스피스 병상 수와 지원도 늘리고, 돌봄과 간병도 공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 말기 환자가 존엄한 치료와 돌봄을 충분히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 죽을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때가 진정한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말하고 어떠한 선택도 존중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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