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생김새부터 성격, 살아온 환경, 가지고 있는 능력 등이 모두 다르지만 딱 하나 공평한 것이 있으니 바로 '시간'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거나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타임스톱워치'가 개발되지 않는 한 흐르는 시간을 멈추거나 시간의 흐름을 늦출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또한 인생의 중요한 경험을 하는 시기 역시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시점에 찾아온다.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이유다. 지난 2001년 헬렌 필딩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평범한 30대 미혼 여성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르네 젤위거라는 배우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샤론 맥과이어 감독이 연출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였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3편 모두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3편 모두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할리우드 5대 시상식 섭렵한 여성 배우

스위스인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르네 젤위거는 대학 재학 시절 필수 교양으로 연기수업을 듣다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1990년대 초반 텍사스 지역의 독립영화부터 연기 경력을 쌓기 시작한 젤위거는 1994년 <텍사스 살인마: 속편>을 통해 주연으로 데뷔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이 영화에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매튜 맥커너히도 출연했다).

젤위거는 1996년 톰 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즈의 상대역 도로시를 연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 인지도가 올라간 젤위거는 <세상의 모든 사랑> <청혼> <너스 베티> 등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여전히 할리우드의 평범한 준주연 배우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젤위거에게 2001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는 운명 같은 작품이 찾아왔다.

젤위거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평범한 30대 독신 브리짓을 완벽하게 연기했고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세계적으로 2억 81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젤위거는 이듬해 뮤지컬 영화 <시카고>에서 록시 하트 역을 맡아 또 한 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두 편 연속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젤위거는 2004년 <콜드 마운틴>에서 떠돌이 산골 여인 루비 역을 맡아 드디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 멜로와 서부영화, 애니메이션 더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젤위거는 2010년대 들어 장기 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젤위거는 2016년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로 컴백해 변함없이 사랑스런 연기를 선보이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2000년대 초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번이나 여우주연상 시상에서 고배를 마셨던 젤위거는 2019년 배우 겸 가수 주디 갈란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주디>를 통해 2전3기 끝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르네 젤위거는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미국 아카데미 2회, 영국 아카데미 2회, 골든글러브 4회, 크리틱스 초이스 4회, 미 배우 조합상 4회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성 배우다.

영국의 로맨스가이들 홀린 브리짓의 매력
 
 브리짓이 외로움에 사무쳐 '립씽크'로 <All by my Self>를 열창(?)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부의 명장면이다.

브리짓이 외로움에 사무쳐 '립씽크'로 를 열창(?)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부의 명장면이다.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앤 해서웨이. 이 배우들은 모두 그들의 출세작이 된 작품에 출연할 당시엔 스타 배우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작품들에 다른 배우의 이름을 넣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와 작품에 완벽히 동화된 연기를 선보였다.

젤위거 역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제리 맥과이어>에서 대스타 톰 크루즈의 상대역으로 얼굴을 알렸을 뿐 캐릭터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는 영화의 단독 주인공을 맡기엔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미국 배우인 젤위거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두 남자 주인공은 영국이 자랑하는 '로맨스가이'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였다.

하지만 젤위거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10kg 가까이 증량하며 30대의 평범한 독신 브리짓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실제 젤위거는 164cm 48kg의 마른 체격에 엄청난 운동광으로 평소에는 아름다운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배우다). 젤위거의 실감 나는 생활연기에 관객들은 물론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건 좋은 두 남자 마크(콜린 퍼스 분)와 다니엘(휴 그랜트 분)도 브리짓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중·후반 마크와 다니엘이 브리짓의 집 앞에서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여느 로맨스 영화에서 보기 힘든 <브리짓 존스의 일기>만의 명장면(?)이다. 원작 소설에는 없고 오직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두 남자의 결투는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박진감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다. 특히 14년 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통해 멋진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 콜린 퍼스의 액션은 정말이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는 한 편으로 두 주인공이 맺어지는 결말이 나오기 때문에 속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힘들게 속편을 만든다 해도 전편을 넘거나 전편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장르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이자 브리짓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한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속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이 2억 6500만 달러, 3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2억 1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불패신화'를 달성했다.

천하의 휴 그랜트가 '서브남주'로 출연한 영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인 휴 그랜트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과 마크의 사랑을 방해하는 서브남주로 출연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인 휴 그랜트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과 마크의 사랑을 방해하는 서브남주로 출연했다.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브리짓 존스의 일기> 출연 당시 휴 그랜트는 <노팅 힐>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배우로서 주가가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최고의 멜로 배우 휴 그랜트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기꺼이 서브남주 역할을 맡았다. 브리짓의 직장상사이자 바람둥이 다니엘 클리버를 연기한 휴 그랜트는 특유의 능청스런 유혹으로 브리짓과 연인이 되지만 마크의 전처와 바람을 피웠던 추악한 과거가 밝혀지면서 브리짓의 마음 속에서 지워진다.

다니엘은 마크와의 처절한 혈투 이후 브리짓과 마크의 사랑을 위해 눈치 있게 퇴장(?)했고 휴 그랜트는 훗날 멋지게 정변하는 아역 시절의 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차기작 <어바웃 어 보이>를 촬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며 남자답게 물러나는 듯했던 다니엘은 3년 후에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에 다시 등장해 특유의 넉살을 앞세워 브리짓에게 또다시 추파를 던진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브리짓의 성장과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지만 사이드 스토리로 브리짓의 부모 이야기도 등장한다. 브리짓의 엄마(젬마 존스 분)가 바람을 피우는 거 같다고 생각한 브리짓의 아빠는 이대로 아내를 잃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엄마는 크리스마스 날 "나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달라"며 아빠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 두 사람은 따뜻한 포옹으로 사랑을 재확인한다.

브리짓의 아빠를 연기한 배우는 2002년 <아이리스>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 2008년 드라마 <롱포드>로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노장배우 짐 브로드벤트였다. <브리짓 존스>의 모든 시리즈에 출연한 브로드밴트는 <인디아나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찰스 스탠포드 학장을 연기했고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부>에서는 마법약을 가르치는 호러스 슬러그혼 교수 역을 맡았던 배우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샤론 맥과이어 감독 르네 젤위거 콜린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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