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8 12:01최종 업데이트 22.07.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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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부산시 동구 일본영사관 평화의 소녀상에서 부산겨레하나가 법원의 배상판결 이행에 불복하는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규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1.9.29 ⓒ 김보성

 
강제징용(강제동원) 손해배상 판결과 판결 미이행의 결과로 압류된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가 임박했다. 이를 막기 위한 일본의 공세도 강하다.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하지 말라', '한국 정부가 해법을 만들어오라' 등이다.

21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전 징용공, 현금화에 대항조치 검토(元徴用工、現金化に対抗措置検討)'에 따르면, 외무성은 자민당 외교부회(外交部會)와의 합동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9일과 10일에 한국 국영기업의 위탁을 받은 선박이 독도 인근을 항행한 일을 두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얼굴에 사정없이 똥칠을 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독도 주권 행사를 모욕했던 사토 마사히사 외교부회 회장도 "심각한 문제이므로 (외무성이) 구체적인 조치를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고 위 신문은 보도했다(관련기사: "한국이 총리 얼굴에 똥칠" 막말에 숨은 일본의 의도 http://omn.kr/1z09k).

22일 기자회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은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압박을 높였다. 외무성 홈페이지 회견·발표·홍보 코너에 따르면, 하야시 대신은 "일한관계는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인해 매우 엄중한 상황이지만,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박진 장관과 주고받은 것을 감안하면서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윤 정권과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해나갈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내각은 이미 이 문제에 대략적인 의견 합치를 이룬 듯하다. 추가적인 입장 조율의 필요성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긴밀한 의사소통을 운운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현금화를 막아주도록 계속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요구대로 현금화를 막으려면 피해자들을 설득하든가 사법부를 압박하든가 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전범기업이 아닌 한·일 양국 국민과 기업들이 대신 내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며 대위변제 방식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해답을 들고 오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 앞에서 윤 정부는 그처럼 진퇴양난 처지에 놓여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편들자니 일본의 반응이 두렵고, 일본을 더 노골적으로 편들자니 국민의 반응이 두려운 상태에 처해 있다.

적반하장의 역사

그런데 이런 진퇴양난은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정부가 처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그쪽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적반하장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후맥락을 모르는 제3국 국민이 '강제징용 해법을 갖고 오라'고 일본이 독촉하는 지금 상황을 관찰하다면, 어느 쪽이 제국주의 국가였고 어느 쪽이 식민지였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적반하장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 국민들의 여론에 의해 역사문제가 한일관계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일본은 그런 반응을 보였다.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2년 8월 6일, 당시 74세인 마쓰노 유키야스 국토청 장관이 각료회의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안중근 문제를 거론했다. 그날 발행된 <경향신문> 1면 하단에 따르면, 그는 "한국 교과서가 이또 히로부미를 원흉이라고 부르면서 암살자인 안중근을 영웅시하고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뒤 "한국도 일본 역사를 생각하여 과거를 반성하고 양국 우호를 위해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안중근을 존경하는 것을 문제삼는 동시에, 한국도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망언이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국 여론이 들끓을 때였다. 이런 시기에 일본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한국을 나무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 대일외교’를 규탄하는 대학생겨레하나, 진보대학생넷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앞에서 박진 외교부장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최근 일본을 방문해 한일외교장관회담과 기사다 총리 면담을 한 박진 외교부장관이 ‘2015년 한일합의가 공식합의로 존중되어야 하고, 강제 동원은 현금화 전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일본에 되려 면죄부를 주는 굴욕외교를 선사했다’고 규탄했다. ⓒ 권우성

 
일본 극우세력 역시 주일한국대사관 앞에서 비슷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해 8월 10일 자 <조선일보> 3면 하단은 한국대사관 앞과 도쿄 곳곳에서 반한(反韓)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들은 '한국이 힘이 약했기 때문에 일본이 통치해준 것이다. 일본의 통치로 한국은 실제로 잘됐다'고 확성기로 떠들어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평소에는 한·미·일 삼각체제를 강조하며 대북·대중국 단결을 강조하던 일본 극우파는 이 시기에는 한국과 중국을 같은 부류로 묶으면서 '너희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 역사를 고칠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위 신문에 따르면 "중공·한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가"라는 게 극우파의 외침이었다.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기는커녕 도리어 인상을 쓰며 호통치는 모습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2월 15일 열린 제1차 한일회담 때도 나타났다. 식민지배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자 열린 이 회담에서 일본은 엉뚱하게도 손부터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손이 아니었다. 돈을 달라는 손이었다.

일본은 식민지배로 인해 자국이 손해 본 것들을 변상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이 받을 것과 일본이 받을 것을 상쇄하면 일본이 받을 게 더 많다는 것이었다. 1952년 2월 17일 자 <동아일보> '한일본(韓日本)회담 일본 주장'은 "(일본이) 수십 억 딸라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와 역대 정부의 차이점

이 같은 적반하장 태도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역대 정권이나 지금의 윤석열 정권 때나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것이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부당한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제1차 한일회담 당시의 이승만 정권 때뿐 아니라 마쓰노 유키야스 망언 당시의 전두환 정권 때도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일본의 태도를 어느 정도 맞받아쳤다. 그래서 일본의 태도가 한국 국민들에게 보다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일본을 방문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이 18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예방,기념 촬영하고 있다. ⓒ 외교부 제공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위안부 해법을 만들어 오라'는 기시다 내각의 요구는 과거의 그 어떤 망언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이전보다 표현은 점잖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가해자·피해자를 뒤바꿔놓을 뿐 아니라 한국의 주권까지 무시하는 함의들을 담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씩이나 '해법을 만들어 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거 역사 속의 제후국·신하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다.

그 같은 부당한 압박을 최일선에서 맞받아쳐야 할 윤석열 정부는 수동적 태도로 일관중이다. 일본이 가하는 충격을 흡수해주는 듯한 느낌도 풍긴다.

일본 정부의 한층 정교해진 접근법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일 역사문제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의식이 더욱 민감해진 지금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 국민들을 자극하면 윤석열 정부의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때문인지 일본 정부는 이전보다 절제된 표현을 써가며 가급적 윤석열 정부만을 겨냥하는 압력을 주로 행사한다. 한국민의 반발을 덜 받으면서 현금화를 막아보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답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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