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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원·하청 문제를 다뤄온 권두섭 변호사가 28일 오후 서울 민주노총 법률원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우조선 하청 파업을 계기로 원청이 하청노동자들과의 교섭에 임하도록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년 넘게 원·하청 문제를 다뤄온 권두섭 변호사가 28일 오후 서울 민주노총 법률원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우조선 하청 파업을 계기로 원청이 하청노동자들과의 교섭에 임하도록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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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청'이라 부르는 이들이 누군가. 대우조선해양, 연세대학교, 현대·기아차, CJ대한통운... 대기업과 재벌, 사학재단들이다. 이번 대우조선 하청 파업으로 원·하청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았지만, 나는 국회의 법 개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국회는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20년 넘게 원·하청 문제를 다뤄온 권두섭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대우조선 하청 파업을 계기로 원청이 하청노동자들과의 교섭에 임하도록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권 변호사는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최초로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그는 "원청 사용자성 판결 이후 12년 동안 정부가 하청노동자들과 교섭하지 않는 원청을 제대로 제재하기만 했어도 오늘날 용접으로 자기 몸을 묶는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대우조선 파업 때 하청노동자 유최안씨는 원청에 삭감된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가로·세로·높이 1미터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한달 동안 자신의 몸을 가뒀다.

권 변호사는 "원청이 교섭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하청 문제의 99%는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우조선 파업에서 보듯 임금 인상 등 하청노동자들의 요구 대부분은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의 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원청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교섭에 나서지 않아 쟁의가 장기화되고 극단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교섭권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3권"이라며 "원청이 나오지 않는 한 하청노동자들은 교섭을 하려고 해도 상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상대가 돼야 한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권리를 달라는 주장이 아니다"라며 "기존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권 변호사를 지난 7월 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법률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우조선부터 연세대 청소노동자 문제까지… 원청만 나오면 해결된다"
 
▲ 권두섭 변호사 “정부 뭐했나, 원청 나오면 99% 풀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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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어떻게 봤나. 

"하청노동자들 싸움 중에 이번 대우조선만큼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 결과를 봤는데 '원청의 사용자 책임 강화'에 찬성하는 쪽이 52.8%, 반대하는 쪽이 20.4%더라(tbs 의뢰, KSOI가 22~23일 실시,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 같은 관심을 대우조선 하청 파업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원청·하청 문제는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 깔려있다. 최근 불거진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시위도 구조가 똑같다. 하청 청소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게 ▲시급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정년퇴직자 인력 충원인데, 하나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시급 440원 인상과 인력 충원? 하청업체 혼자 결정 못한다. 연세대학교가 하청 용역대금을 올려줘야 가능하다. 샤워실 설치? 연세대학교 시설물에 관한 것이니 당연히 원청인 연세대학교가 승인해줘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연세대는 교섭에 안 나오고 하청업체들만 내세워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하청노동자 입장에선 교섭을 해야 할 상대방이 공백 상태인 것이다."

- 무엇을 바꿔야 하나.

"문제의 본질은 원청이 교섭에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나는 원청이 교섭에만 나와도 지금 있는 하청 문제의 99%는 해결된다고 본다. 원청이 하청노조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교섭을 하라는 거다. 하청노동자들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들을 떠올려보면 쉽다. 노사 교섭이 얼마나 많이 이뤄지나. 그런데 그 중에 파업까지 가는 데가 몇이나 되나. 노조든 사측이든 만나서 얘기하면 서로 입장을 알게 되고 조정하고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게 된다. 하청노조들도 실질적인 교섭을 할 수 있는 상대만 주어지면 타협이 된다는 얘기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하청노동자들 입장에서도 파업까지 가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이번 대우조선 하청 파업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원청이 움직여서 문제가 풀린 것 아닌가. 작년에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열명 넘게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청이 끝까지 안 나오고 버티니까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을 덧씌우고, 정치권까지 붙어서 '3자 대화'니 '4자 대화'니 하면서 겨우 원청을 끌어다 앉힌 거다. 나오니 합의가 되지 않나. '싸움은 말리고 교섭은 붙이라'고 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 원청이 하청노동자들과의 교섭에 나오려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거다. 그 책임을 하청업체들에게 넘기는 거다. 요즘 '정리해고'란 말 들어봤나? 싹 없어졌다. 왜 없어졌을까? 정리해고 했더니 여러 가지 책임져야 될 문제들이 생기니까 전부 하청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이젠 인원 줄이고 싶으면 정리해고가 아니라 하청업체 도급 계약만 해지하면 된다. 훨씬 쉽다.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을 막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원청이 교섭 상대를 안 하면 노조가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지고, 와해되기 쉬워진다. 그래서 충분히 빨리 끝낼 수 있는 사안들이 장기화된다. 투쟁하는 사업장들의 모습은 비슷해진다.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사회적 압력이라도 가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점거하고, 곡기를 끊는다. 심지어 이번 대우조선 파업 땐 용접으로 자기 몸을 묶었다.

극단적 투쟁으로 힘겹게 합의에 이르더라도 노조가 이탈되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 닭고기 가공업체 참프레에서도 하청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을 풀고 사측과 합의했지만(7월 27일), 노조가 사실상 무너지는 일을 겪어야 했다."

"대법 판례에도 움직이지 않은 정부·국회… 기대 없다"
 
20년 넘게 원·하청 문제를 다뤄온 권두섭 변호사가 28일 오후 서울 민주노총 법률원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원청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교섭에 나서지 않아 쟁의가 장기화되고 극단적으로 된다”며 “원청이 교섭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하청 문제의 99%는 해결될 것이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원·하청 문제를 다뤄온 권두섭 변호사가 28일 오후 서울 민주노총 법률원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원청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교섭에 나서지 않아 쟁의가 장기화되고 극단적으로 된다”며 “원청이 교섭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하청 문제의 99%는 해결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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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이 교섭에 임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은 뭔가.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그간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만 했어도 대우조선 하청 파업 같은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 2010년에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판결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원청이 하청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지는 않았더라도(근로기준법상 사용자), 교섭 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면 사용자(노조법상 사용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최고 법원에서 이런 판례가 나왔음에도 노동부 등 정부는 손을 놓고만 있었다. 해당 판결 이후 지난 12년 동안 수많은 하청노조들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고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음에도 정부가 제대로 법 집행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하청노동자들과의 교섭에 응하지 않는 원청을 부당노동행위로 입건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2010년 원청 사용자성 인정 판례는 실제 우리 사회의 제도로 안착되지 못했다. 지금도 '사용자'라고 하면 당연히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만 떠올리고, 원청이 하청노조 교섭의 상대방이 된다고 하면 생소해 한다. 그러니 대우조선에서 수십 일간 옥쇄 파업을 해도 원청이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정말 답답하다."

- 지난 7월 22일 노사 합의로 대우조선해양 하청 파업이 풀린 후, 노동법률학술단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못박도록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대법원 판례가 나왔음에도 현실이 바뀌지 않으니 아예 그 판결 취지를 법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노조법 2조에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관계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을 넣으면 된다. 이미 2007년부터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국회에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 무슨 뜻인가.

"우리가 말하고 있는 '원청'이란 뭘까? 다 대기업이나 재벌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기아차, CJ대한통운, 건설사들, 각 대학들과 사학재단... 우리 사회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이들이다. 국회에 대한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여당과 야당을 주고 받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보다는 이들의 이익에 더 관심을 갖는 정당들이다. 소수 국회의원들이 움직일 수야 있겠지만 법을 통과시킬 거란 기대는 안 한다. 정말 엄청난 사회적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나는 오히려 법원에 기대를 건다."

- 이유가 뭔가.

"실제 정부와 국회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동안 그나마 법원이 많은 노동 문제들을 해결해온 측면이 있다. 물론 더디긴 했지만.

사측에서 끊임없이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했던 택배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 뭔가. 법원이 2014년 골프장 캐디 판결, 그것으로도 사회에 영향이 미미하니 2018년 학습지 교사 판결을 통해 다시 한번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노조법상 근로자라고 인정해놨기 때문이다. 1999년 재능교사 노조가 출범했으니 학습지 교사들은 무려 20년 만에 노조를 인정 받은 셈이었다. 그 20년 고통의 시간 동안 3000명까지 이르렀던 재능교사 노조는 100명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열매 덕분에 지금의 택배 기사들이 노조할 권리를 얻은 것이다. 만약 20년간 이어진 학습지 교사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그래서 만약 줄줄이 과로사했던 택배 기사들이 노조조차 만들 수 없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엔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을까.

지난해 LG 트윈타워 하청 청소노동자들이 해고됐을 때도,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사측으로부터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였나. 2020년 수자원공사 하청 청소노조 판결이 있었던 덕분이다. 계약직의 고용 안정이 사회적 문제가 됐던 2011년에도 대법원이 갱신 기대권이라는 법리를 형성하면서 논란을 정리했다. 

최근 포스코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7월 28일)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2010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다른 산업에서 또 문제를 제기하자, 다시금 못박은 것이다. 이렇듯 법원은 계속해서 법의 그물망을 피해가려는 사용자들을 향해 나름대로 울타리를 쳐왔다."

"노동 문제 해결해온 법원, '원청 사용자성'에서도 다시 역할해야"
 
권두섭 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변호사.
 권두섭 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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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이 판결한 만큼만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제도화하라는 말인가.

"법원이 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사용자는 법망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이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와일은 이를 '균열 일터(The Fissured Workplace)'라고 불렀다. 과거에는 그저 노동자와 사용자가 있었고 그 사이에 근로계약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균열이 발생해 분명 노동자이긴 한데 노동법에서 배제되는 '독립 사업자'니, '플랫폼'이니, '특고'로 불리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용자는 아예 여러 개로 마구 나뉜다. 원청과 하청, 두 개로 나뉘다가 이젠 서너 개씩으로도 나뉜다. 최근 '타다' 기사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7월 8일)을 보자.

타다 기사 입장에서는 쏘카라는 회사가 있고, 그 아래 타다 앱을 운영하는 자회사가 있다. 또 그 아래 자신이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가 있는데, 심지어 그 업체와는 통상의 근로계약도 아니고 프리랜서처럼 사업자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변종에 변종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역시 이미 2006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학원 강사 판결이 있지만, 법 적용을 피하려는 시도들이 새롭게 나오는 것이다.

이번 대우조선 사태는 단적인 예다. 하청 파업이 50일 되도록 원청은 나오려 하지 않았다. 실제 2010년 원청 사용자성 판례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다른 논리를 펴며 분쟁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 현대중공업 하청 노조가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 원청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는데, 1심과 2심에서 현대중공업 쪽 손을 들어줘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21년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원청인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사측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법원의 역할이 다시 필요하다."

태그:#권두섭, #대우조선해양, #연세대청소노조, #하청, #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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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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