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1

8년 만에 돌아온 이순신, '명량'의 '국뽕'은 잊어라

[영화 '한산' 이렇게 봤다] 절제와 균형의 수사학으로 본 '한산'

22.07.30 11:35최종 업데이트 22.08.0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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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개봉한 26일 오후, 동대문의 한 멀티플렉스를 찾았다. 마침 영화계가 극장 개봉일로 제일 선호한다는 7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관람료할인이 적용되는 회차였다. 

300석에 가까운 객석의 적지 않은 수를 중‧노년층 관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노년 부부가 함께한 가족 단위 관객마저 눈에 띄었다. 그렇다. <한산>은 역대 흥행 1위 <명량>의 속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50대 이상 관객들에게도 친숙할 수밖에 없는 작품일 터다.

젊은 관객층이 초반 흥행 및 입소문 마케팅을 주도하면 뒤이어 뒤이어 장년 관객층이 움직인다. 그런데 <한산>은 이런 기존 흥행 속설과는 다른 움직임을 예상해 봄직하다. 1700만을 동원한 전작에 이어 8년 만에 돌아온 '이순신 장군' 영화요, 300억 넘는 제작비를 들인 전쟁 액션 블록터스터 아닌가.

멀티플렉스 점유율 1위인 CGV 예매율 수치를 볼까. 27일(오후 4시) 현재 <한산>의 연령대별 예매율은 20대 21%, 30대 28.3%, 40대 29.1%, 50대 19.6%다. 경쟁작들을 보면, 이미 개봉한 <외계+인>의 50대 예매율은 15.6%고, 개봉을 앞둔 <비상선언>과 <헌트>는 각각 17.6%, 11.8%였다. 20%에 육박한 <한산>의 50대 예매율이 역시나 1위였다.

반면 <한산>의 20대 예매율은 21%로 가장 낮았다. 특히 <한산>과 이정재‧정우성 콤비의 정치 액션 스릴러 <헌트>의 관객층이 극명하게 나뉘었는데, <외계+인>은 26.9%, <비상선언은>은 25%, <헌트>는 30.9%였다(20대 예매율 기준).

전 연령대에 소구하는 <한산>의 인지도를 방증하는 수치 중 하나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트위터 상에서는 사용자 1만 명이 리트윗한 트위터 사용자의 <한산> 감상평이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해당 사용자(@iruaa)는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왜구를 팬다. 전후좌우 신나게 팬다"라며 "그것 하나로 이 영화는 값을 했다. 스토리는 모르겠고 왜구를 패는 거 하나로 효도영화라 해도 될 듯"이라고 평했다. '효도영화'란 표현이 익살스러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한층 공들인 속편
 

영화 <한산>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언론 시사 직후 영화계가 들썩였다. 50여 분에 달하는 <한산>의 후반부 전투 장면이 화제였다. <한산>은 이 한산도 대첩(견내량 대첩) 장면을 영화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작품들이 출현하곤 한다. 예컨대, 광활한 만주 벌판을 내달리는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대표적이다. 과거엔 이런 영화들을 칭하기 위해 '스펙터클'(Spectacle)이란 표현이 자주 쓰였다.

이를 위해서일까. 중반까지 소소한 전투나 액션 장면도 배제했다. 오로지 길고 긴 마지막 해상 전투 장면 하나에 사활을 건다. 제작비에 걸맞게 영화 속 대부분 세트에서 촬영했다는 CG 및 VFX 연출도 출중하다. 할리우드 해양 블록버스터가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실제 해상 위에서 촬영했다는 전작은 자연광을 기조로 화면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은 <한산>은 세트 촬영 특유의 갑갑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전투 장면을 잇는 컷과 컷의 이음매나 편집의 리듬감도 탁월해졌다. 여기저기 제작진의 노고가 역력한 장면들이 즐비하다.

<난중일기>나 역사서 속 상상의 산물이었던 '학익진'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것 하나 만으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다. 특히나 거북선으로 친숙한 구선(龜船)이 출현하는 '반전' 클라이맥스는 기술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극의 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전작의 판옥선이 담당했던 후반부의 극적인 쾌감을 배가시킨 것이다. 

전작의 깜짝 반전 카드였던 판옥선을 구태여 언급한 건 이유가 있어서다. 반복하자면, <명량> 이후 8년이 흘렀다. <한산>은 관객의 뇌리에서 잊히기 전에 소환되는 속편의 사이클을 일찌감치 벗어났다. 대한민국 전체 관객 중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명량>에 대한 기억을 소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당시 기록적인 흥행은 이순신 신드롬을 낳았다. 갖가지 평가와 분석이 줄을 이었다. 영화 내외적으로, 세월호 참사 직후이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주를 이뤘다. 애국주의에 기댄 '국뽕' 논란부터 역사 고증, 이순신 미화까지 '팩션 영화'답게 전 방위에 걸쳐 나올 수 있는 분석들이 쏟아졌다. 마치 작금의 '우영우 신드롬'처럼.

<한산>은 그만큼 전작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 맞다. 8년 전 이미 3부작을 예고했던 김한민 감독이 최근 홍보 인터뷰에서 향후 '이순신 3부작'의 드라마화 계획을 내비쳤을 정도다.

<한산>은 사실 후반부 반전을 포함해 전작의 서사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다. 속편의 운명이라 분명 단순 재탕은 아니다. 다만, 이미 온갖 평가가 이뤄진 만큼 전작과 결을 달리하려는 취사선택에 나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50여 분의 해양 전투 장면에 '올인'한 전략이 이를 웅변한다.

김한민 감독과 제작진이 전작과 싸우는 속편의 운명을 비켜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은 대부분은 감탄을 자아내는 후반부에 집중돼 있다. 그 전략이 장년층을 포함해 너른 세대에 호소할 수 있을지는 궁금하다. <명량>하면 떠오르는 '애국심', '국뽕', '반일' 등의 키워드가 적지 않게 절제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 이순신, 그리고 <명량>과의 결별
 

영화 <한산>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살고자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하는 말이 아니더냐."

<명량> 속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생즉사 사즉생' 대사다. 이처럼 <명량>은 시작과 함께 끊임없이 이순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탈영병을 이순신이 직접 참수하는 장면은 과도한 상상력이란 비판까지 낳았다. 왜군의 위협은 물론 부하들의 시해 시도도 삽입됐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에 몰린 이순신과 벼랑 끝에 내몰린 국운을 일치시키며 명량대첩 승리의 서사적 쾌감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거대 예산을 들인 전쟁영화의 일반적인 서사 구조와 일치한다. <한산> 역시 같은 길을 걷는다. 왜군 수장 와키자카(변요한)이나 원균(손현주)처럼 내외부의 갈등세력이 존재하고, 구선의 완성은 요원해 보이며, 물량을 앞세운 왜군의 공세는 점점 더 고조된다. 반면 장고를 거듭하는 이순신(박해일)은 진중하고 신중하며 과묵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해상 전투 속 백병전도, 소소한 전투도 눈에 띄질 않는다. 역사적 실제 배경이 그랬다는 것과 역사적 사실을 대체할 만한 영화적인 방점을 찍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남는 것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란 대사로 웅변되는, 임진왜란을 대하는 이순신의 철학이다.

여기서 눈에 띄게 배제되는 것은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다.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라던 전작 속 명장의 고뇌나 애민의식을 영화적으로 펼쳐놓을 생각이 별로 없다. 지속적으로 왜군과 내부의 "두려움"을 강조했던 영화적 방점도 불필요하다.

예견된 패배를 앞두고 신하를 챙기지 못한 데 절망하고 스스로조차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두려워했던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는 여기에 없다. 동어반복을 피하려는 영리한 선택일 수 있다. 확고하게 정해진 서사 구조로 돌진하려는, "바다위의 성"과 "구선"의 활약을 장쾌하게 시각화하려는 영화적 선택 말이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이 지녀야 할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거북선을, 부하들을, 백성들을 챙기느라 이리저리 얼굴을 비추던, 이순신의 고뇌를 강조하는 설명적인 장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나 일반 백성이나 병사들을 부지런히 비추며 충과 백성과의 연관을 강조하던 설정들이 대부분 거세됐다.

차이와 배제, 절제 사이에서  
 

영화 <한산>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들을 대신하는 캐릭터가 '항왜' 준사다. 부하를 저버리는 장수에 실망하고 이순신에게 감복해 왜군에 맞서는 이 캐릭터는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영화제 주제를 웅변한다. 자의든 타의든 부각될 수밖에 없는 '반일' 정서를 차단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반면 이 캐릭터가 왜 '항왜'에 나섰는지의 과정이 구선의 재건이 휘발된 것처럼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해상 전투와 구선의 활약이란 후반부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면을 반복 또 반복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와키자카의 존재감이다. 이순신만큼이나 등장 장면이 상당하고 대사량은 특히 월등하다. 다만, '매력적인 악당이 단단한 서사를 만든다'는 상업영화의 법칙에 걸맞은 비중만큼 독창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지 평가가 갈릴 만하다. 

기실 <명량>의 '국뽕' 논란은 영화적인 기법과 동일어라 할 수 있다. 온갖 역경에도 "왜군을 때려잡는" 이순신의 영웅담만이란 전제 뿐만이 아니다. 전작은 이순신의 고뇌와 백성의 희생, 왜군의 잔악함을 강조하기 위해 회상 장면을 필두로 갖가지 설정과 영화적인 기법을 동원했다. 일종의 '과잉의 수사학'이요, 나름의 '신파성의 극대화' 전략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한산>은 과잉이라 여겨질 그 어떤 요소들조차 배제하려는 절제와 균형의 수사학을 자랑한다. 소위 '빌드 업'이라 불리는 '빌런'의 성격화나 갈등 구축 양상의 정서적 빈약함은 둘째 치더라도 해양 전투 장면을 전개해 나가는 기술적, 정서적 구축이 특히 그렇다.

그리하여, <한산>은 기세 좋게 포문을 열었다. 개봉 일에만 38만 명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 40만으로 출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종의 '보복관람'이 이뤄진 <쥬라기 공원 : 도미니언>의 76만에는 못 미치지만, '천만영화' <범죄도시2>의 46만엔 얼추 근접했다. 참고로, <명량>은 68만이었고, 현재 장기흥행 중인 <탑건 : 매버릭>은 18만이었다. 

전작의 친절함이나 정서의 주입식 교육과도 같은 과잉과 결별을 선언한 <한산>. 이를 마주할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들은 8년 만에 돌아온 속편의 차이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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