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6 11:59최종 업데이트 22.08.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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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교육부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2025년부터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하여 논란을 빚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결국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퇴했다. 

학제개편안은 사실상 철회되거나 적어도 일단 후퇴한 듯 보인다. 교원단체, 학부모, 유치원 관계자들은 만 5세 입학에 반대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내세운 조기교육의 수요와 효과성, 공교육 조기 편입을 통한 교육 격차 해소라는 학제개편의 명분이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 5세 입학 정책 도입의 발원지는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의 말 한 마디가 교육부 업무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학제 개편은 안철수 의원이 오래전부터 해온 주장이었던 듯하다.
  
논란의 화살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쏠리자 그는 취학 연령 하향에만 문제의 초점을 두지 말고 핵심을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핵심은 1951년에 설계된 지금의 6-3-3-4 학제는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이어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지금 아이들에게는 낡은 제도라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만 3세부터 2년간 공교육 유아학교, 만 5세부터 5년간 전일제 초등학교, 평생 교육센터로서 대학의 기능 확대를 제안했다. 이 제안이 전문가와 현장 관계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출한 바람직하고 타당한 대안인지는 모르겠다. 구체적 내용을 들어봐야 판단이 가능하다.

교육부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

아무튼 변화를 위한 치열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위한 양보와 연대가 필요하다. 이미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유아교육의 공공성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여 초등학교 정규 시간이 연장될 필요가 있다는 정책 논의가 있었다. 또한 저출산 심화로 대학의 역할과 기능 재구조화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가 학제 개편이라는 하나의 제도 개혁으로 모이든지 각각의 제도 개선으로 구현되든지 간에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 정책에 대한 시각과 방향 속에서 다뤄질 것이라는 점은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다.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지역 균형 발전 정책 방향에 모순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가 결정되었다.

교육의 공식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인재 양성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가 인재 양성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경제부처처럼 사고하라는 주문은 교육 현실을 도외시한 것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교육 정책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모해야 한다. 인구구조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은 향후 시대 변화를 가속할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교육 정책은 더 큰 문제다. 

정부가 엄마들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라고 요구한 지는 오래되었다. 높아진 여성 고용률에도 불구하고 출산과 육아로 노동시장을 떠났다 돌아오는 엄마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여성의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 패턴은 M자 곡선으로 나타난다. 자녀가 아주 어릴 때뿐 아니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도 상당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학교 수업은 기껏해야 4~5교시 오후 2시면 끝난다. 퇴근하고 대략 7시는 돼야 집에 돌아오는 맞벌이 부모는 방학이나 학기가 시작되기 전 '돌봄 고개'를 넘기 위한 스케줄 짜기에 골치를 앓는다.

방과 후 수업만으로는 저녁 7시까지 버틸 수 없다. 초등 돌봄교실 운영 시간은 오후 5시까지가 기본일 뿐만 아니라 들어갈 자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학원 차로 피아노, 태권도, 수영, 교과 관련 학원 등으로 아이를 돌리거나 아이 돌보미나 친척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71년생인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70년대 말에도 4시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는 집에 오면 엄마가 있었고 골목에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시대에 맞는 학교 시간표였다. 지금은 엄마도 없고 골목도 사라졌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취학 연령 하향은 학부모들에게 돌봄 고개를 1년 앞당긴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말만 거창한 초등 전일제학교

학제개편안을 여전히 염두에 둔 조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육부는 '초등 전일제학교' 도입을 발표했다. 방과 후 과정을 확대하고 초등 돌봄교실을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는 것이다. 초등 전일제학교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학교 수업 시간표는 그대로 두고 기존의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개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사, 돌봄전담사, 학부모들 사이에 입장 차이와 우려가 만만치 않다. 교사들은 업무 부담이 늘고 아동이 학교에 오래 머물면 결국 교사에게 더 책임이 돌아온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일부 학부모는 방과 후 수업과 돌봄교실 프로그램이 교육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고 아동을 장시간 학교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동학대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돌봄전담사는 돌봄교실을 확대하더라도 지금처럼 법적 근거가 없다면 예산과 인력 확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초등학교 돌봄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어도 50년 동안 유지된 정규 수업 시간표를 건들지 않고 여성 고용 확대에 따라 발생한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책임 소재를 두고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다. 

스웨덴은 여성 고용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2016년에 스웨덴의 30, 40대 여성 고용률은 90.4%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6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였다. 스웨덴은 아빠들의 양육 참여가 활발하고 공보육 시설도 잘 갖춰져 있기로 유명하다.
 

스웨덴의 학교 안 레저타임센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 Saffle kommun

 
그런데 초등학교 아동 돌봄은 어떨까? 스웨덴의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은 어떻게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분명 뭔가 있을 거라는 궁금증에 8년 전쯤 연구과제 수행 차 스웨덴의 '레저타임센터'를 방문했다. 

레저타임센터는 초등학교와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 학교 바로 옆 건물에 있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어린이집을 확대해 놓은 것처럼 각종 놀이기구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학교 수업을 끝낸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대로 레저타임센터로 온다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고 다 함께 머물며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놀며 배우는 곳이 레저타임센터였다. 무엇보다 남자 교사들이 여럿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초등학교에 가도 엄마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물리적 공간은 분리되어 있으나 초등학교와 레저타임센터가 협동하여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 전문가이자 엄마로서 부러웠다. 

교육과 돌봄 선 긋기 유감

당시 우리의 초등학교 돌봄 사정은 스웨덴과 한참 거리가 있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초등 돌봄교실을 둘러싸고 교육과 돌봄에 선을 긋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지 돌봄을 하는 곳은 아니며, 교육은 교사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돌봄교실에서는 숙제 봐주기 같은 학습 지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어느 교육 공무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이런 발언은 오래전부터 돌봄과 교육 사이에 형성된 위계와 불평등을 반영한다. 돌봄은 집에서 엄마가 하는 '애나 키우는' 일이고,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며, 교육은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하는 전문성 있는 일이라는 구분이다.

근대 이후 일터와 삶터의 분리, 학교와 가정의 분리는 돌봄을 가정이 하던 일로 규정하면서 교육과 돌봄의 분리와 차별을 강화했다. 초등학교의 돌봄 인력에 부여한 명칭이 교사가 아니라 '돌봄전담사'가 된 것도 돌봄은 교사가 하는 일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 일자리가 박봉과 단시간 노동으로 여성 집중 일자리가 된 것은 교육 인력이 아닌 돌봄 인력으로 규정된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돌봄 관련 업무는 돌봄전담사가 맡아서 해야 하며 책임도 지자체가 안아야 한다는 학교와 교사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초등 전일제학교'가 스웨덴식의 교육과 돌봄의 통일과 조화가 가능한 초등교육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요즘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을 연기한 구교환 배우는 '1. 어린이는 놀아야 한다. 2. 어린이는 건강해야 한다. 3.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라고 외친다. 드라마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만 5세 취학이 논란이 되던 시점이라 더 큰 울림을 줬던 것 같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해마다 조사하는 '아동의 삶의 질 수준'에서 2021년 우리나라 아동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35개국 중 하위권인 31위다. 세계 GDP 10위 안에 든다고 자랑하는 한국에서 노인빈곤율 1위 기록만큼이나 부끄러운 숫자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학제를 개편하여 반도체 관련 교육을 받게 하고, 일찍 노동시장에 나가게 하는 교육 정책보다는 어린이와 청년이 학교 안팎에서 행복할 수 있는 교육과 돌봄이 조화로운 교육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윤자영

 
필자 소개: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시장과 비시장 영역의 돌봄과 젠더·계층·세대 질서 및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등에서 공익위원과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고, 학계에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사회정책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와 기본소득, 노동시장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서비스 일자리 근로조건 등 논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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