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2 13:54최종 업데이트 22.02.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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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지난 9일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고등학교를 기술고, 예술고, 과학고로 나눠야 한다"라고 발언해 누리꾼들이 '이미 그렇게 나뉘어 있다'며 당혹스러워 한 바 있다.

실제로 예술고는 1974년에, 과학고는 1983년에 생겼으며, 기술고도 마이스터고라는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 때 설립되었으니 윤석열 후보는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 맞다.


하지만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서 "현재도 과학고, 외고, 예술고, 기술고, 인문계 등 고등학교가 기능별로 나눠져 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 외고나 과학고를 나와서 의대에 가는 현실을 바로 잡아 원래 취지대로 정상화하고 교육의 다양성을 살리자는 것"이라고 답변한 것처럼 이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

지난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은 공교육의 만족도를 두 배 이상 향상하고 사교육비를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의 '학교 다양화 300 정책'이다. 여기서 이명박 정부의 학교 다양화 300 정책과 '학교 다양화 정책'은  차이가 있다.

학교 다양화 정책은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된 이래 지속된 정책이다. 고교평준화 제도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교 선택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으로 1974년에 예술분야의 예술고등학교를 시작으로 1983년에 과학고등학교, 1992년에 외국어고등학교, 1998년에 국제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와 달리 학교 다양화 300 정책 고교평준화 정책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에서 학교 다양화 정책과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정책 속성이 변질됐다. 이 정책은 학교 다양화 정책을 일반고까지 광범위하게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 핵심 내용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100개 교, 마이스터고 50개 교 등을 설립하여 학생의 고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사회 및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먼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자립형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의 운영 및 교육과정 편성에 관한 자율권을 확대하고 자율형 사립학교에 지원되는 국가 경비를 절약하여 일반 고등학교의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이다. 마이스터고등학교는 직업계고등학교인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당수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 교육 풍토를 개선하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장인(匠人)을 육성하여 취업하게 하고 대학 진학은 취업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시점에 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학교 다양화 300 정책은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장인을 육성해 사회와 국민의 교육 욕구를 일부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과정 편성을 왜곡하고 일반 고등학교와 특성화고등학교를 황폐화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자율형 사립고 100개 확대 정책의 탄생

자율형 사립고 설립은 고교 체제의 다양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입안된 교육 정책이다. 자율형 사립고 방안은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에서 자립형 사학의 형태로 제안되었고, 장기간의 교육 정책 연구와 전문가 집단의 논의 및 합의를 거쳐 2002년에 민족사관고·광양제철고·포항제철고, 2003년에 해운대고·현대청운고·상산고 등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로 시범 지정·운영되었다.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는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학생들이 일반 학교의 3배 범위 내에서 높은 등록금을 부담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선정된 학교는 우수한 학생을 독점적으로 선발하여 교육할 수 있었고 우수한 대학 진학이라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결국 전국에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진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국민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이명박 정부에서는 당시 교육 정책 주무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 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이라는 양적 목표를 무리하게 달성하기 위해 교육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학교까지 참여하도록 유도하면서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더불어 학교 대부분이 서울이라는 지역에 편중되어 교육의 지역 편중을 가중하고 지방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결국 자율형 사립고는 정부의 왜곡되고 과도한 정책 추진과 자녀에 대한 우수 교육을 바라는 국민의 교육 욕망이 맞물려 태어난 새롭지만 기이한 유형의 학교가 된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시민단체 회원들이 2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특권학교, 차별교육 반대! 자사고(자율형사립고) 폐지-일반고 전환 공약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6.27 ⓒ 권우성

 

자율적 교육과정 편성권한은 오직 대입 중심의 왜곡된 교육과정 편성·운영 사례로 나타났고, 자율형 사립고 중심의 인재 선발과 무분별한 확대는 일반계 고등학교 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서 인재를 선발해서 선점해버리니 나머지 일반고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초래된 것이다.

인재를 육성하고, 학생에게 학교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일은 국가적인 교육 정책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다른 고등학교 교육에 폐해를 준다면 재고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면 중장기적인 설계와 안정적 실행을 중시하는 교육 정책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정권의 공약에 매여 대한민국 교육의 근간을 흐리고 본래의 목적이 와해된 정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과정 다양화 정책으로 혁신

학교 다양화는 국민의 선택권, 교육의 다양성, 교육의 수월성, 사회의 수요 등과 맞물려 있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확대하여 선택권을 늘리면 결국 일반고등학교에서는 상대적인 기회 박탈이 일어나 교육 소외 현상과 교육 계층화 현상이 발생한다. 코로나19로 더욱 황폐화된 우리 교육의 자화상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과연 어떤 가치를 우위에 두어야 할지 묻고 싶다.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고교학점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고 이수하게 하는 제도로 교육과정 다양화를 가능하게 한다. 결국 일반고등학교에서도 자율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등학교와 같이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자율형 사립고 및 특수목적고등학교와 같은 고등학교의 필요 명분까지 사라지게 한다.

교육 대전환기를 맞아 고교학점제 정책 추진을 시작점으로 학교 다양화 정책을 폐기하고 교육과정 다양화 정책으로 혁신하는 것은 어떨까?

이제 곧 대통령 선거다.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은 학교 다양화 정책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단위 학교의 교육과정 다양화 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소신 있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교육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 필자 소개: 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미래교육전문위원회 연구원. <미래교육이 시작되다>, <고교학점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맘에 드림) 공저. 평생학습체제 수립을 위한 국가 교육 및 훈련 관련 법령 개선 방안(직능연, 2019) 연구 등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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