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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인권유린이 벌어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인권유린이 벌어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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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번호 86-8-2430, 본명은 서OO씨."  
"서OO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에서 근무한 봉급 생활자."


그의 이름은 35년 전,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 신문 기사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이 현장 조사를 통해 기록한 진상조사 보고서에도 그의 이름이 있다. 

"서OO은 휴가 차 부산에 왔다가 역 대합실에서 공안원 직원 김OO에 의해 연행되었음."

1986년 형제복지원 직원 4명과 함께 '봉고차'에 실린 날, 그는 여름 휴가 중이었다. 27세의 나이. 제철소 협력업체 사무직으로 일하던 서씨는 누나가 살고 있던 부산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길로 휴가는 끝났다. 차비를 아끼려고 비둘기호 막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눈을 붙이고 있는 사이, '그들'이 다가왔다고 했다. 

"식당 불려가 감자 썰기... 봉급은 없었다"

"인생이 그리 됐습니다... (임금 대신) 새마을담배를, 그때 40원할 때인데요. 열까치(개비)를 주더라고요."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서씨는 이듬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드러난 1987년 2월까지 약 6개월간 발이 묶였다. '부랑인이 아니다'라는 읍소는 받아들여졌지만, 대가 없는 노동에 동원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식당 감자 써는 데로 갔고, 열심히 일했다"면서 "봉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6개월의 시간은 서씨가 형제복지원을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세월의 발도 묶었다. 서씨의 피해 사례가 역으로 그에게 '부랑자'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랑인 시설에서 있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취직을 못했다"면서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억울하다"는 말 끝에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과거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서씨는 직장 생활을 하다 여행을 떠난 20대 청년이었다. 1987년 2월 <조선일보>는 그의 학교 동문들과 직장 동료들을 직접 만나 확인, "서씨는 분명 억울하게 수용돼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부산시가 당시 서씨 등 형제복지원 원생들의 증언이 허위라고 발표한 사실을 '팩트 체크'한 대목이다.

은폐와 낙인
 
지난해 11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11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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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의 발뺌과 은폐 정황은 30년 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 24일 결정 내용에서도 드러났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사실이다.

이번 진화위 발표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에 10살 자식이 감금돼 있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된 아버지가 딸과의 재회 이후 강제수용 관계인들을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고소했으나, 이를 취하하라는 압박을 당했다는 문건이 존재한다. 진화위는 "1987년 2월 19일 부산시 공무원들이 아버지를 면담한 후 고소를 취하하도록 회유, 이 과정에 안기부와 방첩대가 동원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1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산시 등 국가기관이 피해자를 회유, 고소 취하에 나서도록 압박한 사실을 밝혀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1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산시 등 국가기관이 피해자를 회유, 고소 취하에 나서도록 압박한 사실을 밝혀냈다.
ⓒ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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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하루 애매하게 먹고 살아도 됩니다. 저 사람들 다 도와줘야 합니다." 

서씨에게 머리를 식힐 겸 떠났던 여행은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솟구치는 기억으로 변했다. 피해 고발 이후엔 피해자라는 인식보다는 '부랑인'이라는 낙인이 더 강하게 남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서씨는, 살인과 가혹행위로 얼룩진 다른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 괴로워했다.  

한편, 지난해 5월 진상조사를 개시한 진화위는 24일 8월 기준 500명의 신청자 중  191명(2020년 12월 10일부터 지난해 2월 26일 사이 신청자)에 대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을 규명했다. 조사 접수 순서에 따라 추가 조사를 이어가고 있어 서씨의 경우 이번 1차 명단엔 포함되지 못했다. 정근식 위원장은 "올 연말까지 2차 진실 규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 관련 기사 : 2기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신청 1호는 '형제복지원' http://omn.kr/1qxcu ).

태그:#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상규명, #진화위,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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