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연생모씨가 정근식 위원장(뒤)의 발표를 들은 뒤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연생모씨가 정근식 위원장(뒤)의 발표를 들은 뒤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저는) 연생모라는 사람입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른 것보다 시급한 것은 트라우마 치료입니다. 치료 좀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십시오 제발... 몸이 막 마비가 오고 떨려서 미치겠습니다."

마이크를 잡기 위해 통로를 지나는 길을 겨우겨우 걸어나갔다. 다리는 경련이 온듯 부들부들 떨렸다.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입을 뗀 연생모 형제복지원 서울경기 피해자협의회 집행위원(54)은 이 말을 끝으로 기자회견장을 향해 세 번 허리를 굽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24일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1차 진실 규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형제복지원의 '화학적 구속'... "멀쩡한 원생에 약물 투약"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연씨는 1983년, 15살에 끌려가 형제복지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1987년 지옥을 벗어났다. 그곳에서 겪었던 온갖 폭력과 끔찍한 기억은 병이 됐다. 노숙인이 돼 서울을 떠돌아 다녔다. 진정을 위해 회견장 밖에 서 있는 연씨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숨을 내쉬었다. 그의 옆에 선 지인은 "아직도 우울증약을 드신다"고 말했다.

진화위는 이날 형제복지원 참상에 대한 1년 3개월간의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신청자 544명 중 지난해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이 진실규명된 대상이다. 이날 공개된 규명은 형제복지원 사건 전반에 대한 조사 결과이고, 아직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대상자에 대해선 올 연말까지 규명 여부를 완료할 계획이다. 

'클로르프로마진, 할로페리돌, 디펠, 카마제핀, 오르필, 바리움, 달마돔...'

이날 진화위 조사 결과 발표 현장에선 약 이름들이 등장했다. 정신과 약물 목록이었다. 규명 신청자 다수가 "멀쩡한 원생에게 강제로 먹여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어 통제했다"고 증언했다. 진화위는 이를 '화학적 구속'이라고 명명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진화위는 "형제복지원 내에서 정신과 약물이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됐고 전문의 처방 없이 간부원생이 투약해 온 정황도 확인되는 등 수용자에 대한 통제 목적으로 화학적 구속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소대장 등에게 반항하니 저를 정신병동으로 보냈습니다. 나중에야 의사가 저를 '기질성 뇌증후군' 진단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신청인 진술

"두들겨 맞다가 의식을 잃었는데, 정신 차리니 약간 정신 없는 사람들이 수용되는 곳이었고, 뇌파 검사를 해야한다면서 검사를 해보고는 간질이라며 약을 주는데 한달간 먹다보니 기억도 없고..." - 1987년 검찰 수사 당시 수용인의 진술


특히 '요양'을 명분으로 설치한 정신요양원은 감금과 징벌을 위한 곳으로 활용됐다는 게 진화위의 설명이다.

진회위는 "전원조치가 정신과 치료에 따르지 않고 간부 원생에 의한 징벌 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신청인 다수가) 진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산사회복지연대가 입수한 당시 한 여성의 신상기록카드를 보면 "정신질환자로 사료된다"는 비의료인의 판단에 의해 정신요양원으로 옮겨진 기록이 나온다. 

구타와 성폭력 등 폭력이 난무한 일상은 물론, 비전문적 진단으로 정신까지 구속한 결과는 병과 죽음이었다. 진화위가 이날 공개한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총 657명이다. 기존에 알려진 551명보다 더 늘어난 숫자다. 

사망자 수 더 늘어... "진실에 가까운 숫자"
 
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진화위는 "2014년 영락공원 묘지 가매장 명단에서 추가 확인 되어 최종 폐쇄되기 전까지 총 사망자수는 551명으로 알려져 있었다"면서 "그러나 최초 확보한 통계와 명단을 검토한 결과, 1987년부터 1988년 사망자수까지 합산하면 총 657명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정근식 위원장은 "조사관들이 상당 노력한 결과, 추가 자료를 많이 확보했다"면서 "이 숫자가 진실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화위는 이날 "정부, 국회, 부산시"를 대상으로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각종 시설 피수용자 인권 침해 방지 관리 감독(국가) ▲유엔 강제실종피해방지협약 비준 동의(국회) ▲피해자 조사 지원 조직 예산, 규정, 조직 정비(부산시) 등이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답답해했다. 진화위의 규명 내용과 권고를 들고 다시 국회와 법원 등을 찾아 피해 보상 및 형사 처벌을 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직 남은 추가 규명을 위해 진화위가 기간제 기구가 아닌 상설 기구로 바뀌어야 한다는 요청도 덧붙였다. 

20대 국회 당시 진실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통과를 위해 927일 동안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던 한종선씨는 "1년 조사 결과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면서 "임기 내 더 추가 발굴해 조사를 완료해주시고,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피해자들이 사회 일원으로 돌아가도록 많은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태그:#형제복지원, #트라우마,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1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