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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강정처럼 구멍 뚫리는 벽

한국에서 우리는 층간 소음의 가해자였다. 피해자 못지않은 스트레스가 컸다. 밧줄로 꽁꽁 묶어 둘 수 없는 초등학생 아들 둘에게 외쳐댔다. "제발! 집에서 뛰지 마." 한창 힘이 넘치는 두 아이도 변명했다. "아빠! 초등학생 몸은 말을 잘 안 듣나봐요."

미국에 와서 집을 찾을 때, 지인은 미국은 나무집이라 층간 소음이 더 심하다고 했다. 더는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아파트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1층 단독주택을 선택한 이유다. 층간소음에 해방된 기쁨에 두 아들에게 목청껏 외쳤다. "집에서 힘껏 뛰어놀아라."

하루는 둘째가 큰 방에서 뛰다가 벽에 머리를 살짝 부딪쳤다.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뛰어 갔더니 아이는 멀쩡했다. 그러나 벽은 그렇지 않았다. 큰 구멍이 생겼다. 우리가 사는 미국 집은 목조 주택으로 벽이 합판이었다. 조그마한 충격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기 일쑤였다. 
 
우리가 사는 집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기 일쑤였다.
▲ 뚫린 벽 우리가 사는 집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기 일쑤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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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장면은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등장인물이 화가 나서 주먹으로 벽을 치면 벽이 뚫려버린다. 사람 힘이 센 게 아니라 벽이 약한 거였다. 실제로 우리 집 벽도 속 빈 강정과 같았다. 벽에 구멍이 몇 개 뚫리자 애들에게 다시 외쳐댔다. "제발! 집에서 뛰지 마." 

미국 집의 90%가 목조 주택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 National Association of Home Builders)에 따르면, 2019년 미국에서 지어진 주택의 90%가 목재 골조다. 미국은 집을 짓는 데 다른 나라보다 많은 나무를 사용한다. 우리 집 옆 신축 공사가 한창인 단지도 나무로 집을 짓고 있었다.

미국에서 목조 주택은 하나의 문화이자 역사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신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건물이 필요했다. 암석을 깎거나 벽돌을 만들어 쌓을 여유가 없었다. 개척자들은 당장 사용 가능한 건축자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광활한 숲의 나무였다.

옛날에는 쇠못도 부족했다. 건축하는데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목재에 홈을 파고 나무끼리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목조 주택을 지었다. 당시 목조주택은 건축하는데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해 공사기간도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19세기부터 더 많은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미국은 더욱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를 겪는다.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쉽게, 더 저렴하게 집을 지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공장에서 쇠못이 대량생산됐다. 기계 제재소가 생기면서 일반인도 쉽게 사용 가능한 가공 목재가 등장했다. 규격화된 목재와 쇠못을 사용해 집을 짓는 '경량목구조(Light Weigh Wood Framing)' 건축공법이 대중적으로 사용됐다.

시공 방법은 단순해졌고, 건축 기간도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 예전처럼 목수 장인의 수작업 기술도 필요 없게 됐다. 일반인들도 시공 방법만 배우면 규격화된 목재로 조립하듯 집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목조 건물이 미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된 이유다.

미국인들이 목조주택을 선호하는 이유
 
2019년 미국에서 지어진 주택의 90%가 목재 골조다.
▲ 목조골조 2019년 미국에서 지어진 주택의 90%가 목재 골조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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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유달리 나무로 만든 집을 선호하는 걸까?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경제성이다. 나무로 집을 지으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나무는 다른 건축자재보다 훨씬 저렴하다. 과거 1980년대와 90년대 목재 가격이 고공행진 할 때도 목재는 여전히 철강과 콘크리트보다 저렴했다. 북미에서 건축용 목재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보통 나무를 사용하면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것보다 공사 기간이 30% 이상 줄어든다. 전문인력과 장비도 목재로 집을 지으면 훨씬 적게 투입된다.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다. 인건비를 조금만 낮춰도 건축단가는 많이 내려간다. 일부 주에서는 콘크리트 등으로 지어진 집보다 목조주택에 대한 세금을 훨씬 적게 부과한다.

그다음으로 안정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 때문일까. 늑대의 입김에 맥없이 무너져 버렸던 둘째 돼지 집이 나무집이었다. 우리는 '목조 건물은 외부충격에 약하다'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목조주택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통상 콘크리트 구조 건물 평균 수명은 50년이지만, 목조주택 내구연한은 100년이다. 미국에서 50년 이상된 목조주택들이 즐비한 이유다. 최근에는 직교적층목재(CLT)라는 특수 제작된 목재를 사용해 고층 건물도 짓는다. 또한 난연·방염 목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건물에 불이 쉽게 붙지도 않는다.

가벼운 목조건물은 외부 충격에도 강하다. 건물은 중량이 무거울수록 더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설사 지진 등으로 목조주택이 무너져도 안에 있는 사람의 생존율은 콘크리트 건물보다 더 높다. 목조주택은 건물 안에서 공간을 만들면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재해가 잦은 지역에서는 나무로 집을 짓고 벽돌로 지하 대피소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미국인의 주거패턴이다. 미국인들은 이동이 잦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미국인은 평생 평균 약 12회 이상 이사를 한다. 2021년 미국에서 이사 한 사람은 2800만명에 달한다. 1950년대에는 지금보다 2배 많은 미국인들이 이동을 했다.

이동이 잦은 사람에게 목조주택은 안성맞춤이다. 나무로 만든 집은 인테리어와 수리하기도 편리하다. 나무를 베고 자르면서 자신의 취향대로 집 구조를 변경하기 쉽다. 셀프 홈리모델링 문화가 미국에서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주택을 굳이 비싼 암석이나 벽돌 등으로 공들여 지을 필요가 없다. 목조주택에 살면 언제든지 홀가분하게 두고 떠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목조주택도 단점이 있기 마련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목조주택은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간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집을 구매할때 한국과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인스펙션(Inspection) 절차다. 매수자는 전문가까지 고용해 집을 샅샅이 점검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흰개미(Termite)' 유무다.

흰개미에게 목조주택은 맛있는 먹이에 불과하다. 날카로운 이와 강한 턱으로 나무를 먹어 치운다. 대부분 목조주택에 사는 미국인에게 흰개미는 좀비보다 무서운 존재다. 흰개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비용은 주택 보험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또한, 흰개미에 공격당한 집은 은행에서 주택 융자(Mortgage) 승인도 받지 못한다. 미국에서 매년 흰개미로 인한 재산 피해액은 50억달러(약 6조 7000억원)에 달한다.

또 미국 집을 점검할 때 버섯도 자주 발견된다. 습하고 영양분만 있으면 어디서든 버섯은 나무에서 머리를 내민다. 미국에서 2년간 우리도 버섯과 한집에서 동고동락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 버섯이 자란다고 좋아했지만, 그럴 때마다 집주인의 주름살은 깊어져만 갔다.
 
습하고 영양분만 있으면 어디서든 버섯은 나무에서 머리를 내민다.
▲ 집에서 자라는 버섯 습하고 영양분만 있으면 어디서든 버섯은 나무에서 머리를 내민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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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생활하면서 궁금증 하나가 생겼다. 부자 동네에 가면 집들이 하나같이 대리석, 암석, 콘크리트 등으로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TV에서 미국 갑부, 연예인 대저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서 개츠비의 한마디 대사가 힌트가 됐다. "돈이면 돼. 알겠어?(Money Talks. You got it?)" 매일 밤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는 개츠비의 대저택도 역시 튼튼해보였다. 결국, 미국에서 목조주택의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의 재력만 있다면 건축자재의 선택 폭은 훨씬 넓어진다. 

태그:#미국, #목조주택, #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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