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바람의 조짐이 심상치 않더니, 비의 세기도 강했다. 앞집에 사는 아이는 휴업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다며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태풍 '힌남노'가 스치고 지난 자리엔 생채기만 남았다. 예감을 하고 나름대로 대비를 했지만 불안하고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살아 비교적 그 영향을 덜 받는 나조차도 이렇게 걱정이 태산인데, 바닷가 쪽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에 사는 이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태풍의 경로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자연의 화난 모습을 대하는 것이 매번 이토록 어렵고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태풍만큼 광범위하게 우리의 삶을 일시에 초토화시켜버리는 것도 잘 없기에 그저 조금이라도 덜 피해를 입혔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생채기만 남았다.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생채기만 남았다. ⓒ pixabay

 
방송가에 몸을 담고 있다 보면 이렇게 크나큰 자연재해가 닥쳐올 때 일반인들보다 더욱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비가 얼마나 내릴 것인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은 어느 쪽으로 얼마만큼일지 예의 주시하면서 매뉴얼에 따라 방송을 만들게 된다. 

예보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다이지만, 자연이 항상성을 띠고 우리의 예측대로만 경로를 이동해 주는 것은 또 아니기에, 때로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변화의 추이를 지켜본 때도 많았다. 이럴 때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간절하게 손을 모으고 저마다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도 종종 목격되고는 했다. 나도 예외 없이 신에게 온전하게 바라곤 했다.

"지켜보고 계신다면,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 주소서"라고.

특히 우리나라에 올라오는 태풍의 경우, 야속하게도 추석 무렵에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았는데, 이와 관련해 돌아가신 모친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얘기 한 자락이 있다. 때는 1959년 추석, '사라'라는 이름의 태풍이 올라와 아주 쑥대밭을 만들었다고. 전쟁의 상흔이 채 정비되지도 않은 나라를 할퀴듯 지나간 그 태풍의 이름이 하필이면 예쁜 여인의 이름 같아서 왠지 더 원망스러웠다고도 말씀하셨었다.

그해 여름 오빠를 막 출산했던 엄마는, 아직 어린 아기를 안고 벌벌 떨며 사람을 잡아먹을 듯 포효하는 바람의 소리와 전에 보지 못한 비에 그저 마음만 졸일 뿐이었다고. 그 위세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던지 그 이후로도 종종 태풍이 예보되는 날이면 "암만 그래도 사라호 때보다는 덜할끼다"라고 자신만의 예측을 내놓기도 하셨었다.

태풍이 예보된 후, 사연 받았더니

어느 해인가 태풍이 예보된 후, 하필이면 내가 맡은 프로그램이 재난방송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프로그램이었다. 그 당시엔 비교적 태풍의 세기가 강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태풍의 세기가 아무리 강하지 않다고 한들, 왜 태풍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는가. 스튜디오 창밖의 가로수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비의 세기도 점점 강해지는 게 한눈에도 보였다.

"PD님, 방송 그대로 해도 될까요?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는데?"
"음... 아직 재난 방송하라는 지시가 없으니, 그냥 진행하죠. 대신에 오늘은 우리 선곡표 말고 청취자들 사연이랑 신청곡으로 갑시다."


사실, 자연재해 외에도 국가적 재난이나 그에 상응하는 중대 사안이 생겨날 때면 시끌벅적한 방송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방송가의 암묵적 약속이긴 했다. 낮동안의 방송엔 그날그날 분위기에 최대한 맞추기는 해도, 될 수 있으면 밝고 맑은 노래들을 선곡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선곡의 목표지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태풍이 예보된 시점부터는 그럴 수가 없다. 마음이 심란한데 노래라고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 않은가.

"오늘은 여러분의 신청곡으로 방송을 꾸며 나갈까 합니다. 마음을 담은 신청곡과 사연, 지금부터 보내주세요."

DJ의 안내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연을 받는 창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하우스 농사를 짓고 계신데, 이번 태풍으로 또 피해를 입으실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친구가 동해 쪽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데, 혹시 업장에 파도라도 덮치지는 않을지... 고민입니다."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수록된 이지연 앨범 娟.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수록된 이지연 앨범 娟. ⓒ (사)한국음반산업협회

 

지역 특성상, 주로 본가에서 농사를 짓거나 동해안 쪽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가족이나 친지를 두신 분들이 제법 많았기에 비교적 방재시설이 잘 된 대도시에 사는 이들의 염려가 댓글 창을 빼곡하게 채우곤 했다. 인력으로 맞설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선 그저 목놓아 울고 원망하는 일만 반복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그들의 사연에서 읽히곤 했다.

그렇게 보내지는 사연 중에서도 태풍이 예보된 날이면 유독 가장 많이 신청되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 다오'였다.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우리가 무서워하는 태풍에 근접한 그 바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지만 대중들이 또 그걸 모를 리도 없겠지만, 이 노래를 신청하고 또 신청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노래 제목에 있었다. '바람아 멈추어 다오'. 사람들은 노래 제목 그대로 강력한 기적의 주문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해가 뜨면 찾아올까
바람 불면 떠날 사람인데
행여 한번 돌아보면
그대 역시 외면하고 있네
바람아 멈추어 다오
세월 가면 잊혀질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걸
붙잡아도 소용없어
그대는 왜 멀어져 가나
바람아 멈추어다오
난 몰라 하하
바람아 아아 멈추어다오
바람아 멈추어다오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
그리우면 난 어떡하나
부질없는 내 마음에
바보같이 눈물만 흐르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이지연 바람아 멈추어 다오 가사  


거대한 힘을 과시하는 자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무력한 걸 알면서도 마음을 모아 기원하고 이렇게 한낱 '노래의 제목'으로 라도 힘을 모아 맞서 보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선한 마음들이 하나, 둘씩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절대자에게 가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경험상 거기에 기대는 것이 허망한 일임을 알면서도, 매년 그렇게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가 시작되는 날이면 저마다의 세부 사연은 달랐지만 많은 이들의 신청곡은 '바람아 멈추어다오'에서 접점을 이루곤 했다.

물론, 노래에서처럼 바람이 불면 떠나가게 될 연인을 붙잡지 못해 부질없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바람이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과, 삶의 터전을 어지럽힐 무시무시한 태풍이 약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애써 다해 보고픈 마음, 노래로라도 방파제를 쌓고 방풍림을 심어 모두들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은 귀하디 귀할 수밖에.

자연의 가혹한 섭리 앞에서 또 한 번 무릎을 꿇게 되더라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이 상황을 견뎌내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다시 한번 노래 '바람아 멈추어 다오'를 타고 공기 중으로 크게 울려 퍼지곤 했다.

태풍 '힌남노'에 걱정이던 요 며칠, 어느 라디오 채널에선가는 이 노래가 선곡돼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사람들의 염원처럼 별다른 피해 없이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게 된다면 이 또한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혜원 시민기자의 개인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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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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