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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에 정파적 잣대를 들이대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가 예견한대로 시민사회에 대한 압박을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 국무총리실은 2020년 5월부터 시행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을 폐지하기 위해 정부부처와 지자체에 공문을 회람하고 있는 중이다. 시민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통령령을 폐지하려하니 검토의견을 달라는 것이다. 지난달 이미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시민사회활성화 기본계획에 따른 3대전략 설명
▲ 시민사회 활성화 기본계획(2022~2024) 시민사회활성화 기본계획에 따른 3대전략 설명
ⓒ 시민사회활성화계본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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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이 만들어지기 이전 단계에서 대통령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재의 시민사회지원규정은, 시민사회의 활력과 변화를 통해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실현하기 위해 ①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생태계 기반 조성 ② 공익활동 역량 강화와 성장 지원 ③ 민관 협력과 사회적 연대 강화등을 목표로 시행되고 있던 중이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도 서울, 경남, 충남, 성남 등 조례를 만들어서 유사한 취지의 시민사회 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정부가 지원해온 이들 시민사회 단체들이 '정치권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해서 친민주당 조직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이미 작년 4월 보선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서도 나타났다. 오세훈 시장은 시민사회 지원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등을 포함해서 그동안 서울시가 시민사회와 민관협력사업으로 추진해온 사업 전반에 걸쳐 특정감사를 실시했다. 또한 현재 사회적 기업과 혁신단체들이 입주한 공간인 혁신파크도 2023년 계약이 종료되면 업무시설과 쇼핑몰이 들어선 50층 랜드마크 빌딩으로 재개발할 예정이다.

공공과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라는 삼각축 바로세우기

그런데 새로 집권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비영리 시민단체들을 축으로 한 시민사회에 대해 도대체 왜 이토록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전국적 조직을 가진 단체에서 동네 풀뿌리 모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갖는 시민사회의 본래 취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저명한 시민사회연구자 마이클 에드워즈는 이렇게 강조한다.

"사회가 집합적 행위를 가장 광범위한 자원에서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국가가 강제력으로 규칙 및 법규를 실행하는 방법, 시장에서 내려진 개별적 결정들의 비의도적인 결과들을 수용하는 방법, 그리고 자발적 행위, 토론, 합의 속에서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기제들을 통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다시 해석하면 중앙정부나 지자체를 포함한 공적 영역, 사기업들의 주요 경제활동 무대가 되는 시장 영역, 그리고 이와는 독립적인 목적과 활동 메커니즘을 갖는 시민사회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민사회 조직인 비영리 민간단체가 시장의 기업과 협업을 할 수도 있고 공공이 제안하는 민관협력사업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기업 역시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서로 별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서로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했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은 이 세 영역이 균형을 맞춰야만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시장이 약하면 사회가 비생산적이 되고, 커뮤니티가 약하면 사회가 패거리자본주의로 향하게 되며, 국가가 약하면 사회가 차갑게 변할 것이다. 반대로 시장이 과도하면 사회의 형평성이 무너지고, 커뮤니티가 과하면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며, 국가가 과하면 권위주의로 흐르게 될 것이다."

시민사회나 커뮤니티는 자신만의 독립된 에너지를 축적했는가?

에즈워드나 라잔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공과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커뮤니티 세 축이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오세훈 시장이나 윤석열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사회과학적 통찰과 역사적인 선례를 무시하고 아예 시민사회 영역을 무시해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자의적으로 정치 하위구조쯤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수용되기 어려운 사고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사회 입장에서도 단지 보수적 단체장이나 정부의 무지와 횡포를 비판만 하면 되는 것인지 성찰할 대목은 없을까?

시민사회도 공적 영역 - 시장 영역 – 시민사회 영역 사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립 근거를 뚜렷이 세우면서 한편에서 비판과 견제를, 다른 한편에서 협력을 해왔는가? 시장이 물질적 부, 즉 돈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공적 영역이 권력자원을 가지고 움직일 때, 시민사회와 커뮤니티는 시민/주민과의 호흡과 동의를 기본 에너지로 확보하면서 자신을 성장시켜왔는가?

분명히 지난 10여년 동안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운동과 사회적경제 운동, 그리고 도시재생운동 등이 아래로부터 참신하고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동네와 지역의 분위기를 바꾸고 시민사회의 신진 파워로 등장한 것은 시민사회 역사에서 주목할 변화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관협력이라는 이름아래 너무 쉽게 공적 영역의 지원에 기대 자체의 독립적인 기반과 에너지를 만드는 데 소홀하지는 않았는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역주민과 결합하는 방법
 
마을 만들기 환상 - 지역재생은 왜 이렇게까지 실패하는가, 기노시타 히토시(지은이)
 마을 만들기 환상 - 지역재생은 왜 이렇게까지 실패하는가, 기노시타 히토시(지은이)
ⓒ 더가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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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커뮤니티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고유한 에너지를 키워나가면서도 지역사업이나 민관협력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복기해보고 길을 찾아나가야 할 시기가 지금일지 모른다.

이 시점에서 이미 상당한 경험을 쌓아온 82년생 마을만들기 사업가 기노시타 히토시의 책 <마을 만들기 환상>-지역재생은 왜 이렇게 까지 실패하는가?를 함께 읽고 토론해보는 것이 좋은 매개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역자가 후기에서 지적한 대로 마을만들기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마을 활동가나 비영리 사업가, 또는 공무원들이 마을만들기와 관련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착각'들을 하나씩 파헤쳐간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실전과 컨설팅 경험에 기초해서 그런 편견이나 착각이 어디서 생겼는지,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저자만의 독특한 해법을 제시한다. 우선 그의 주장 하나를 인용해보자.
 
"처음부터 충분한 예산 확보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부족한 예산을 스스로 확보하는 승부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적극적 의지가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도전의 시작이다. 따라서 리더는 사업 아이디어 모색이나 예산확보가 아닌 좋은 인사에 주력해야 한다."

예산이나 사업아이디어 이전에 사람들, 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어쩌면 당연한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일을 추진하는 팀이 먼저 세팅되고 작은 일이라도 시도를 하고 신뢰를 만들면 돈이나 자원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당연한 원칙을 우리 사회는 어느 사이 순서를 거꾸로 인식해서  "사업계획이 그럴 듯 하면 예산이 배정되고 예산이 확보되어야 사람들이 모인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한편 그는 (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수도권 집중에 맞서 지방에서 마을을 일으키는 방안, 즉 지방소멸대책에 대해 일견 모순된 것 같은 새로운 견해도 제시한다. 그는 지방의 인구가 줄고 있으니 먼저 어떤 식으로든 예산을 투입해 인구를 유입시킴으로서, 마을을 살리자는 것은 인과관계가 잘못된 것이라 반박한다.

인구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결과여야 한다며 지방소멸대응 방안으로서 '인구론'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는 "인구론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오히려 인구가 아니라 지역투자가 먼저 일어나도록 하라고 요청한다.

이 대목에서 그가 사람이 아니라 돈이 먼저 필요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소멸위험 지자체가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따서 청년을 데려오고 외지인을 유인하는 식의 사람 데려오기 정책에 예산을 남용하지 말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인구감소가 되면 이제 지역은 끝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나라가 망해도 산천은 남는다는 의미까진 아닐지 모르지만 아무리 지자체가 경영이 기울어도 결과적으로 산천과 논밭, 바다는 계속 존재하며 미래를 향한 가능성 또한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즉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고 성장전략도 그릴 수 있다."
 
정권교체기에 기로에 선 마을공동체 운동
 
 
이런 식으로 그는 인구론 환상뿐 아니라 외지인 활용의 환상, 성공신화만 찾는 병, 청년 인생을 이용한다는 발상, 관광으로 외지인을 끌어들여 지역 활성화를 하겠다는 발상 등등의 문제점을 차례차례 해부하면서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기성세대 마을 활동가의 편견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비판한다.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지역 유력자가 되면 언제부터인가 '마을만들기 환상'에 갇혀 오히려 지역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정권이 교체되는 변화의 시기를 겪으면서 마을공동체 운동과 시민사회가 새로운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늘 그렇듯이 이런 상황에서 방어적인 싸움은 지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활동 경험을 되돌아보며 시민과 주민들에 더 신뢰받고 더 공감하는 시민사회 진화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많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책의 저자는 특히 시야를 넓히기 위해 마을 활동가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것을 촉구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생각과 시야를 넓혀 미래를 봐야할 시기인 것 같다.

200쪽의 길지 않은 분량에 번역도 깔끔하고 곳곳에 성의있는 역주가 있어 도움이 된다. 영어식 만연체 스타일보다는 일본책의 특징인 짧은 단락들을 이어나가는 방식이 지루함을 없애고 특히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돌려말하지 않는 저자의 스타일도 읽는 호흡에 보탬이 된다. 책을 덮어도 저자가 강조한 한 마디가 계속 남는다.

"우연한 성공은 있지만 우연한 실패는 없다."

마을 만들기 환상 - 지역재생은 왜 이렇게까지 실패하는가

기노시타 히토시 (지은이), 윤정구, 조희정 (옮긴이), 더가능연구소(2022)


태그:#시민사회, #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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