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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부지역의 지역화폐 카드 모습
 경기도 일부지역의 지역화폐 카드 모습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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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로 불려왔던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에 대한 국가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지역화폐로 인해 지역경제가 살아나 지방세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이 예산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완전히' 없애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국 각지의 높은 호응도와 그 분명한 정책효과를 고려할 때, 가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예산을 '0'으로 만들기 위해 공식적으로 들고나온 정부의 세 가지 논거다. 첫째, 지역화폐는 그 정책효과가 특정 지역에서만 한정돼 나타나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닌 지자체 고유의 사무로 규정하고 있는 점. 둘째, 제대로 된 연구분석과 실제 현장에 대한 발품을 판 조사도 없이, 지역화폐가 실질적으로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치부해버리고 있는 점. 셋째, 지역화폐는 어디까지나 코로나 국면에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한 '한시적인' 정책이었으니 소상공인들에 대한 코로나 여파가 점차 완화되고 있는 지금은 지역화폐를 더 이상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들은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지역이 처한 '국가 차원'의 위기에 대한 정부 문제의식의 빈곤을 반증한다.

지역화폐는 '백신'과 같다
 
애초,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지역화폐를 국가 차원의 정책대응으로 설정한 것은 서울시를 제외한 우리나라 각지의 소득이 서울로 유출되면서 지역경제가 피폐화됐고, 또 이로 인해 본격화된 지역 간 격차의 심화와 나라의 존망이 달린 이른바 '지역소멸' 현상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을 배경으로 한다.

즉 지역화폐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시민소득 및 기업수익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막아 쓰러져가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은 '지역소멸'과 '지역불균등발전'이라는 국가 차원의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지역화폐는 원래 소상공인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고 위태로운 우리나라 '지역'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었다. 이렇듯, 정책의 목적과 문제의식은 매우 타당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 동력들이 서울로 다 새어나가면서 초래된 지역경제의 침체와 지역소멸 그리고 그로 인한 나라 전체의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지역화폐 정책을 중앙정부는 외면해도 되는 지자체만의 사무로 간주했다. 어불성설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지역 살리기'를 위한 대응을 가장 중요한 '국가과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 지역의 경제 동력이 수도권으로 새어나가는 현상은 지자체가 감당할 수도 없는 '국가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다.

순기능을 간과할 것인가
 
정부가 내년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힌 8월 3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전통시장에 지역화폐 가맹점을 알리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2022.8.30
 정부가 내년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힌 8월 3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전통시장에 지역화폐 가맹점을 알리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2022.8.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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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장에 있는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지역화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쓸 수 없고 지역 내 소상공인들의 매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서, 지역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상공인 경제를 지켜내는 방패막 역할을 했다. 지역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증가시켰다.

또한 그 수익을 본사가 있는 서울 또는 수도권으로 유출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는 달리,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로 늘어난 수익은 고스란히 지역 안에서 돌고 또 돈다. 이는 우리나라 지역경제의 위기를 초래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2021년 경기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시민들이 지역화폐를 쓰기 위해 그 사용처를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전통시장 및 지역 내 소상공인 매장으로 변경할 의사가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2020년 분석에 의하면, 지역사랑상품권가맹점은 지역사랑상품권 도입 후 월평균 매출액이 87만5000원(3.4%) 증가했으나, 비가맹점은 8만6000원(0.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화폐는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늘려 지역상권을 활성화하고 지역경제 순환을 담보하는 데 기여한, 지역경제 관련 정책들 가운데 가시적인 효과를 보인, 몇 안 되는 정책이다. 특히, 지역화폐 정책은 비수도권 지역의 소득과 수익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 즉 '국가 차원'의 위기적 현상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데에,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여 지역경제 내 수요를 증대시키는 데에, 그리고 지역화폐 기반 부가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지역화폐는 코로나 대책을 위해 도입된 '한시적인' 정책이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래 정부(행정안전부)는 지역 화폐금융의 차원에서 '지역소멸' 현상과 '지역불균형발전'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자 지역화폐를 정책화했다. 이에 대한 국가예산은 코로나 국면에 돌입하기 전이었던 2019년부터 이미 지원되고 있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발행량을 보였던 인천광역시의 지역화폐 '인천e음'의 경우, 2019년에 국비예산 224억 원이 투입됐었다. 그래서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20년도 이전의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알아서 발행한 것이었고, 또 국비가 투입됐다 하더라도 소액에 불과했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과 논리는 사실과 다르다.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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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는 지역화폐를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 폄하했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전국 232개 지역의 시민들이 적극 사용하면서 그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지역들 안에서 연간 20조 원 이상의 소비가 일어나게 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한 일국 차원의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이자 지역살리기 정책이었다. 만약 세금만 축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이러한 성과를 보이진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지역화폐 정책을 세금으로 캐시백이나 뿌려대는 단순 재정사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지역공동체 강화를 통해 지역경제의 피폐화를 막고 나라의 존폐가 달린 '지역소멸'의 위기를 해소하는, 국가적 차원의 지역살리기 정책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 정책에 대한 국가예산의 전액 삭감 조치는 자칫 '지역'을 돌보지 않는 나라, 지역 활성화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정부로 오명이 씌워질 수 있는 사태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양준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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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양준호씨는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입니다. 저서로는 <지역화폐가 대안이다> <지역 회복, 협동과 연대의 경제에서 찾다> 등이 있습니다.


태그:#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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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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