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표류단지>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표류단지> 포스터. ⓒ 넷플릭스

 
초등학교 6학년생 코스케, 나츠메는 절친 사이다. 그런데 예전에 같이 산 적이 있어 남매 사이 같기도 하다. 둘도 그런 애매모호한 감정을 느끼는지 만나기만 하면 툴툴 거린다. 그들이 사는 동네에 수십 년 된 아파트가 있는데, 코스케와 나츠메 그리고 코스케의 할아버지가 함께 기거했었다. 이젠 너무 오래 되어서 재건축이 확정되었고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곳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코스케와 친구들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확인하러 오래된 아파트로 향한다. 나츠메가 숨어 있었다. 자신을 손주처럼 보살펴 줬던 코스케의 할아버지를 잊지 못해서 가끔 찾아왔던 것이다. 일행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닥거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친구들도 합세한다. 와중에 코스케와 나츠메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였는데 나츠메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때 폭우가 내리더니 마을이 사라져 버리고 망망대해에 아파트 한 동만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일행은 먹을 걸 찾고 잠잘 곳을 찾으면서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다른 건물을 찾는다. 어찌저찌 먹고 자고 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도무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과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던 와중에 유령을 만나는데, 또래 인간 모습을 한 이 아파트의 지박령이었다. 나츠메의 친구라고 하는데,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알고 있을까? 어떻게 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철거 직전 아파트 단지
 
 <표류단지>의 한 장면.

<표류단지>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표류단지>는 <펭귄 하이웨이>로 유명세를 떨친 전도유망한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스튜디오 콜로리도'의 대표 크리에이터이기도 한데, 이 회사에서 <펭귄 하이웨이>와 <울고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같은 괜찮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표류단지>는 스튜디오 콜로리도가 내놓은 세 번째 작품이다. 

<표류단지>의 설정은 매우 신선하다. 곧 철거될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생들이 몰래 숨어들었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이유로 폭우가 내리더니 마을이 사라지고 망망대해에 둥둥 떠다닌다는 설정이라니. 여러 가지가 함의되어 있는 설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래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일본이 맞닥뜨린 상황과 맞물려 있기도 하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감정선도 있으니 잘 살펴보면 좋을 듯싶다. 겉으론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영화인 것 같지만 상당히 심오한 부분이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라면, 당연히 천천히 가라앉는 섬나라 일본의 현재를 형상화시켜 놓은 듯하다. 과거의 영광에 파묻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함께. 그리고 곧 철거되어 사라질 아파트에 어린 시절의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했던 기억과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니, 잊히고 사라지고 결국 떠나 보낼 수밖에 없는 것들을 향한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옛 영광에 사로잡힌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 경제는 1960년대 이래 30년간 비정상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미국에 이은 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경제에 발맞춰 사회 전반적인 수준이 상승한 건 물론이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일명 '잃어버린 10년',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까지 와 버린 실정이다.

그러니 일본은 비단 서서히 가라앉는 영토뿐만 아니라 급격히 가라앉았다가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라 전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표류단지>가 직설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며 언제 가라앉을지 모를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처연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세계 최대의 고령화 사회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옛 영광의 시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밖에 없을 텐데, <표류단지>의 주인공들이 오롯이 초등학교 6학년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으로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옛것 그러니까 옛 영광에 사로잡힌 향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표류단지>에 나오는 아파트 단지의 지박령 '놋포'가 비록 초등학교 6학년 또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 오래되고 오래된 유령이라는 점을 비춰 볼 때, 겉으로만 젊은 세대를 위하며 그들이야말로 미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속 깊이 진실로 젊은 세대를 기회의 장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일본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
 
 <표류단지>의 한 장면.

<표류단지>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한편 <표류단지>를 보다 있는 그대로, 즉 영화적으로 바라보자면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코스케와 나츠메 등은 보다 훨씬 어렸을 때 곧 철거될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다. 그곳엔 그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어린 시절 따뜻함과 포근함의 근원이었던 돌아가신 코스케 할아버지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가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걸 당연지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좋았던 옛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미래와 과거의 균형을 맞추면 좋겠지만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표류단지>는 철거되어 사라질 아파트를 중심에 두고 그곳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아파트와 함께 사라질 어린 시절에 초점을 맞췄다. 그 자체로 신선하고 비(非)논란적인 발상이자 누구나의 보편적인 사연과 기억을 끄집어 내는 매개체로 작동할 것 같다.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던 고향의 동네를 종종 찾아가 보면 그대로인 듯 달라진 풍경에 흠칫하며 뭔지 모를 감정에 휘말리곤 한다. 내가 살았던 집은 그대로일망정 동네는 바뀌고 있고 특히 철거될 운명에 처한 집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전부 새롭게 태어날 텐데, 내가 뛰어놀고 살았던 동네와 집이 더 좋아진다는 의미겠지만 어린 시절이 사라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표류단지>의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미래가 기대되면서도 과거가 그리운 복잡미묘한 감정 말이다. 

<표류단지>는 여러모로 수작의 반열에 위치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인지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인지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는 건 사실이다. 만화는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 감상하곤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명명백백할 것 같다. 그 덕분에 여러 해석을 덧붙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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