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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8일- 5월12일까지 46일에 걸쳐 산티아고 순례길 중 Via de la Plata를 걸은 체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연재합니다.[기자말]
'22년 5월 2일 까미노 36일차
lubian->a gudina 23.9km  
꽃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순례자들을 반겨주던 붉은꽃. 아침의 아름다운 풍경때문에 걷기가 즐거워진다.
▲ 아침 꽃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순례자들을 반겨주던 붉은꽃. 아침의 아름다운 풍경때문에 걷기가 즐거워진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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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같이 걸었던 순례자들은 까미노가 처음인 나에 비해 정보에 밝은 듯했다. 예를 들면 숙소에 대한 것이나 길의 상태나 경로 등에 대해서 말이다. 순례자들 모두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via de la plata'에 나처럼 처음 온 사람은 매우 드문 것 같긴 했다. 그래서 까미노 초보자인 나는 그들을 믿고 따라 걷는다.
 
지름길인 듯하여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 올라갔다. 다행히 디딤돌을 잘 디뎌 물에 빠지지 않고 잘 건넜다.
▲ 계곡길 지름길인 듯하여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 올라갔다. 다행히 디딤돌을 잘 디뎌 물에 빠지지 않고 잘 건넜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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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걷는 이 길은 내가 가진 지도엔 나오지 않지만 초창기의 순례자들이 걸었다던 길인 듯했다. 제법 경사도가 있는 가파른 계곡길이다. 계곡엔 물이 흐르고 길의 중간 중간에 놓인 디딤돌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러나 디딤돌 위에까지 물로 덮힌 곳도 많아 까치발을 들고 걷는다. 신발을 적시지 않으려니 자연히 긴장하며 걷게 된다. 디딤돌을 찾고 등산 스틱을 짚어서 중심을 잡으며 왼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다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격이 밝고 유쾌했다.
▲ 까를라 성격이 밝고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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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전에 대화를 하며 알게 된 네덜란드에서 온 까를라는 치마를 입고도 등산 스틱이 없이 잘 걷는다. 난 스틱이 없었으면 여러 번 물에 빠졌을 것 같은데. 스틱을 가져온 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물이 많은 계곡길이 끝나면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길 옆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붉은 색 꽃이 만발했다. 붉은 색 꽃은 아침 햇볕을 받아 더 곱게 빛난다. 까를라는 내리막길은 좋은데 오르막길은 싫어한다며 나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앞세운다.
 
왼쪽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성당까지의 길이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 표지판에는 갈리시아의 주기가 새겨져 있고 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가 함께 새겨져 있다
▲ 갈리시아 지방의 이정표 왼쪽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성당까지의 길이 표시되어 있고 오른쪽 표지판에는 갈리시아의 주기가 새겨져 있고 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가 함께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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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마루에 올라서니 갈리시아 지방임을 나타내는 이정표가 보인다. 갈리시아는 스페인 서북쪽지역으로 우리의 목적지인 '콤포스텔라 데 산티아고' 성당이 있는 곳이다. 목적지에 한층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 246km이상을 더 가야 한다고 씌어 있긴 하지만. 왠지 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까를라는 어찌나 빠르게 가던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걸어서 보이질 않았다. 좀 더 걸어가니 길 가에 바르가 있었다. 시간은 아직 점심 전이지만 무언가를 마시며 지친 다리도 쉴 겸 바르에 들렀다. 까를라는 언제 왔는지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더운데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 되는거 아니냐고. 그러나 그녀는 맥주는 12시 이후에나 마신다고 했다. 땀을 많이 흘린 나는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타파스 한 접시를 주문했다. 그리고 까를라에게도 타파스를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그녀는 맛있다며 12시 이전엔 안 마신다던 맥주를 타파스와 같이 주문했다. 안드레이까지 만나 셋이서 좀 더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멋진 장소가 나올 때마다 셀피를 찍던 안드레이
▲ 안드레이 멋진 장소가 나올 때마다 셀피를 찍던 안드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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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생  또는  다년생  식물로 연못, 습한 도랑의 젖은 진흙에서 자란다고 한다
▲ Thread-leaved Water-crowfoot(실잎 물까마귀꽃) 1년생 또는 다년생 식물로 연못, 습한 도랑의 젖은 진흙에서 자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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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 보이자 안드레이는 성당 앞에서 셀피를 찍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셀피 찍는 것을 보고 낯설어 하던 안드레이였다. 그런데 그도 어느새 셀피 찍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멋진 장소가 나올 때마다 셀피를 찍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아티스트라 그런지 사진도 잘 찍지만 셀피 포즈도 자연스럽고 멋있었다. 내가 그의 사진을 보고 표정이 마치 디카프리오같다고 했더니 멋쩍게 웃으면서도 좋아했다. 그 이후로는 그를 안드레이라는 이름대신 세미 디카프리오라고 불렀다.

안드레이랑 같이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와 친해진 이후로 저녁 식사때 와인 한 병을 주문해 같이 마시곤 했었다. 그는 와인을 같이 마시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함께 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듯 했다.

그런데 어제는 와인을 함께 할 친구가 없어서 좀 서운했던 모양이다. 어제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안드레이와 저녁을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좀 나아진 나는 오늘은 같이 마시자고 약속을 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인 구디냐에 도착했다.

지도 어플에 표시된 대로 알베르게를 찾아 갔다. 한 눈에 봐도 순례자임을 짐작했는지 마을 사람인 듯한 사람이 알베르게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며 옮겨진 장소를 친절하게 알려 준다. 아마도 어플이 업데이트가 아직 안되어 있었나보다.

마을사람이 알려준 대로 걸어갔다.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바르의 야외좌석에 까를라가 앉아 있다. 그녀는 이미 체크인을 하고 나와서 쉬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를 보더니 지금까지 묵었던 알베르게 중에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얼른 가보라고 권한다.
 
2021년에 문을 연 알베르게로 깨끗했고 수용인원도 예전 알베르게에 비해 맣을 정도로 컸다.
▲ 구디냐 알베르게  2021년에 문을 연 알베르게로 깨끗했고 수용인원도 예전 알베르게에 비해 맣을 정도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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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는 2021년에 개방한 새 건물로 깨끗하고 침실 외에 응접실도 널찍했고 장식도 단순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였다. 그리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via de la plata'에 있는 대부분의 알베르게에는 건조기뿐만 아니라 세탁기가 거의 없어 손으로 세탁을 해야 했다.

오랜만에 세탁기는 물론이고 건조기까지 갖춰진 알베르게를 만났다. 빨래를 끝내서 뽀송뽀송하게 나온 옷을 만지는 촉감이 좋았다. 빨래를 끝낸 안드레이의 기분은 날아갈 듯해보였다. 친구와 나 안드레이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까를라까지 넷이서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네덜란드에서 온 까를라는 심리학자이며 사람을 좋아하고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이야기도 잘하고 성격도 쾌활해 보였다. 그녀는 같이 걸으며 본 우리에 대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성격이 급한 내 친구는 대화를 할 때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을 본 그녀는 친구의 말투를 따라하는 성대모사까지 해서 웃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에게는 신기하게 보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안드레이가 셀피를 찍기 위해 카메라의 타이머를 10초에 맞추어놓고 정해둔 장소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놀랐다고 했다.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안드레이를 보고는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도와주려고 물었단다. 그런데 잠시 후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의 찰칵 소리가 나는 순간 셀피를 찍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우린 다같이 웃었다. 안드레이의 뛰어가는 모습과 까를라의 놀란 표정이 상상이 되었다. 내가 까미노를 걷는 동안 보았던 서양인들은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은 아닌 것 같고 특히 셀피 찍는 사람들은 더욱 적었던 탓에 생겨난 일화인 듯 했다.
 
갈리시아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 까미노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 맥주 갈리시아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 까미노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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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각자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며 재밌어했다. 똑같은 길을 걸었는데 찍은 사진은 각기 다르다. 같은 길을 걷지만 보는 것이 다르고, 같은 것을 보면서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친구의 다양한 셀피 포즈를 보면서 서로 닮아가기도 한다. 까미노는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일정이 거의 끝나가는데 까미노 걷기는 점점 재미있어지고 사람들이 좋아진다. 내일은 지금까지 걸어보지 않았던 장장 34.5km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단단히 각오해야겠다.

태그:#까미노, #갈리시아, # VIA DE LA PLATA, #CARLA, #AND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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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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