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은 4.3 문제를 다룬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였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해 14회 영화제에서 또 한 편의 완성도 높은 4.3 다큐가 등장했고, 9월 30일 폐막식에서 특별상인 '용감한 기러기' 상을 수상했다. 한국경쟁부문에 출품됐던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가 그 주인공이다.

김경만 감독은 2000년 단편 영화 작업을 시작으로 <하지 말아야 될 것들>, <시간의 소멸>, <미국의 바람과 불>, <지나가는 사람들> 등 다수의 장단편 다큐들을 제작해 왔다. 이후 제주4.3에 관심을 갖고 2016년부터 <돌들이 말할 때까지>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DMZ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기까지 6년의 세월히 흐른 셈이다.

그 녹록지 않았을 시간과의 싸움은 제주4.3 수형인을 다룬 첫 번째 장편영화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4.3 수형인들은 제주4.3 발생 후 불법적인 군사 재판, 일반 재판을 받고 전국의 형무소에 수감됐던 이들이다. 2018년 70주년 이후 4.3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고 4.3 특별법 개정 운동 등 명예회복 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직권재심 등을 통해 이들에 4.3 수형인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이뤄지고 있다.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 이미지.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 이미지. ⓒ dmz영화제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 피해자들 중 양농옥·박순석·박춘옥·김묘생·송순희 5인의 할머니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김경만 감독이 구성한 영상 서사를 결합시킨 형식을 취한다. 촬영은 2019년까지 이어졌고, 제주4.3 도민연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 사이 직권재심 재판 등 긍정적인 소식이 들어왔고, 그 모습 또한 영화에 담겼다.

인터뷰 자체는 도민연대의 '수형인 조사사업 촬영'이었다는 김경만 감독은 "재판에 도움이 되길 희망했고, 제가 재판에 도움이 되질 못했지만 재판은 재판대로 좋은 결과가 나와서 너무 다행이었다"며 "그를 통해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작업이 이어지면서 다큐의 내용까지 변화를 준 경우라 할 수 있다. 이후 또 한 편의 4.3 다큐를 준비 중이라는 김 감독은 4.3 영화를 만든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나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차피 이게 다 연결돼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역사라든지 실제 세계를 사람들이 알아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같이 연결돼서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다음은 김경만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김경만 감독.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김경만 감독. ⓒ dmz영화제

 
- 4.3 수형인의 존재 언제 처음 알게 됐나.
"저도 잘 몰랐는데 2016년 4.3 도민연대 양동윤 대표 먼저 뵙고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부터 4.3 중에서도 수형인 얘기로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4.3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책 <4.3은 말한다>를 읽었을 때라고 할 수 있지만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다."

- 전작 <미국의 바람과 불>에서도 한반도에 끼친 미국의 영향에 대해 천착했었다. 4.3에 대한 관심도 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단지 미국책임론 때문만이 아니라, (4.3은) 남한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 이걸 모르고 있다는 것, 그 상태 자체가 남한의 정체성인 거다. 어떻게 이걸 감춰왔을 수가 있나. 엄청 억압적이었다는 얘기잖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학살이 많이 있었고, 그리스 같은 경우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억압적이어서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살 수 없었던 거 같다. 말이라도 한 번 해야지 살 수 있는데 말을 못하니까. 너무 극악한 거다."

- 영화를 보다 보면 인터뷰 위주가 아니라 영상으로 구성한 이야기에 진술 장면이 삽입된 것처럼 느껴진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인터뷰가 아니라 면접조사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상황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인터뷰는 말 중심이 되는데 면접조사 장면은 말뿐만 아니라 할머니들 얼굴, 표정, 당시 분위기, 선생님들과의 대화 모두 너무 중요한 거다. 인터뷰처럼 구도를 잡았다가 대화처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려웠다(웃음). 처음 만나는 사람, 장소인 데다 빛도 계속 달라져서 10분 만에 결정하는 게 어렵더라."

- 여성 인터뷰이만 5명이다. 
"구성을 그렇게 집중했다. 할아버지들이 나오는 영화는 또 다른 영화로 할 생각이고. 당시 여성의 경험을 통해 4.3이 어떤 일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거다. 사실 면접조사 당시엔 반도 이해를 못했다. 언어 때문에. 나중에 제주어를 묻고 찾고 반복해서 들을 때 마음에 돌덩이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너무 무거웠다. 반복해서 들으면 저도 사람인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직접 겪은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 입장에서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 이미지.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 이미지. ⓒ dmz영화제

 
4.3 수형인 피해자를 그린 첫번째 다큐 

- 4.3 피해자 증언집은 많다. 하지만 90세 넘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영상으로 접하는 일은 또 다른 무게로 느껴진다. 현재성을 띠는 게 영화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증언들은 잘못하면 나열로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걸 집중해서 어떤 관점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계속 몇 십년 동안 해야 할 일이다."

- 면접 조사 말고 자연 등 다른 장면들도 굉장히 다채롭더라. 고심을 많이 했을 거 같다. 전부 4.3 유적지로 채운 것도 아니고.
"자연을 고르는 게 엄청 어렵더라. 맞는 걸 찾아서 촬영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유적지를 보여주는 게 부적당한 느낌도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푯말이 있고, 비석이 있고, 유적지라는 걸 말해주는 글귀는 있지만 4.3 분위기가 없는 게 태반이었다. 송순희 할머니 말씀처럼 너무 개발이 돼서 전혀 어딘지 알 수 없는 거다."

- '잃어버린 마을'로 유명한 곤을동도 찍었던데.
"거긴 실제로 그 장소다. 박순석 할머니가 공부했던 장소고, 4.3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잃어버린 마을이다. 또 계절과 겨울의 분위기가 제가 찾는 모습이기도 했다. 모든 게 딱 맞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런 고심은 영화 만드는 사람은 다 해야 하는 거 같다."

- 인터뷰이가 훨씬 많았을 텐데, 이 5명을 고른 데는 어떤 원칙이 작용했을 것 같다.
"다섯 분을 골랐고 주조연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비중이 고르길 원했다. 한 분 한 분 최소한 개인성이 부각될 정도로 개인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게 목표였다. 각 5명의 이야기가 연결돼야 하면서 색깔과 톤, 4.3에 대한 생각도 차이가 있어야 했다. 부족하지만 4.3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사실 더 담고 싶은 이야기나 피해자 분들도 많았는데 그러려면 영화를 연작으로 더 많이 만들어야 하니까 (어려웠다)."

- 왜 양농옥·박순석·박춘옥·김묘생·송순희 다섯 분의 할머니였나.
"양농옥 할머니는 자기 생각이 굉장히 명확한 분이었다. 아버지가 총살 당한 일도 무겁고, 4.3이 이런 일이야 라고 말해주시는 느낌이고 생각도 뚜렷하시고 주체적인 그런 부분이 좋았다.

박순석 할머니 같은 경우 산에도 올라간 분이라 꼭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로당 이야기를 누가 해주겠나. 반역자, 죄인 취급을 하는데. 그게 전혀 죄될 게 없고 죄될 일이 아니잖나. 남로당에 가입했던 사람들 중 다수는 그 불의에 저항하고 싶었던 사람들인데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 억울한 사람이 많이 죽은 것도 사실이다. 분단을 반대한 건 전쟁을 반대하는 거기 때문에 그 입장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분단이 되면 안 되는 거였다. 분단 때문에 전쟁이 난 거고. 그런 활동 얘기를 해주셔서 좋았다.

박춘옥 할머니는 양농옥 할머니처럼 일본에서 살다 오셨는데 중산간에서 사셨다. (그래서) 중산간 얘기가 좀 더 담길 수 있었다. 박춘옥 할머니가 말하는 방식, 태도나 톤이나 목소리가 사실 좋았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자기 중심을 잡고 계셨다. 정신이나 생명을 잃어버린 게 아니고 자기 삶을 지킨 거다. 

김묘생 할머니 같은 경우도, 겁을 먹고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하는 것이 4.3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그 분이 총을 들고 '나를 왜 죽이려고 하느냐'라고 군인한테 항의했던 대목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송순희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이 이야기가 깊고 어두웠다. 그 분 이야기가 4.3이 무엇인지를 너무 뚜렷하게 보여주니까. 그 분 말씀도 너무 생생하잖나. 말씀을 정말 정확하게 하시는 분이었고."

- 송순희 할머니만 딸들 인터뷰를 따로 했다(영화 속 송순희 할머니는 4.3 당시 남편과 각기 다른 형무소에 잡혀갔다 제주로 돌아온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후 주변의 권유로 재가를 했지만 시간이 흘러 전남편은 살아 돌아왔다).
"송순희 할머니 가족들 이야기를 통해 그분이 겪은 일이 과걸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더라. 그 분들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남을 수밖에 없잖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4.3도, 역사도 추상적인 게 아니다 

- 도민연대나 도와주신 분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제가 필요로 하는 건 다 도와주셨다. 작업에 대해선 전적으로 자유가 있었던 거고. 가편집 본도 보여드리고 허락 받았다. 근데 시간이 지나도 영화가 안 나오니까 속이 터지셨을 거다. 제 입장에서도 미안했다. 5명으로 나눠서 작업하는 걸 더 빨리 결단을 내렸어야 했는데. 욕심을 못 버렸던 거 같다. 하나의 큰 대하 드라마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건데 그게 불가능했다. 그걸 뒤늦게 깨달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여러 수형인들도 나오고 한국전쟁도 나오는 기획을 했었는데 하다보니 말도 안 되는 구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단을 빨리 했으면 더 빨리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 된 것도 다 운명인 거다."

- 2018년 70주년 이후 4.3에 대한 인식들이 바뀌고 있다. 나름 감상이 있을 텐데.
"몇 년만에 4.3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영상도 많이 나오고 사람들도 많이 알더라. 변화의 시작인거다. 근데 또 정권이 바뀌니까 거꾸로 가려고 한다."

- 수형인 재판도 명예회복 차원에서 큰 진전으로 평가받는다. 
"굉장히 잘됐다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편했다. '이 영화가 빨리 완성이 되지 않아도 일이 잘 진전되는구나' 생각했다. 너무 감사했다."

- 제주 4.3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인식의 전환이 온다면 현대사의 많은 갈등들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지금도 빨갱이니 멸공이니 운운하지 않나. 근본적인 인식은 바뀐 게 없는 거 같다. 아직도 진영주의 논리 외에는 생각을 안 하는 거고. 사실 선생님들도 이렇게 잘 풀리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 재심 시작했을때만 해도. 해 보니까 굉장히 잘풀린거다."

- 재차 강조하지만, 4.3 수형인을 소재로 삼은 첫번째 다큐 아닌가 싶다.
"그런 거 같다. 장단편 통틀어서 첫 번째가 아닐까 싶다. 수형인 이야기를 통해서 4.3 당시 국가가 자행한 일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 자체는 첫 번째 다룬 영화고, 제가 북치고 장구치고 했다고는 하지만 정말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작업이다. 도민연대 분들이 없으셨다면 나올 수 없는 영화였다."

- 일반 관객들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어떻게 봐주길 바라나.
"4.3을 몰라도 영화를 보면 4.3에 대해서 짐작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4.3이 어떤 일인지 원하는 분들이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후 개봉 준비는 물론이고 지역 상영회를 계획하고 계신다. 일단은 제주부터. 개봉 포함해서 상영이 최종 목표고, 보여야 의미가 있으니까. 다 찾아가서 있는 방법 없는 방법 동원해서 상영을 해야겠지."

-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역사가 결국 추상적인 게 아니다, 미래를 위해 굉장히 필요한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 인식은 과거로부터 만들어지니까 거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성을 하기 위해선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하고, 반성을 하지 못하면 계속 똑같은 생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빨갱이니 멸공이니 계속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거다. 한심한 일이지. 언제까지 멸공이니 빨갱이란 말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돌들이말할때까지 김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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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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