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는 지난 몇 년간 성적이 곤두박질 치며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다. 수베로 감독이 취임하며 리빌딩을 위해 두 손을 걷어 부쳤고 2022년은 기대 속에 한 해를 맞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한화는 일찌감치 2년 연속 꼴지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다음 년도에 좋은 유망주를 선점하기 위해 일부러 이번 시즌을 망쳐버리는 '탱킹'이라는 말이 있다. 탱킹은 프로 리그에서 고의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탱킹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다음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함으로써 좋은 유망주를 선점하고자 함이다. 한화는 지난 몇 년간의 부진으로 좋은 자원들의 수집에 나섰다. 의도적인 탱킹은 아니었지만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를 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 연고 제도였던 1차 지명이 없어짐으로써 한화 입장에서는 전국을 대상으로 좋은 유망주를 뽑을 수 있어 더욱 유리해졌다 할 것이다. 

한화는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류현진 이후 고졸 최고 완성형 투수라 부르는 문동주를 뽑았고 올 해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160km도 던질 수 있다는 괴물 김서현을 뽑았다. 올 시즌 최하위로 내년에도 드래프트 최상위 순번인 한화는 또 한번의 대어를 품에 앉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 시즌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문동주는 출격 직전마다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피 속을 꿈틀거리는 천재성을 감출 수는 없었다. 부상 복귀 후 9월 들어 선발로 연속 2번 출장하여 각각 5이닝 1실점의 호투를 이어가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수확한 신인 대어는 문동주만이 아니었다. 2차 1라운드로 영입한 박준영도 선발로 기회를 노리고 있다. 박준영은 한화 연고지인 세광고 출신의 우완 정통파 자원이다. 신장이 191cm로 당당하고 고2 때 이미 150km 가까운 구속을 던졌을 정도로 시원시원한 투구가 강점이다. 박준영은 고3 시절 투구 밸런스가 깨어지면서 구속이 140km 초반까지 떨어지며 많은 투구를 소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고3 시절 무리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프로 생활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얼마전 키움의 홍원기 감독은 202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키움에 입단한 신인 선수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왜 자신이 프로에 낙점을 받았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여기 뽑힌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프로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프로에 와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장점마저 잃어 버리고 평범해 지는 선수들을 많이 본다. 장점을 키우는 선수가 되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한화의 박준영은 높은 타점에서 뿌리는 싱싱한 속구가 최고 매력이다. 일단 자신의 최고 장점인 포심의 위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2023년 10월 2일, 박준영은 5월 1군에 잠시 얼굴을 비춘 이래 오랜만에 1군 마운드를 밟았다. 그것도 선발로 말이다. 이미 한화의 순위가 결정되어 가능하면 신인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기 위한 배려가 깔려 있는 등판이기도 하지만 박준영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잘 알 수 있는 선발 등판이었다. 박준영은 1회와 2회를 퍼펙트하게 막았다. 한화는 또 한 명의 미래를 발굴한 듯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1회 박준영은 3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8개의 공을 던졌는데 모두 직구로 상대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장점인 140km 중반대의 싱싱한 직구로 기아(kia) 상위 타선을 잠재웠다. 2회에도 130km 초반대의 포크볼을 섞기는 했지만 1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을 자신 있는 직구로 승부했다. 완벽했던 박준영은 3회 무너졌다. 아마 1, 2회의 호투로 3회 너무 잘 던지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타자부터 잔뜩 힘이 들어간 투구로 4연속 볼을 던지며 무사 1루를 허용했다. 다음으로 박준영이 맞선 상대는 우리나라에서 직구 하나 만큼은 가장 잘 친다는 박동원이었다.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낸 박준영은 박동원과 가운데에 몰리는 직구로 승부를 걸어 왔고 박동원은 이를 놓치지 않고 안타로 연결 시키며 대량 득점의 교두보를 만들었다. 이후 박준영은 자멸하며 5실점을 허용했다. 

한화의 박준영은 오늘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생소한 투수였기에 기아(KIA)의 타선이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고 박준영의 작은 성과를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준영이 가진 장점을 더욱 갈고 닦는다면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점이 오늘의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박준영의 오늘 투구를 보면서 나는 한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쭉쭉빵빵한 대형 투수들이 한화의 마운드에 즐비한 모습을 보니 미래가 든든하다. 부처님이라고 불리는 한화팬을 위해서도 내년에는 한화가 가능성을 쏘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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