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행사는 약 160여 개에 달한다는 것이 영화계 중론이다. 그 영화제들은 영화제들끼리는 물론 갖가지 지역 축제와 경쟁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기 마련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라는 특수성이 더해졌다.

최근 성황리에 폐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또한 3년 만에 오프라인 개최됐다. 다소 둔감해질 수 있는 '감'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 같다. 진모영 부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면서 감각이 둔해지거나 잃었던 것들을 새로 발견하는 거 같다"며 "오프라인의 기억은 이미 3년 전에 휘발됐고, 손님들에게 뭘 더 해줘야 하나 감이 떨어진 것 같긴 하다"고 털어 놓기도했다. 

그만큼 특히 국내외 손님들을 대거 초대하는 8대 국제영화제는 오프라인 영화제 부활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앞서 개최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나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모두 올해 '칼을 갈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3년 만의 오프라인 영화제에 전력을 다했다는 평가다.

국내 3대 국제영화제의 맏형 격이자 아시아 최대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BIFF) 또한 그러한 부담이 상담했을 터.

지난달 7일 열린 제27회 BIFF 온라인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허문영 집행위원장 또한 이를 강조하듯 "3년 만의 질적·양적으로 완전한 정상화"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신만만한 선언을 뒷받침하듯 지금까지 공개된 상영작과 프로그램, 게스트들은 3년 만이란 표현이 무색할 만큼 역대급 진용을 갖췄다는 평가다. 5일(수)부터 14일(금)까지공식 초청작 71개국 242편,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111편을 포함해 총 353편이 상영되는 이번 제27회 BIFF의 작품과 산업을 아우르는 관전 포인트를 다섯 가지로 추려봤다.

완전한 정상화
 
제27회 BIFF, 영화팬 맞이 준비하는 자원봉자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인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개막식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제27회 BIFF, 영화팬 맞이 준비하는 자원봉자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인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개막식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유성호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와의 결별은 중단됐던 프로그램의 부활을 뜻한다. 이미 아시아 최대 영화축제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던 BIFF였던 만큼 아시아영화아카데미 등 아시아영화 지원프로그램, E-IP 마켓이 확장된 부산스토리 마켓 첫 출범 등이 눈에 띈다. 여기에 역대 최대․최다 규모의 '더 특별한 시네마 투게더'의 부활, 동네방네비프 등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인 커뮤니티비프 확대, 팬데믹 기간에 잠정 중단됐던 포럼 비프의 심층화 등이 핵심이다. 

개·폐막식을 비롯해 이벤트 및 파티 등 주요 부대행사가 정상적 운영되고, 해외 게스트 초청 및 영화제 배지 발급, 티켓 예매 등도 예년 기준을 회복할 예정이다. 또한 관객들을 위해 관객라운지도 재개하고 부산지역 시그니처 식음료(F&B) 등의 서비스도 확충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약화될 수밖에 없었던 페스티벌로서의 기능이 부활하는 셈이다.

직접 대면하는 스타 배우들의 향연

개인적으로, 부산 시민들이 가장 환영했던 BIFF 행사는 스타급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해운대 해변에서의 오픈 토크가 아닐까 싶다. 해운대 해변으로 나들이를 나온 일반 관객들이 자연스레 BIFF의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던 행사이기 때문. 영화제가 영화의전당으로 주무대를 옮겨간 만큼 해변에서의 행사 대신 역대급 스타들을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다수 마련됐다. 스타 배우들이야말로 부산 시민 및 일반 관객의 참여를 높이는 영화제의 얼굴들이 아닌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핸드 프린팅에 나서는 '월드 스타' 배우 양조위는 제27회 BIFF의 얼굴이다. 그가 직접 꼽은 대표작 6편을 상영하는 '양조위의 화양연화'라는 제목의 특별 프로그램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 및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진행되는 오픈토크가 마련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송강호․강동원․아이유 주연의 <브로커>를 비롯해 < 20세기 소녀 > 등 OTT 화제작 등이 포함된 오픈토크와 더불어 한지민․강동원․하정우․이영애가 연이어 관객과 만나는 '엑터스 하우스'도 주목된다. 커뮤니티비프 '마스터 톡'에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과 배우 이병헌, <화차>의 변영주 감독 등이 참여한다. 아울러 OTT 콘텐츠와 스타 배우들을 동시에 끌어안기 위한 BIFF의 노력도 계속된다.

드라마 시리즈를 엄선한 '온 스크린' 섹션을 강화하는 한편 아시아 전역의 우수한 TV·OTT·온라인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인 '아시아콘텐츠어워즈'(Asia Contents Awards, ACA)도 올해 4회를 맞았다. 배우 정해인과 2019 미스코리아 진 김세연이 사회를 맡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문기자>, <더핑크퐁컴퍼니> 등 아시아 화제작이 총출동하는 이번 시상식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국내외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커뮤니티비프의 활력

코로나19 이전이던 3년 전, BIFF를 찾았을 당시 남포동 일대를 다시 보게 됐다. 원도심 영화제의 중심 역할을 했던 남포동 일대가 완전히 부활해 있었다. 그만큼 시네필과 젊은 관객들을 흡수하려는 커뮤니티비프의 활력과 역동성은 대단했다.

"올해 5주년을 맞아 공격적으로 섭외하다 보니 역대급이 됐다"는 커뮤니티비프 담당 정미 프로그래머의 설명처럼(관련 기사 : "역대급"... 먹고 마시고 즐기는 부산영화제 필수 코스), 전체 상영작의 30% 가까운 113편을 상영하는 커뮤니티비프는 '스핀오프 페스티벌'이란 명명답게 영화의전당과 해운대가 소화하지 못하는 신선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다수 마련했다. BIFF가 정찬 코스라면 커뮤니티비프는 정성껏 차린 사이드 코스 요리랄까.

지난해 처음 선보여 선풍적 인기를 끈 동네방네비프는 해운대·남포동을 벗어나 도시 전체 16개 구·군에 스크린을 세우고 부산 전역 어디에서나 영화제를 즐기는 '생활밀착형 영화제'의 현실화다.

올해 따끈따끈한 영화제들의 신작과 함께 유지태, 이주실, 정수정, 이수경, 유이든, 신재휘 등 배우들이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선보였던 마을영화만들기프로젝트도 올해 대폭 확대, 주민들이 만든 8편의 단편영화 및 제작 과정 다큐멘터리들을 선보인다.

▲강서체육공원 ▲범어사 ▲일광해수욕장 ▲용호별빛공원 ▲북항친수공원 ▲차이나타운 ▲동래읍성광장 ▲부산시민공원 ▲백양근린공원 ▲다대포해변공원 ▲송도오션파크 ▲밀락더마켓 ▲온천천시민공원 ▲엑스스포츠광장 ▲유라리광장 ▲해운대 이벤트광장 등 부산시 총 17개 구․군에서 8일 간 관객들을 만난다. 스트릿 공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모든 상영작은 별도 신청 없이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명불허전 올해의 프로그램들
 
제27회 BIFF, 스타 맞이할 레드카펫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인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영화제 관계자들이 레드카펫을 설치하며 개막식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5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4일까지 세계 71개국 242편의 작품이 커뮤니티비프 111편, 동네방네비프 20여 편이 상영되며, 남포동 비프광장과 영화의전당에서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스페셜 토크, 아주담담, 핸드프린팅 등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 제27회 BIFF, 스타 맞이할 레드카펫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인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영화제 관계자들이 레드카펫을 설치하며 개막식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5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4일까지 세계 71개국 242편의 작품이 커뮤니티비프 111편, 동네방네비프 20여 편이 상영되며, 남포동 비프광장과 영화의전당에서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스페셜 토크, 아주담담, 핸드프린팅 등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 유성호

 
좋은 영화제의 특징은 어떤 영화를 골라도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를 위한 BIFF의 노력은 올해도 계속된다. 개막작은 <아야즈의 통곡>으로 2015년 BIFF 뉴 커런츠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이란 하디 모하게흐 감독의 신작 <바람의 향기>. 폐막작은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으로 각광을 받은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한 남자>로, 츠마부키 사토시와 안도 사쿠라가 주연을 맡았다.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와 프로그래머가 보고 싶은 영화를 다 끌어모았다"는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작품들이 마련됐다. 노아 바움백의 <화이트 노이즈>,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 프랑수와 오종<피터 본 칸트> 등 거장들의 신작뿐만 아니라 올해 미국 개봉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은 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화제작, 정지영 감독의 <소년들>을 위시한 한국영화의 다양한 확장도 확인할 수 있다 .

또 특별 기획프로그램으로 '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 10편, '21세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선' 10편, '왕조위의 화양연화' 6편과 함께 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다큐 <지석>과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 복원한 <낙동강>이 최초로 특별상영된다.

산업과 플랫폼을 위한 노력

확대와 연대. BIFF는 명실상부 아시아 영화와 콘텐츠의 허브 역할을 하는 최대 시장이요, 영화 교육과 협업의 산실이다. 우선 오는 8일(토)부터 11일(화)까지 부산벡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은 3년 만의 정상 개최로, 기존 E-IP마켓(Entertainment Intellectual Property Market)을 확장한 세계 최초의 스토리마켓 '부산스토리마켓'을 출범시킨다.

아시아영화펀드(ACF),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에서 명칭을 바꾼 'CHANEL X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아시아영화인들의 교류의 장인 플랫폼부산도 2년 만에 재개된다. 팬데믹 기간 유지됐던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은 올해 6개 상을 추가해 대폭 확대됐다. 산업과 영화인, 시네필과 부산 시민을 아우르려는 올해 BIFF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제27회부산국제영화제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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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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