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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열린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말이 논란에 휩싸였다. 이 말을 쓴 사람은 그 자리에 있던 김은혜 홍보수석. 그는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에게 이 문장이 적힌 메모를 건넸다. 이후 이 메모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며 논란이 일자, 두 사람은 '야당 의원을 향한 발언이 아니라 사적 대화의 필담일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결국 국감장에서 퇴장당했다.

고군분투하던 이들 겨누는 칼끝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10.30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10.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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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밤, 156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부상을 당한 참사가 이태원에서 일어났다. 정부를 향해 '국가는 없었다'며 안전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묻고 있던 자리, 대통령실의 두 수석이 국감을 대하는 태도는 참사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참사 이후의 정부 대응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깊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하니 경찰은 특수본을 구성해 수사에 들어갔다. '노마스크'로 맞이하는 첫 핼러윈 직전 주말에 10만 명이 넘게 모일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제대로 된 안전 예방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경찰, 참사 이전인 오후 6시 34분, 압사 위험을 알린 신고가 있었지만 미흡하게 대처한 경찰이 말이다. 

경찰의 '셀프 수사'에 대한 비판은 사그라들기보다 더 커지고 있다. 참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손을 떨며 브리핑했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여론이 최 서장의 입건에 분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참사의 원인을 찾는다더니, 참사를 예방할 의무가 있는 높은 자들이 아닌 참사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에게 '처벌'의 칼끝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뛰던 이들이 아니라, 국가가 참사 전후 국민 안전을 내팽개쳤다는 것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제출한 이태원 사고 관련 서울소방재난본부 대응일지, 이태원 호흡곤란 119신고 녹취록 및 구조 관련 녹취가 그 증거다.

대통령실 '뒷북 조치'하고 생색?

이태원 호흡곤란 119신고 녹취록엔 현장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10월 29일 22시 15분부터 30일 0시 56분까지 신고된 녹취록 87건 중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기록된 신고가 12건이었다.

'죽을 것 같아요.' '살려 주세요.' 말하거나 차마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인 듯한 신고도 있었다. 구조 활동이 시작된 후엔 'CPR을 하고 있는데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는 시민의 다급한 신고도 여러 건 있었다. 29일 밤 22시 18분부터 30일 오전 10시 26분까지의 소방청 상황실 무전 녹취록은 85페이지에 달한다. 참사 현장은 긴박한데, 대통령 지시는 뒷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난의료지원팀 등 지시하기 전에 이미 현장에서 조치는 취해졌다.
▲ 서울소방재난본부 대응 일지 일부 윤석열 대통령이 재난의료지원팀 등 지시하기 전에 이미 현장에서 조치는 취해졌다.
ⓒ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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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세월호 참사를 의식한 탓인지 참사 발생 후 41분 뒤인 밤 11시 1분에 대통령에 보고가 됐다며 시간별 행적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대통령은 밤 11시 21분에 첫 지시를 내렸다. 첫 지시의 내용은 행안부장관을 중심으로 피해 시민들에 대한 신속한 구조와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11시 36분 언론에 배포됐다.

이후 11시 54분 보건복지부에 응급의료체계를 신속 가동하고 응급의료팀 파견, 인근 병원에 병상을 신속하게 확보하라는 추가 지시를 내렸다. 이 내용은 10월 30일 0시 16분에 언론에 배포됐다. 하지만 이는 소방청에서 이미 대응을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DMAT(재난의료지원팀)은 윤 대통령의 지시가 언론을 통해 배포되기 전 이미 현장에 도착했다.
▲ 용산구 이태원동 구조 관련 녹취 일부 DMAT(재난의료지원팀)은 윤 대통령의 지시가 언론을 통해 배포되기 전 이미 현장에 도착했다.
ⓒ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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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소방청 보고서에 따르면, 소방청은 밤 10시 43분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하며 용산구 보건소 및 서울대병원 재난의료지원팀에 신속대응을 요청했고, 서울대병원 재난의료지원팀은 밤 11시 20분에 도착했다. 도착 전 밤 11시 15분에 대응2단계 발령에 따른 재난의료지원팀을 추가 요청했다.

참사 다음 날인 0시 11분, 이미 참사 현장에 5개 병원의 재난의료지원팀이 도착했다는 내용을 구조 관련 녹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통령 지시 이전에 이미 참사 현장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밤 11시 5분 지휘를 선언한다. 최 서장이 직접 요청한 추가 경찰력이 7번이다. 11시 23분께에는 서울경찰청에 연락해 특수기동대가 빨리 도착하게 하라고 지시한다. 경찰력에 요청한 건 인원 및 교통 통제였다. 구조 관련 녹취에도 교통 정체 때문에 구조대가 도보로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구급차 병원 이동도 쉽지 않았던 상황이 드러난다.

대통령이 30일 0시 41분 긴급상황 점검회의에서 "앰뷸런스 이동로를 확보하고 이를 위한 교통 통제 등 필요한 조치를 바로 이행하라" 지시하기 전, 11시 40분께 특수기동대가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지시 역시 '뒷북'이었던 셈이다. 대통령실에서 뒷북 지시를 하는 동안 현장에 있던 구조대, 의료진, 경찰 그리고 시민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떳떳하다면 국정조사 받아야 
     
대통령의 지시가 참사 현장에 제대로 닿은 게 맞을까. 실제로 어떤 과정으로 전달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도 없을 뿐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시행 중이라 시효가 다한 지시였다. 행안부장관(11시 19분)은 대통령(11시 1분)보다 늦게 보고를 받았다. 그가 어떤 것들을 지시했는지 상세하게 밝혀진 것도 없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렸어야 했는데'라는 죄책감은 처절한 참사 현장에 있었던 구조대, 의료진, 일선 경찰, 그리고 시민들의 몫이 되었다. 왜 이런 죄책감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처절한 외침을 듣고 구조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애쓴 사람들의 몫으로만 남아야 하는가.

지난 10월 29일 벌어진 일은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고 싶다는 평범한 시민 353명이 죽거나 다친 참사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참사였다.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을 알면서도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은 행정의 책임 방기를 물어야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다.

최초 압사 위험 신고가 들어온 10월 29일 저녁 6시 34분 이후부터 소방 대응 1단계가 해제될 때까지 이 재난과 연관 있는 모든 기관이 어떤 조치를 했는지 밝혀야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이다. 또, 총체적인 참사 원인을 밝힐 조사 기구가 생길 때까지 참사의 수습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분명하게 짚어야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까지 수립할 수 있다.

그런데 특수본의 수사가 겨누고 있는 시간 기준은 10월 29일 저녁 6시 34분이다. 그 시간 이전의 수사 대상은 해밀턴 호텔이 유일하다. 왜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참사 대응은 적절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에 부족하다. 경찰의 수사는 참사에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일부를 찾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용산소방서장의 대처가 적절하지 않아 입건했다면, 하나마나한 지시를 한 대통령이나 어떤 지시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고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은 행안부장관에 대해선 왜 수사하지 않는가.

용산소방서장 입건은 참사의 원인을 찾겠다며 그 첫 단추를 '수사'로 방향을 잡은 정부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꼬리 자르기식으로 유야무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싶지 않다면, 정부여당은 국정조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신지혜는 기본소득당 대변인입니다.


태그:#이태원, #참사, #용산소방서장,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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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당의 새 이름, 새진보연합 대변인입니다. 2022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였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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