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5 12:06최종 업데이트 22.11.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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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생활실천지원금제' ⓒ 국민건강보험공단

 
운동을 하면 돈을 주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건강생활실천지원금제'가 바로 운동을 통해 건강을 챙기면서 돈까지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정부 때인 2021년 7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걷기 운동 등을 통해 혈압·혈당 조절, 체중 감소 등의 건강 문제를 개선하면 그 성과에 따라 1인당 연 최대 5만~6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합니다.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활동량계"라 부르는 시계 형태의 디바이스를 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사업'이 바로 그건데 참여자가 시계를 차고 운동을 하면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보건소에서 받아 참여자의 건강상태와 진행사항을 점검합니다. 24주 동안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에 참여하고 27주까지 최종 설문을 완료해야 과정이 끝납니다. 등록할 때 건강검진을 하고, 중간검진과 최종검진까지 마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중도 탈락으로 간주해 시계를 반납해야 합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국가건강검진 결과 '건강위험군'으로 분류되었거나 '건강위험요인'을 보유한 사람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받아 참여자를 뽑는 등 대상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선정이 되어 참여를 했다 하더라도 활동기간이 끝난 후에 건강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지원금은 없습니다.

'건강생활실천지원금제'는 2024년 6월까지 시범사업기간이라 정해진 지역에서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헬스케어사업의 경우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지 지역 보건소별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2만 6천명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자격요건이 까다롭고 인원이 한정적이어서 그런지 실제로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울시에서만 따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손목닥터9988"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신청자 5만명을 대상으로 스마트 밴드를 대여해 주고 서비스 참여도에 따라 최대 10만원에 상당하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포인트는 건강관련 서비스및 물품을 사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이미 5만명이 다 등록해서 지금은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서비스 기간은 8개월인데 그 기간이 지나면 스마트 밴드를 반납해야 합니다.

살펴본 것과 같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한다는 프로그램들이 하나같이 소수의 인원을 선발해서 일정한 기간동안 활동을 한 후 종료하는 방식입니다. 줬던 시계나 밴드도 다시 회수해 갑니다.

돈 벌어주는 시계... 2년 38만원
 

HPB (건강증진위원회)가 애플과 함께 만든 루미헬스(Lumi Health) 앱. 애플 워치를 차고 운동하면 포인트를 쌓아서 상품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루미헬스 홈페이지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싱가포르에서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싱가포르 정부기관인 HPB(건강증진위원회)가 애플과 함께 루미헬스(Lumi Health)라는 앱을 만들었습니다. 목적은 싱가포르 국민들이 운동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앱을 아이폰에 깔고 애플워치를 찬 채로 운동을 하면 포인트를 쌓은 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상품권을 줍니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년에 최대 380달러(약 38만원). 애플과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라 다른 스마트워치는 쓸 수가 없습니다. 17세 이상 싱가포르 국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저 같은 이주노동자도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를 쌓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앱이 요구하는 세 개의 링을 완성하면 됩니다. 우선 "움직이기". 이 링을 완성하려면 그냥 시계를 차고 일상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하루 동안의 움직임을 소모된 칼로리로 계산하는데 목표 칼로리 소모량을 넘어 가면 링이 완성됩니다. 두 번째 링은 "운동하기". 말 그대로 하루 30분 정도 운동을 하면 링이 완성됩니다. 빠르게 걷기도 운동으로 쳐 줍니다. 세 번째 링은 "일어서기". 1시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1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면 링이 완성됩니다. 하루에 이 세 링을 완성하면 포인트를 줍니다. 평소보다 조금 많이 움직이고, 짧게라도 운동을 하고,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라는 겁니다.
 

운동 뿐만 아니라 명상이나 식단조절 등 건강을 위한 다양한 과제가 주어집니다. ⓒ 루미헬스 앱 갈무리

 
이것 외에도 앱에서 다양한 과제를 주고 그걸 달성하면 또 포인트를 줍니다. 예를 들면 1분 동안 명상을 하면서 깊은 숨 쉬기, 하루에 10분씩 스트레칭 하기, 잠자기 전 음식 먹지 않기 등 건강에 좋은 줄 알면서도 평소 의식적으로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댄스나 구기 운동도 할 때마다 포인트를 주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백신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걸 읽기만 해도 포인트를 쌓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럼 실제로 이걸 이용해서 돈을 번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저와 아내가 직접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아내는 2만원만 더 모으면 38만원을 받을 수 있고, 전 5만원이 될 때마다 상품권으로 찾아서 생필품을 사는 데 썼습니다. 상품권은 대형마트를 비롯해서 약국, 애플 대리점, 식품 판매점, 스포츠용품점 등 다양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운동하면 시계도 주고, 돈도 주고

정부가 국민 건강 챙긴다면서 아이폰을 안 쓰고 애플워치도 없는 사람은 차별하는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는 HPB에서 시계로도 쓸 수 있는 피트니스 트래커를 그냥 나눠 줍니다. 처음엔 핏빗처럼 운동량을 측정하는 단순한 제품이었는데 지금은 온전한 시계 모양을 갖춘 스마트워치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걸 원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배포합니다.
 

애플워치가 없는 이들은 정부로부터 스마트워치를 무상으로 받아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이봉렬

 
이걸 받은 후 휴대폰에 Healthy 365 앱을 깔면 이것 역시 운동한 만큼 포인트를 받게 되고 그 포인트가 쌓이면 상품권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루 만보 이상 걷는 걸로 포인트를 쌓을 수 있습니다.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운동을 하고 그 곳에 있는 QR코드를 찍어서 인증을 하면 또 포인트를 받는 등 여러 가지 과제별로 추가 포인트를 받습니다. 여기서 받은 상품권 역시 HPB와 제휴한 다양한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가 쌓이는 속도는 루미헬스에 비해 늦지만 별도의 금액 제한이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운동을 하라고 장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줍니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스포츠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엑티브SG 가 있습니다. 액티브SG는 24개의 헬스장, 23개의 수영장, 그리고 체육관과 운동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100달러(10만원)를 계좌에 넣어 줍니다. 회비 같은 건 없습니다. 이용료는 성인을 기준으로 한 번 방문할 때 헬스장은 2.5달러, 수영장은 1달러입니다. 처음에 거저 받은 100달러로 헬스장은 40번, 수영장은 100번을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65세 이상의 노인은 모든 게 무료입니다.
 

각 지역별로 헬스장과 수영장을 만들고 그걸 이용하라고 10만원을 미리 나눠줍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싱가포르 국민들이 집에서 10분 거리에서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춘 이 같은 스포츠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시설을 늘리고 있는 중입니다.

왜 싱가포르 정부는 스마트워치도 그냥 나눠주고 돈까지 얹어 주면서 운동을 하도록 장려할까요? 이 조그만 도시국가에 왜 그렇게 많은 수영장과 헬스장, 체육관, 운동장이 있는 걸까요? 당연히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서입니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생활 습관을 바르게 하고, 좋은 음식을 골라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사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의무입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당연한 이야기 말고도 이런 활동을 통해 국민이 건강해지면 정부도 이익입니다. 싱가포르 역시 의료비에 대한 정부의 보조가 있는데 국민이 건강해서 병원을 한번이라도 덜 찾게 되면 정부의 부담이 줄어 드는 겁니다.

국민 건강 챙기는 나라, 국민 목숨도 못 챙기는 나라
 

피트니스 트래커를 차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이봉렬


이 같은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의 결과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매 5년마다 각국의 건강수명에 대한 통계를 집계합니다. 건강 수명이란 건강하게 살 것으로 기대되는 수명입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나이가 들어 질병이나 부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로 오래 산다면 마냥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 수명이 길수록 삶의 질이 올라가는 건데 싱가포르는 73.6세로 일본의 74.1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건강 수명이 긴 나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조사에서 한국도 73세로 세계 3위를 차지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발표한 세계 각국의 건강수명 통계. 일본이 1위, 싱가포르가 2위 입니다. ⓒ 세계보건기구

 
다른 통계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건강위험요소, 위생, 평균수명, 사망 원인, 영양상태 등을 수치화 하여 국가 건강지수(Healthiest Country Index)를 발표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조사대상 169개국 중에 8위를 차지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세계 4위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습니다. 한국은 세계 17위입니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스마트워치를 나눠주고 돈까지 줘 가며 운동을 장려하고 있는 겁니다.
 

블룸버그가 발표한 2019년 국가 건강지수(Healthiest Country Index). 싱가포르는 조사대상 169개국 중 8위. 한국은 17위입니다. ⓒ 이봉렬

 
참여를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스마트워치를 나눠주고, 성과와 상관없이 운동량 하나만으로 제법 큰 보상을 주는 싱가포르 방식에 비하면 한국의 프로그램은 일반인이 참여하기에 장벽이 많고 참여를 이끌어 낼 만한 보상이 턱없이 적습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운동 참여자에게 돈을 주고 활동량계를 나눠 주는 이런 프로그램의 법적근거를 국민건강증진법 제3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건강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국민건강을 증진할 책임을 진다"는 항목에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진정 "국민건강을 증진할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이라면 지금보다 진입장벽은 낮추고 보상은 충분히 하는 식으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의 사례도 참조해서 보다 많은 국민이 참여… 아, 아닙니다. 국민 건강 이전에 국민의 목숨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라는 걸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평균이라는 70세 이상의 건강한 삶을 살기를 기대했던 158명의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깔려 죽는 나라에서 내 한 몸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건강하게 살 수 있게 지원해 달라는 요구 이전에 제발 살려만 달라고,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앞에 두고 너무 한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대신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면서도 아직 자리를 차고 앉아 웃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끝으로 한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국정의 총 책임자이면서도 제대로 된 사과 대신 일선 경찰과 소방대원들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묻습니다. 우리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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