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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알뜨르 비행장이 들어서는 등 군사기지화 한 모슬포 지역
▲ 송악산에서 바라본 모슬포 일대 일제강점기 당시 알뜨르 비행장이 들어서는 등 군사기지화 한 모슬포 지역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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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발칵 뒤집혔다.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위원장 한기호 의원)가 12월 26일 최종 회의를 하고 정부와 유관기관에 전달할 특위 보고서에 북한의  핵공격 임박 시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전진 배치를 추진해야 하며, 그럴 경우 제주도가 최적지라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나머지 지역은 거리가 짧아 북한의 선제공격에 취약하고, 미사일 방어도 곤란하다는 점이 제주를 최적지로 판단했다는 이유다. 또 제주도에 미국 전략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건설 및 핵무기 임시 저장시설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제주 제2공항 건설 시 이를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12월 26일 저녁 채널A가 '단독'으로 보도한 데 이어 27일 일부 중앙언론과 공중파 TV 및 제주지역 언론사가 주요 뉴스로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제주를 한낱 군사 전략기지로"

당장 제주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제주 제2공항 강행 저지 비상도민회의는 27일 성명을 내고 "제주도는 일제 강점기 군사기지화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안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군사 요새화를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과거 제국주의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박하면서 "이번 논란으로 확인되는 점은 제2공항이 어떻게든 군사기지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도 "제주를 전쟁의 화약고로 만드는 핵기지화 책동을 중단하고 제2공항 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촉구했다. 제주가치는 또 "문재인 정부에서도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제2공항 공군기지 활용 가능성을 거론한 바 있다. 집권당에서 공군기지도 모자라 핵 군사기지화 하겠다는 구상이 나온 것은 제2공항의 미래를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0일 오전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제주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사항에 대한 입장 발표 및 부동의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6.30
 30일 오전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제주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사항에 대한 입장 발표 및 부동의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1.6.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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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한동수 대변인은 논란이 된 국민의힘 북핵특위의 '특위 최종보고 및 건의사항-총력북핵 대응전략' 문건을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보고도 믿지 못할 소식"이라고 비판했다.

제주도 출신 위성곤·송재호·김한규 민주당 의원들도 '제주를 제멋대로 핵전쟁 기지로 삼으려는 반민주·반민족 집단 국민의힘을 강력 규탄한다!'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냈고, 정의당도 "제주를 한낱 군사적 전략기지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다"라면서 "정의당과 시민사회가 제기해온 우려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줬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지역사회가 들끓자 국민의힘 측은 한기호 위원장 명의의 입장자료를 통해 "일부 개인의 의견일 뿐 특위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또 "미국의 핵무기를 제주도에 배치한다는 것은 북핵특위의 공식입장이 아니며 최종보고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특위는 또 "회의 특성상 비공개로 이뤄져 다소간에 오해 소지가 있었던 것에 양해를 구한다"며 "북핵 미사일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과 그 예를 드는 과정에 발생한 표현의 오류"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제주도당 허용진 위원장이 27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위 보고서 채택 논란을 둘러싼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12.27
 국민의힘 제주도당 허용진 위원장이 27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위 보고서 채택 논란을 둘러싼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12.2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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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제주도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제의 특위 문건은  '찌라시'이며 관련 언론보도를 100% '오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허용진 위원장은 "특위위원 개인 1명의 의견 개진에 불과한 해프닝성 발언이 특위 공식보고서인 것처럼 보도됐다"고 해명했다.

특위위원 일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는 국민의힘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26일 특위 마지막 회의 직후 한기호 위원장이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주도 같은 경우 공항을 새로 만든다고 하면 그 공항이 우리가 전시에 북한 핵을 억제하는데 필요한 대형 수송기가 이착륙이 가능한 정도까지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특위 위원장의 발언은 최종보고서에 채택됐는지여부에 관계없이 최소한 특위 차원에서 제주의 핵무기 배치 가능성이 심도 있게 검토됐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반발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제2공항에 태도 모호했던 제주지사 반발 

이번 사태와 관련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오 지사는 27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 북핵특위가 최종보고서를 채택하는 과정을 확인한 결과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충격적인 내용이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기정사실화 했다. 오 지사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전략적인 핵 배치 요충지로 만들겠다는 내용으로 이는 제주와 도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있을 수도 없고, 검토조차 없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오 지사는 또 이번 보고서 채택에 앞서 지난 10월 31일 한기호 북핵특위 위원장이 주최한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 세미나'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당시 세미나에서 나온 '제주도 전략도서화와 전략군' 제언에 "제주도에 향후 핵전력을 운용할 전략군과 해병 제3사단을 창설하고, 기지방어사령부, 스텔스비행단, 제2미사일사령부, 제2잠수함사령부, 제2기동함대사령부 등을 설치하자는 공식적인 제언이 포함돼 있다"고 오 지사는 밝혔다.
 
오영훈 제주지사
 오영훈 제주지사
ⓒ 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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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훈 지사는 "도지사로서 제 입장은 단호하다. 평화의 섬 제주에 핵 배치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중략) 보고서를 당장 폐기할 것을 정부·여당에 강력 촉구한다"라고 말하고 "제2공항이 군사공항으로 활용된다면 건설 자체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못 박고 나섰다.

비록 '군사공항으로 활용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오영훈 지사가 제2공항 건설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에 따라 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 양상은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핵기지화와 관련한 정부·여당의 태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는 한 오 지사가 제2공항 건설 반대 입장을 굽힐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제2공항을 둘러싼 오 지사의 입장은 모호했다는 게 중론이다. '공항 시설 확충은 필요하지만 제2공항으로 특정지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는가 하면, 도지사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도민들의 지혜와 담대한 역량을 모아 집단지성을 통해 슬기롭게 해법을 찾겠다"는 식이었다.

원희룡 장관, 제주도 무시하고 밀어붙이나

반면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제2공항 문제에 대해 제주도와의 협의조차 거부하는 등 완강한 자세다. 제2공항 추진 여부를 결정하게 될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 가능성 검토 용역 최종 결정을 앞둔 시점이지만 오영훈 지사의 면담 및 협의 요청에 대해 원희룡 장관은 회피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환경부의 승인이 필요하나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반려된 바 있다. 국토부는 그동안 환경부의 반려 사유로 지적된 ▲비행안전이 확보되는 조류 및 그 서식지 보호 방안에 대한 검토 미흡 ▲항공기 소음 영향 재평가 시 최악조건 고려 미흡 및 모의 예측 오류 ▲멸종위기종인 다수의 맹꽁이 서식 확인에 따른 영향 예측 결과 미제시 ▲조사된 숨골에 대한 보전 가치 미제시 등에 대해 보완 가능성이 있는지를 용역을 통해 검토해오고 있다.

이 용역은 당초 지난 6월 말로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세부 내용 추가 검토를 이유로 결과 발표를 7월 말로, 다시 10월 말로 연장을 거듭한 끝에 현재 원희룡 장관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를 대표해서 오 지사가 관련 내용에 대해 협의를 요청했으나 국토부 장관이 끝내 만나주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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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원희룡 국토부의 태도를 살펴보면 어떻게든 환경영향평가라는 관문을 넘어서기 위해 보완 가능성 검토 용역이라는 요식 절차를 마무리해 환경부의 동의를 얻어낼 공산이 크다. 제2공항 건설은 윤석열 정권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밀어붙이기로 일관해온 그간의 정책집행 행태로 미루어 볼 때 제2공항은 결국 건설 강행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제주 제2공항은 이제 국토부의 용역 결과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건설 여부 향방이 드러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혼란은 불가피할 것 같다. 여기에 제주의 핵기지화, 제2공항의 전략폭격기 활주로 건설 등 메가톤급 이슈가 터져 과거 강정 해군기지 건설 때보다 갈등의 폭과 깊이가 훨씬 더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제2공항 이슈를 놓고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여론조사가 진행돼 왔다. 그때마다 근소한 차이지만 반대 여론이 높았다. 제주도민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한 채 공항 건설이 강행된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원희룡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보완 가능성 검토 용역 결과를 투명하게 알린 뒤 공개검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민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후유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핵기지화 발상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절대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태그:#제주 핵기지화,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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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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