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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소속 변호사와 법학자들이 <오마이뉴스>에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편견과 잘못된 상식을 깨는 내용의 [100문 100답 - 국가보안법, 이것이 궁금하다]가 그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질문 11. 북한의 친척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면?

북한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아도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나요?


<서울에서 평양까지>란 노래가 있지요? 그 가사 중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만 왜 못가냐는 부분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제 금강산 관광으로 바닷길과 육로가 다 열려 관광객 수가 한 달에 1 만 명을 넘었고(지금까지 금강산 관광 총 인원 58만 817명) 평양에도 많이 다녀와, 그 가사처럼 "평양만 못 가"지는 않는 날이 왔습니다. 2003년 한 해 동안 남북 간 왕래 인원은 1 만 6 천 명, 물자교역이 7 억 달러에 이르고, 모두 2691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이산가족들이 서로 보고 싶은 마음을 편지로 담아 보낼 수는 없을까요? 매번 상봉을 할 수 없다고 해도 편지나 전화 팩스 정도만 오갈 수 있으면 훨씬 좋을텐데요. 지금은 그야말로 지구촌 시대로 아프리카까지도 특급 우편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데, 이렇게 가까운 북한에 있는 친척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면,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모두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 되고, 따라서 북한 주민과 편지를 주고받거나 팩스를 보내거나 하는 일은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통신'이 됩니다.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하는 것은, 국보법 제8조에 의해 10년 이하 징역의 처벌을 받는 '회합·통신죄'에 해당합니다. 1948년 국보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전혀 없었던 것이, 1980년 반공법을 흡수· 통합하면서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조문 내용만으로 본다면 북한 주민과의 편지 왕래가 모두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산가족이 북의 친척에게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이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안 것"이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이나마도 1991년 법 개정으로 범위가 좁아진 것이지, 이전에는 "반국가 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라고만 되어 있어, 처벌범위가 훨씬 넓었답니다).

친척에게 단순한 안부만 묻는 편지를 전했다면, 국보법이 아니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제27조, 제9조). 교류협력법에 의하면 북한에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북한 주민과의 접촉'에 해당하여 통일부장관을 승인을 얻어야 하고, 적어도 통신을 한 7일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국보법 위반이 되는 통신 행위와 단순히 교류협력법 절차 위반의 통신 행위의 구별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인 잣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부분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인지 아닌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 행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근거가 없으니 결국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5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군의 학살만행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남북해외관련단체 실무회의에 참석했던 이덕준씨에 대해서, 경찰은 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으나 검찰은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법원이 이를 유죄로 판단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조총련 회원에게 원고 청탁을 하기 위해 전화하고 전자메일을 주고받은 잡지사 기자가 이 죄목으로 구속되기도 하고, 남북과 해외에서 공동 집회를 제안하거나 한총련 출범식에 축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팩스를 보내는 것이 문제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예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국가기밀을 알려준다든지 하는 간첩행위도 아닌 만남이나 통신 자체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판단으로 통신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는데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같은 북한 인사를 만나거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더라도 누구는 이적성이 있다고 하여 보안법을 적용하고, 누구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불평등한 법 적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더구나 민간교류가 활발해지고 북한 주민과의 만남이나 연락이 잦아질 수밖에 없고 교류협력법이라는 새로운 법이 규율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위와 같은 조항을 그대로 두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고, 자유로운 민간 교류를 저해하는 부작용만 낳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구체적인 위험이 없는데도 통신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국보법 규정은 삭제해야 마땅하고, 오히려 이산가족 서신 왕래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점차 그 폭을 확대 · 장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남북한 주민들 사이 거리감을 자연스레 줄여갈 때야말로,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을테니까요.

(답변: 김진 변호사 / 감수: 차병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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