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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지원(淑芝園)은 아내와 내가 노후를 보낼 예정지다. 집을 지을 곳을 중심으로 절반은 정원으로 가꾸고 절반의 땅은 유실수와 각종 농작물을 가꾸는 텃밭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요즘 아내와 나는 빈땅에 새로운 식구를 들이는 일을 한다. 텃밭을 일구고 나무를 옮기는 일이 나의 몫이라면 텃밭에 작물을 심고 꽃을 가꾸는 일은 아내의 차지다.

꽃밭 만들기는 오래 전부터 아내가 벼르던 일이다. 틈만 나면 인터넷을 뒤져 심고 싶은 꽃을 찾더니 지난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꽃을 좋아하는 분들과 사귀면서 정보도 교환하고 제법 많은 종류의 꽃씨도 모았다.

아내는 꽃씨가 모이면 피울 꽃의 사진을 미리 보이면서 설명을 한다. 평소 초화보다는 동백, 매화, 살구, 자두 등 목본류를 선호했던 나였기에, 봉숭아와 해바라기, 패랭이꽃, 국화 등을 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아내를 통해 진기한 이름을 가진 꽃들의 모습을 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아내는 호미로 그림을 그려가며 꽃밭을 설계했다.
▲ 정월 대보름 무렵 아내는 호미로 그림을 그려가며 꽃밭을 설계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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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부터 아내는 본격적으로 꽃밭 만들기에 나섰다. 아예 텃밭 일부에 알뿌리로 번식하는 튜립, 수선화, 상사화라고 부르는 꽃무릇, 노란꽃창포, 자주달개비, 붓꽃, 백합, 아마릴리스 등을 심었다.

꽃양귀비, 리빙스턴데이지, 끈끈이대나물, 금영화, 수레국화, 분홍패랭이, 분홍장구채, 담배꽃, 샤스타데이지 씨앗은 상토를 담은 스티로폴 박스에 뿌려 볕이 드는 거실에 두고서 싹을 틔우는 중이다.

그밖에도 접씨꽃, 나팔꽃, 우단동자, 미니해바라기, 금관화, 동자꽃, 다알리아, 글라디올러스, 분꽃,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풍선덩쿨, 백일홍은 날이 좀 더 풀리면 직접 파종하겠다고 한다.

아내의 욕심대로 모든 꽃들이 핀다면 올해 숙지원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정치가 대중을 의식하는 행위라면 꽃 한 포기를 심는 일도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보는 사람에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치를 하는 사람에 따라 나라의 격이 달라질 수 있듯이 꽃 한포기를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달라지고 정원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름지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 심는 일도 자기 고집만으로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비상하는 새처럼 흙을 뚫고 나온 새싹은 경이롭다.
▲ 새싹 비상하는 새처럼 흙을 뚫고 나온 새싹은 경이롭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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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일은 우선 마음을 가꾸는 일이다. 그리고 몸의 병을 고치는 일이다. 심신이 거칠어진 사람, 혹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치병을 앓는 사람이 자연 속에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아내와 나 역시 이미 효험을 보았다고 생각하기에 꽃을 심고 가꾸는 원예치료도 심신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꽃을 심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명을 가진 만물에게 시작과 끝이 있듯이 꽃이며 나무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어남도 비바람에 부대끼며 사는 것도 그리하여 계절이 되면 몸을 땅에 눕히는 것도 다 자연 그대로일 뿐. 때문에 왜 꽃을 심느냐고 묻는 것도 또 꽃에게 왜 꽃을 피우느냐고 묻는 것도 우문(愚問)일 것이다.

꽃을 매개로 만남이 이루어지고 꽃 이야기를 하면서 남의 흉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꽃을 보면서 화를 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고성의 감탄은 있어도 다툼은 없을 것이다. 꽃을 가꾸는 일은 심는 사람도 즐거우면서 타인을 즐겁게 하는 이타적인 면이 강한 일이다. 그러면서 약속된 미래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아름다운 것은 꽃 뿐 아니다.
▲ 새싹 아름다운 것은 꽃 뿐 아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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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땅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심었던 튤립 수선화, 아마릴리스, 상사화의 순이 비상하는 새의 날개처럼 흙을 헤집고 솟아오른다. 생명의 신비, 꽃을 품은 새 순을 보라. 누가 꽃만 아름답다고 하는가?

나도 꽃처럼 한 순간이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기쁨이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필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꽃밭,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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