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내 등장하는 최루탄을 극장 내에서도 터뜨린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옆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입을 가리고 꺽꺽 울었다. 그러나 내가 울었던 것은 우리의 근대사가 슬펐기 때문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그날의 사태는 소재일 뿐, 핵심은 아니다.

영화의 핵심은 그날의 총알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낸 광주 사람들이며, 그들 간의 사랑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렇게 많은 눈물이 흐르기 위해서 굳이 영화의 소재가 광주 민주화 운동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슬픈 역사였어도 상관 없었다는 말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에는 흔히 말하는 연인 간의 사랑도 분명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 내 등장하는 많은 사랑들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에 등장 인물들 간에 서로 얽히고설키는데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관객 당신이 누구든, 그 안에서 당신과 연계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동생이 죽고, 연인이 죽고, 아들이 죽고, 아빠가 죽고, 엄마가 죽는다. 당신도 그 누구의 동생이고, 연인이고, 아들이고, 아빠이고, 엄마가 아닌가? 한마디로 당신과 관계 있는 그 누군가 중 한 명(이상)은 너무나 가슴 아프게 죽는다. 울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영화나 그렇지만, 여기서 주인공 김상경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 이유는 강민우(김상경)라는 인물은 등장 인물들과 가장 많이, 자주 사랑을 나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강민우는 사랑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가장 많은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인물이란 말이다. 기실 이 영화는 김상경이 아니었다면 그 감정 전달에 있어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굳이 독보적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전술했듯, 이 영화는 사태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 간의 사랑을 위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 전달의 실패라는 것은 곧 영화 자체의 실패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의 맥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상경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죽은 동생의 관 앞에 앉아서 멍 하니 있는 김상경의 연기는 근래에 본 수많은 연기 중 백미라고 꼽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굳이 광주민주화운동이어야 했느냐는 점이다. 1980년 5월 18일에 벌어진 비극이라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27년 전의 일이다. 물론 여전히 그 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전두환은 여전히 재산이 29만원이란다) 이 영화가 힘을 갖는 것일 테다. (절대 이 영화 자체가 힘이 있어서 5백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헤집어야만 했다면, 그 어떤 감독도 대면하길 부담스러워 하는 지금 이곳의 집단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면, 적어도 그날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은 졌어야 옳았다 싶다.

여기서 책임이란 단순히 그 날의 일을 재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재해석을 시도하는 어떤, '무모함'까지 보여줬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사회적인 문제, 그것도 흘러가 버린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지금 이곳에서 이런 소재는 한 번 다뤄지기도 힘든 영화일 뿐만 아니라, 영화 내용 대부분이 27년이 흐른 지금 이곳의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든지 공감을 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 안에 최루탄을 더한다고 그들의 소심함이 합리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영화 소재로 택했다면, 그리고 굳이 5월이 아닌 8월에 개봉을 해야 했다면, 스스로가 이 영화의 존재 이유까지 보여주는 성실함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잊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건 솔직히 좀 겸연쩍었다. (다르게 기억하란 뜻이었나;;)

혹, 감독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날의 이야기를 담담히 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의 근대사를 재현한 또 하나의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이다.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그 날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굉장히 객관적으로 담아냈는데,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배우 윤여정의 목소리는 기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힐난조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해 사건 역시 현 사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전반에 그려졌던 합리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힐난조는 이 영화가 굳이 시해 사건을 다루어야만 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힐난조는 등장 인물들이 보여준 쇼를 향한 것이었으며 다시 이것은, 그 날의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재해석이자 그리 개인적이지는 않은 하나의 견해였다.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 이곳의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다' 라고 했던 모 영화 잡지의 예측은 매우 적확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씨 측은 아니나다를까 해당 영화를 두고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했었다. 물론 그 신청은 기각되긴 했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여전히 이렇게 이성적으로 낙후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고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견해를 피력했으나, 그 의견조차도 말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 유력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이런 잡음이 두려웠던 것인가. 29만원밖에 없는 그 분이 두려웠던 것인가. 어떻게 보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다루기는 쉬웠을 텐데, 아쉽다고만 하기엔 지나치게 아쉽다.
2007-08-15 09:3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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