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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개를 데리고 나선 산책길. 골목길을 나서자마자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예전부터 우리를 봐온 아이들은 이내 개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아직 나이 어린 여자애들은 무서워 발을 움츠리는 모습도 보인다.

"안 물어~"라고 말해주지만 일부 아이들에게 인간이 아닌 생명체는 그저 무섭고 이상한 존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나의 생각을 설득하고 싶지 않다.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개가 다가서지 않도록 끈을 바짝 조여 준다. 이내 여자애들은 안심했다는 듯 뒷걸음치던 발을 다시 내민다.

작은 법 하나 어겨 본 적 없고 세금이라면 연체료조차 낸 적 없는 다소 소심한 소시민이니 당연히 배변봉투와 개끈, 연락처가 새겨진 목걸이는 필수다. 단층 빌라와 단독주택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전형적인 서민 동네. 좁은 골목길 어디에서 차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끈 없이 산책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 개와 함께 산책에 나설때 개끈,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 배변봉투는 기본 에티켓이다.
ⓒ 전경옥
때로는 "개 귀엽네요~"라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배변봉투를 들고 있는 내 손으로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가던 길을 약간 벗어나 빠른 걸음을 옮기곤 한다. 싫어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니 조금은 미안하다. 욕이라도 안하니 고맙기만 하다.

현관 밖으로 발소리만 들리면 짖어대는 녀석 때문에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언어(?)표현이 짖는 것이니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항의 한번 하지 않는 이웃이 고마울 따름이다.

개라면 주인만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꼬리를 치며 반기는 성격 좋은 녀석이 한없이 대견스럽다. 오는 사람들마다 경계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간혹 거리를 떠도는 유기견들을 본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가가면 줄행랑치는 녀석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마음 문을 열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여기저기 더러운 털이 엉겨 있는 몸을 잡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끝까지 쫒아가 구조하지 못하는 소심한 마음이 부끄럽기도 하다.

아마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애견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것이다. 16명의 국회의원들이 '애완동물 부담금 부과'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개 배설물에 대한 환경 부담금은 애견인들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생각도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도통 이 '애견인'이라는 명칭이 불편하다.

그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애견인'이란 개를 버리는 무책임한 주인을 말하는 것인지, 공원에 배설물을 버려두고 도망치는 몰상식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 10여 년간 버려진 개들을 구조했지만 벌금만 물게 생긴 아주머니를 지칭하는 것인지, 그저 개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배가 고파 식당안으로 들어오다 구조된 유기견. 피부병이 심해 한쪽 다리를 못쓰는 상태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식용견을 키우는 개장수도, 개들을 좁은 케이지 안에 평생 가둬두고 종견용으로 쓰는 종견업자도 자신은 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개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도대체 실체가 없는 이 애견인이라는 명칭이 나는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몸 어디 하나라도 불편한 구석이 없지만 나는 내가 내는 세금이 장애인을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 학대받는 아동과 여성, 실직자 등을 위한 복지에 쓰인다면 어떤 세금이라도 기꺼이 낼 것이다. 각종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돈으로 허덕일 때도 있지만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만든다는 시민단체의 모금함에 천 원짜리 한 장 내지 못해 내내 미안해했던 기억도 있다.

장애를 가진 것은 내가 아니니 그 세금을 감당하기 싫다고 한다면. 내 주위엔 학대받는 아이가 없으니 관심 없다고 한다면 그것처럼 삭막한 사회가 있을까.

그 의원들의 눈에 애견인이란 그저 자신의 애견만을 애지중지하고 사회와 국가, 인간에 대한 배려란 손톱만큼도 가지지 않은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들로만 보이는 것 같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버려진 개들을 일곱 마리나 키우고 있는 내 친구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인간이 아닌 존재에 쏟는 정성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행동인 듯하다. 어쩌다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환경파괴범으로 몰리는 현실이 되었을까.

복지란 약자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며 배려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의미라면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약자는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언어라는 인간의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주장조차 할 수 없다. 그들에게 내미는 작은 손길마저 차갑게 거절하는 사회가 버겁다. 시각장애인의 안내견 조차 출입이 금지되는 국회이니 그 곳에서 복지를 위한 법이 제정되기나 할까?

세금을 내라면 낼 것이다. 하지만 그 세금으로 얼마나 환경을 살릴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축산폐수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에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대량으로 키운 것은 인간이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광우병의 위협이 동물 때문이라고 하지만 닭과 소를 그들의 습성과 상관없이 집단으로 키워 낸 것도 인간이다. 문제의 원인은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무서운 환경파괴는 결코 막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VET NEWS 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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