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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씨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에 취직했다. 그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들이나 고객의 얼굴을 잘 구분 못하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필자의 친구 한 명은 외국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을 보면서 일인 다역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머릿속에 형성된 표준모형을 근거로 파악한다. 이 표준모형은 지금까지 접한 얼굴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준이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계속 보고 자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한국인을 기준으로 한 표준모형을 가지고 있다. 이 표준모형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보면서 눈이 큰지, 코가 높은지 등등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흑인들의 경우, 한국 사람 기준에서 볼 때 대부분 입술이 두껍고 피부가 검은 등의 특징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개개인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기 어렵다. 코가 오똑하고, 눈이 깊고 피부가 하얀 백인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표준모형에 가까울수록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차리고, 표준모형과 다를수록 개개인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기 힘든 것이다.

한국사람이 배우 정우성과 장혁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보다 흑인이나 백인이 그들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이다. 반대로 한국사람이 볼 때는 흑인배우 크리스 터커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락의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타인종효과'라고 한다. 타인종효과는 1914년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구스타프 페인골드가 처음 제시했다. 그는 '미국인에게 모든 아시아인은 똑같아 보이며, 반대로 아시아인에게도 백인은 모두 같은 얼굴로 인식된다'고 밝혔다.

생후 3개월이면 얼굴 특징 구분할 수 있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잭 리처> 기자회견에서 잭 리처 역의 배우 톰 크루즈가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잭 리처> 기자회견에서 잭 리처 역의 배우 톰 크루즈가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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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에선 N170이라는 뇌신호가 나온다. 얼굴을 처리하면서 주로 발생하는데, 같은 인종을 볼 때와 다른 인종을 볼 때 이 신호가 다르게 나타난다. 영국 글래스고대 로버트 칼대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인종의 다른 표정의 사진을 두 장 연달아 볼 때는 뇌신호가 감소한다. 익숙해지기 때문에 자극을 덜 받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인종의 사진들을 볼 때는 뇌신호가 그대로였다. 어떤 인종이든 처음 보는 얼굴은 낯설게 느낀다. 같은 인종일 경우에는 금방 익숙하게 받아들이는데 반해 다른 인종일 경우에는 '아 다른 인종이구나' 하고 계속 낯설어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자동차의 각각 다른 모양을 잘 인식하고, 어떤 모델인지 잘 안다. 관심이 아주 많다면, 어느 회사의 몇 년도 모델인지도 알아차린다. 반면,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좀 더 대략적으로 '세단', '오픈카' 정도로 파악한다.

자신과 같은 인종을 더 잘 알아보는 현상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생후 3개월부터 얼굴 특징을 구분하고 같은 인종의 얼굴을 좀 더 오래 쳐다본다고 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인종의 얼굴을 볼 때 뇌가 더 활성화한다고 한다.

이 연구팀은 뇌에서 P2와 N200이라는 뇌신호를 측정했다. P2는 시각정보를 종합하는 후두엽과 두정엽 부위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얼굴을 보고, 피부색이나 이목구비의 모양 등 특징을 모으는 곳이다. N200은 시각정보를 기억하는 전두엽에서 나온다. 이들은 같은 인종의 얼굴을 볼 때 더 크게 측정되었다. 이들이 더 활발하게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같은 인종의 얼굴을 볼 때 특징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같은 인종의 얼굴을 더 잘 구분하게 된다.

태어나면서 타고나는 타인종효과

P2는 사진을 처음 보고 2밀리초 후에 뇌의 뒷부분인 후두엽과 두정엽에서 나온다. 이들 부위는 바라본 대상에게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는 곳이다. 가령 사람을 봤다면 얼굴형, 헤어스타일, 눈동자의 색이 어떤지 특징을 모으는 것이다. N200은 뇌가 시각정보를 기억할 때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에서 관측된다. 측정 결과 같은 인종인 백인 남성의 사진을 봤을 때 뇌파가 더 셌다.

연구를 주도한 헤더 루카스 교수는 "뇌가 자극에 화발히 반응할수록 뇌파가 크게 나온다"며 "같은 인종을 볼 때 P2와 N200이 크다는 것은 뇌가 이들의 특징을 더 많이 모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같은 인종의 얼굴을 더욱 잘 구분한다는 얘기다.

같은 인종의 얼굴을 더 잘 알아보는 현상은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 2003년 영국 서섹스대 연구진은 남아프리카 흑인들과 영국 백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흑인과 백인의 얼굴 사진을 보며, 자신이 본 얼굴을 기억하는지를 확인했다. 모두 각자가 속한 인종의 얼굴을 더 잘 구분했다.

하지만 일부 흑인들은 백인 얼굴도 잘 알아보고 기억했다. 이들은 백인과 자주 접촉하고 생활한 사람들이었다. 해외로 이민간 초기에는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도, 계속해서 그 사람들과 접촉하며 살다보면 잘 알아보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요즘은 K-POP 열풍 덕분에 한국인의 얼굴을 알아보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고 있다.

타인종효과는 태어나면서 타고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되고 있는 이 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얼굴을 보는 것이 어떨까.


태그:#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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