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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의 비 오는 흐린 날씨를 뒤로 하고 조금 벗어나니 날씨는 전혀 다르게 맑고 화창하며 더위가 있다. 지리산자락을 넘어 경주에서 3시간여를 달려 남원 시내의 유적지 중 불교 유적을 대표하는 만복사자와 용담사지를 갔다.

남원으로 출발하는 도로에서 풍광
▲ 남원으로 출발하는 도로 남원으로 출발하는 도로에서 풍광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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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대표적인 절터로 꼽히는 만복사지는 그 이름부터 '누구나 다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고려시대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도선이 당나라의 군사를 묘한 언변으로 제압한 뒤 이곳에다가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고 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남원 일대의 큰 절로서 명맥을 유지하였는데 수백 명의 승려가 아침에 시주를 받으러 나갈 때와 저녁에 돌아올 때의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만복사지 전경
▲ 만복사지 전경 만복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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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의 학자 김시습은 이 사찰을 배경으로 한 불교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를 지었다.

만복사 옛터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오랜 기간 발굴 조사하였고, 현재 현장에 있는 유물로는 만복사지 5층석탑, 당간지주와 불상을 올려놓는 받침인 만복사지 석좌, 보호전각에 만복사지 석불입상이 있다. 그리고 새로이 옮겨진 석인상이 이제 우뚝하니 서 있다.

만복사지 석인상 예전 모습
▲ 만복사지 석인상 예전 모습 만복사지 석인상 예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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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만복사지 인근에서 출토돼 만복사지 내로 옮겨진 석인상은 도로의 갓길에 있었던 것으로 고려시대에 당간지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변에 있어서 늘 위험 요소가 있어 석인상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통행자의 불편해소를 예방하기 위해 이전 설치한 것이다. 석인상의 동남쪽에 1기의 석인상이 더 있음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기존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석인상의 전체적인 규모와 형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만복사지 석인상 모습
▲ 만복사지 석인상 모습 만복사지 석인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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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지 석인상 은 현재 현장에 우뚝하게 서 있다.
▲ 만복사지 석인상 모습 만복사지 석인상 은 현재 현장에 우뚝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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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상은 돌기둥에 3개면만을 사용하여 사람형상을 조각하고 나머지 한 면은 편평하게 다듬었다. 다듬은 면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다. 머리는 정상부가 둥글고 볼록하게 솟아 있으며, 얼굴은 안구를 심하게 돌출시켜 놓았다.

또 다른 서 금당터의 예전에 남아 있던 석인상 머리 부분은 현재 남원향토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절의 구조와 형식을 알아볼 수 있는 유구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석대좌는 마멸이 심하나 전체적으로 육각형의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안상 무늬와 연꽃무늬는 남아 있어 조각이 우수함을 알 수 있다.

만복사지 석대좌
▲ 만복사지 석대좌 만복사지 석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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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지 당간지주는 아무런 꾸밈없이 거칠게 다듬은 소박한 모습이다. 오층석탑은 백제계 양식이 일부 보이며 창건 당시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보호각에 남아 있는 석불입상은 화강암을 하나로 조각하여 불상과 광배를 다 조각 하였는데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를 선으로 음각하여 새겨 놓았다.

만복사지 석불입상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를 선으로 음각하여 새겨 놓았다.
▲ 만복사지 석불입상 만복사지 석불입상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를 선으로 음각하여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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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석탑부재들이 남아 있어 오래된 역사의 시간 그 흔적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세월의 아쉬움과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만복사지 전경
▲ 만복사지 전경 만복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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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춧돌, 깨어진 조각에 흔적들 지금은 없지만 당시의 그 모습을 상상도 해보며 넓은 터를 휘돌아 나온다.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세워졌다고 하며 절이 세워지기 전에는 이 부근에 깊은 물 속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어 농작물을 해치고 또 사람들을 잡아먹는 등 행패가 심했으나 절을 지어 용담사라 하니 이무기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버스 2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있다.

용담사지 전경
▲ 용담사지 전경 용담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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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비된 절에 들어서면 새로 지어진 대웅전 건물과 높게 우둑서 있는 칠층석탑은 길고 가는 형태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며 마치 화순 운주사에 있는 석탑을 보는 느낌으로 경주에서 잘 보이지 않는 석탑의 형태이다.

칠층석탑은 훤칠한 느낌이다.
▲ 칠층석탑 칠층석탑은 훤칠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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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앞에는 석등이 있는데 팔각형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과 간주석이 있으며, 상대석 위에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얹고 지붕돌을 씌었다. 별다른 장식이 없으나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이 든다.

용담사지 석등 다소 소박해 보인다.
▲ 용담사지 석등 용담사지 석등 다소 소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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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사지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거대한 크기의 석불입상이다. 사찰에서는 미륵불로 부르며 간단하게 전설과 설명을 해놓았다.

고려 초기 불상 계통을 따르고 있으며 예전에는 노천에 있은 듯 하나 지금 보호각을 지어 석불입상을 어느정도 보호하고 있다. 보물 제42호로 불상과 광배를 하나의 돌에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가 약7m 정도에 이르며 정수리에 있는 육계가 높고 큼직하며, 얼굴은 전체적으로 손상인지 마멸인지 다소 분명하지는 않아 표정을 알 수 없다. 목에는 삼도가 희미하게나마 있다.

용담사지 석불입상
▲ 용담사지 석불입상 용담사지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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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와 가슴이 떡 벌어져 있고, 대좌는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지대석 양쪽에는 원형과 사각형의 구멍이 있어 목조전각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배 양 옆에 구멍이 2개 남아 있으나 용도가 불분명해 보인다. 현재 사찰의 규모는 작지만 볼 유적은 많은 곳으로 남원에서는 꼭 둘러보아야 할 불교 문화유적지로 추천해 본다. 남원에는 이외에도 많은 불교 문화재와 유적이 남아 있으나 시간과 일정으로 인해 광한루로 이동한다.


태그:#남원 만복사지, #남원용담사지, #남원불교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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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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